-아리거산은 알프스 산맥의 3대 북벽으로 불린다.
-계곡 밑에서 1,800m나 솟아 있으며, 오늘날에도 가장 어려운 등반 중의 한곳이다.

■ 사이먼 예이츠ㅣ출판년도 2001년ㅣ쪽수 220쪽ㅣ출판사 마운티니어스 북스
■ 사이먼 예이츠ㅣ출판년도 2001년ㅣ쪽수 220쪽ㅣ출판사 마운티니어스 북스

영국의 거벽등반가인 사이먼 예이츠가 은행 로비를 무심히 쳐다보고 있다. 페루에서 돌아온 이후 줄곧 이런 분위기의 공간을 피해 왔었다. 진지하고 위압적인 공간, 감정 없는 은행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플라스틱 차단막, 그리고 교회에 온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신의 돈을 신중하게 애지중지하는 고객들의 모습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몇 주 동안 사이먼은 롤러코스터를 탈 때의 황당하고 현기증이 날 정도의 극한 체험과 감정의 기복이 심한 상황들을 겪어야만 했다. 제대로 생각하고 판단할 겨를 없는 반전의 연속들이었다.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정리가 안 되었고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 발생했어도 적절한 조치를 취한 거 같지는 않았다.

사이먼은 《Touching the Void》(번역서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의 저자인 조 심슨Joe Simpson과 함께 페루 안데스의 시울라 그란데 서벽에 신 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등반하던 중 난관에 봉착했고, 그들은 그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하려고 애썼지만 조가 추락하면서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한 치 앞을 예측 못하는 절대절명의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처절한 탈출 행각이 시작되었다. 이때 사이먼은 조를 포기하고 혼자 내려오는 비정함을 보였고, 조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목숨만 겨우 유지한 채 탈출에 성공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조는 한동안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심리적인 혼돈 상태가 정리되지 않은 사이먼은 무료하게 소일만 하고 있었다. 어느날 사이먼은 은행 매니저를 만났다. 등반 떠나기 전 불미스런 일이 있었다. 등반비로 수백 파운드가 부족했고 계속되는 해외 등반으로 실업 연금을 다 써버린 상태였다. 몇몇 아르바이트로 받은 수입으로는 겨우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은행에서는 이런 사이먼에게 대출을 당연히 거절했다.

은행 입장에서는 모험이었을 것이다. 등반이란 행위를 위험과 사고가 엄연히 내재되어 있고 투자 대비 생산성이 전혀 없는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은행은 고객의 돈으로 증권이나 현물시장에서 이익을 많이 내야 했다. 사이먼이 매니저에게 모험과 자유, 열정에 대해 열렬히 설득했지만, 그들은 고객들의 인생을 파운드와 펜스로만 측정했다. 그때 사이먼은 급기야 은행 단말기에서 허락없이 현금을 인출해서 페루로 날아갔었던 것이다. 사이먼은 은행 매니저에게 사정에 사정을 거듭해서 위기를 겨우 모면했다.

조와 사이먼의 페루에서의 극한 체험은 이 지역 산악계와 영국 전역으로 소문을 타고 신속하게 전파되었다. 조는 <HIGH> 등산 잡지에 그들의 조난기를 연재했다. <HIGH> 지의 편집장은 이 사건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이먼에게도 원고 청탁을 했다. 하지만 사이먼에게 그 일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사가 되었고, 벌써 먼 나라 얘기 같기도 하고 자격지심에 선뜻 나서지를 못했다.

페루에서의 황당했던 체험은 아직도 생생했고 그 피해의식도 잊혀진 것은 아니었지만 산에 대한 열정만큼은 신기할 정도로 예전 그대로였다. 사이먼에게 거액의 원고료가 제시되었다. 빚을 다 갚고도 남는 금액이다. 한 지방 TV 방송국에서 인터뷰 요청도 들어왔다. 사이먼에게 등반을 계속하겠느냐는 질문이 나오고 호기심과 동정어린 눈빛으로 위로와 걱정의 격려도 했다. 죽음에 직면한 동료를 버려두고 탈출한 것에 대한 정신적인 충격은 없었는지 진지하게 질문하기도 했는데, 사이먼에게 이 순간들은 고통없이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죽음 직전에서 살아 돌아온 조 역시 혼란스러운 날들이었다. 회복은 바로 되었지만 무릎 부상은 그에게 두고두고 그 당시의 악몽을 떠올리는 역할을 할 것이다. 담당 의사는 조가 더 이상 클라이밍을 못하고 불구가 될 거라고 했다. 특색없고 무료한 일상을 반복하던 사람들에게 이들의 생존을 위한 탈출 스토리는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베스트셀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한 달 동안 영국에서 휴식을 취한 사이먼은 이런 주변의 혼란을 뒤로 하고 프랑스 샤모니로 달려갔다. 샤모니에서 친구들을 만나 아이거 북벽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모든 게 생소하고 낯설다. 사이먼은 등반 가능한 루트의 선을 정상까지 이어가며 나름대로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벽 밑으로 접근하며 여기저기 루트를 찾았다.

헤매는 것 같으면서도 제대로 길을 잡은 것 같다. 예전의 경험으로는 이런 길을 가다가는 갑자기 길이 끊어진다든가 크레바스, 또는 절벽 끝에 도달했던 기억이 많았다. 낙석의 흔적도 대단했다. 아이거 북벽의 기술적 난이도는 그다지 높지 않지만 악천후와 낙석으로 인한 위험 요소 때문에 등반의 곤란함과 난이도, 위험도가 매우 높다. 존과 사이먼이 교대하며 선등했다. 북벽에 매달려 비박했다.

스탠스 상태가 좋지 않아 불편했다.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존은 아래에서, 사이먼과 크렉은 위에 겨우 자리를 만들었다. 장비와 로프는 여기저기 어지럽게 걸려있었고 대원 서로를 로프로 연결했다. 멀리 초원에서 소들의 방울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렸고, 집집마다 내건 불빛들이 흔들거려 이들을 더 심란하게 만들었다.

다음날 등반이 지체되면서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디피컬트 크랙difficult crack에 도착하니 늦은 오후다. 이 북벽에서 등반의 본질은 속공인데 세 사람은 서서히 긴장되어 갔다. 그때 크렉이 신속한 등반의 진행을 위해 먼저 하산을 하겠다며 식량과 장비 등을 챙겼다. 바위에 얼음이 결빙된 크랙인 디피컬트 크랙은 그 명성에 맞게 만만치가 않았다. 왼쪽으로 경사가 급한 슬랩 지대가 나타났는데, 과거에 수많은 비극과 무용담이 펼쳐졌던 힌터슈토이서 트래버스hinterstoisser traverse였다.

이 지점에는 아이거를 관통해서 융프라우 요호 정상까지 이어지는 터널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이 있다. 반대로 기차에 탑승한 관광객들은 터널 안에서 이 창문을 통해 북벽을 볼 수도 있다. 간간이 떨어지는 낙석을 피하며 책에서만 봐왔던 죽음의 비박death bivouac에 도달했다. 그 영광과 비극의 역사가 한순간에 소름 돋듯이 상기되었다. 어지럽게 널려있는 주인 잃은 장갑과 피톤, 아이스 스크루, 카라비너, 끊어진 로프 등이 장비의 주인이 성공했는지 아니면 살아서 돌아왔는지 아무 말 없이 심란한 암시만 줄 뿐이다. 마치 생생하게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셋째 날 새벽, 얼어붙은 램프의 급경사진 암빙 구간을 존이 힘들게 통과했다. 얇게 얼음이 덮인 부분을 피켈로 찍기도 하고 작은 돌출 부위에 온몸을 지탱하기도 했다. 경사는 급하지만 어렵지 않은 하얀거미white spider에 도착해서 한시름 놓았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발 밑에 펼쳐진 푸른 초원을 내려다보니 멀미가 날 정도로 환상적이다.

곧 정상 설릉으로 이어지는 엑시트 크랙exit crack에 접근했는데, 또다시 널려있는 장비들이 스산한 바람과 함께 이들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올라갈수록 트래버스가 의외로 까다로워졌다. 손에 잡히는 홀드도 불안하고 무게중심을 옮기는 일도 범상치가 않다. 이 지점에서는 후퇴할 수도 없다. 타협의 여지없이 무조건 올라가야만 했다.

사이먼은 중간에 확보물을 설치할만한 적절한 위치를 찾지 못한 채 무리하게 등반을 진행했다. 고도를 높이면 그만큼 추락 거리도 늘어날 것이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고 심장이 멎는 듯한 30미터를 돌파하고 간신히 정상의 좁은 테라스에 올라섰다. 탈진한 체력으로 남아있는 기운이 없었지만 그래도 성취감에 만족스러웠다.

페루에서의 등반사고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었던 사이먼은, 그해에 페루의 시울라 그란데를 다시 갔고 보나티 필라, 그랑 샤르모의 신 루트 개척, 아이거 북벽 등 괄목할만한 등반들을 기록했다.

■ 글 | 호경필(전 한국산서회 부회장, 대한민국산악산 산악문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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