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같이 웃고 떠느는 인도 영화관

인도의 유명 럭셔리영화관 PVR. (사진=PVR)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인도에서 영화 ‘인터스텔라’를 봤던 기억이 난다. 당시 한국에서도 워낙 인기가 있었으니, 당시 인도에 살았던 한국인들 역시 주말을 기다려 삼삼오오 극장으로 모여들곤 했다.

인도의 멀티플렉스 시설 역시 한국에 뒤처지지 않으니, 한글 자막이 없다는 불편함만 빼놓고는 아쉬울 점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정작 영화를 보고나자, 같이 영화를 관람했던 한국인 친구들은 분통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주변의 인도인들이 너무 시끄러웠다는 것이다.

영화가 절정에 치달을 무렵부터가 문제였다. 관객들의 반응이 격해진(?) 탓일 것이다. 관객들이 주인공을 향해 박수세례를 보내거나 휘파람을 불어대기 시작했다. 저들끼리 다음 내용을 예측하는 것은 예사요, 뒤에 앉은 관객은 언제 가져왔는지 커리와 등을 꺼내들고 식사를 즐기기도 했다. 사실 그 냄새는 좀 참기 힘들었다.

영화관이 처음이었던 친구들은 속된 말로 멘붕(?)에 빠져 좋은 영화를 놓쳤다며 툴툴거렸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그들의 문화인 것을.

당시 영화를 보았던 영화관이야 워낙 최신식 멀티플렉스였지만, 시골의 단관 영화관을 가면 그들의 풍경은 더욱 놀라워진다. 하도 기가 막힌 상황을 많이 목격하다보니 위의 사례는 그닥 특별할 것도 없다. 영화관 한 구석에서 식사를 즐기는 가족들은 예사요, 영화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인에게 전화통화로 중계하는 경우도 보았다.

아예 친구들끼리의 모임을 상영관 내에서 갖는 경우도 본 것 같다. 영화는 보거나 말거나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기 바쁘다. 어느 교수님에게 듣기로는, 아예 스크린 옆에 서서 다음 이어질 주인공의 대사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줄줄 읊는 관객도 보았단다. 영화를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자기가 이만큼 많이 봤다고 자랑하는 것일 터였다.

현재 ‘어벤저스: 엔드게임’을 둘러싼 열풍과 스포일러에 대한 일각의 논란을 보고 나니, 인도의 영화관 문화에 더욱 의문이 들 것이다. 이에 대해 한편에서는 인도영화에서 스포일러는 크게 의미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워낙 내용이 누구나 예측하기 쉽다는 이유에서다.

인도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고려하자면, 설득력이 있는 설명이다. 인도는 지역마다 쓰는 공용어가 다를뿐더러, 그 중 다수는 문맹이다. 이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영화라면, 그 내용은 쉽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흔히 ‘막장 드라마’가 그러하듯, 통속적이면서도 자극적인 소재는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보편적으로 선호되나 보다.

거기다 워낙 취미생활이랄 것이 없는 나라이다. 인도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늘 인도는 할 게 없다며 불평하기 일쑤이지 않는가. 영화가 사람들의 유일한 오락거리로 인식되기 시작하자, 상영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3시간은 예사인 러닝타임을 채우려면 춤과 노래만한 것이 없었을 것이다. 춤과 노래는 문맹들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영화 내내 뜬금없이 등장하는 군무와 노래장면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 탄생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아예 관객들이 자연스레 춤과 노래를 따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죽하면 연출자가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려는 데 더욱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기들끼리 영화관에서 한바탕 춤판 노래판을 벌이고 나면, 어찌 즐겁지 않을까. 오늘날에서야 영화가 예술의 한 갈래로 이해되지만, 공연 자체가 하나의 놀이문화로 인식되던 과거 셰익스피어 시대의 극장 문화가 생각나기도 한다. 후기 르네상스시대 극장에서는 심지어 성매매도 흔했다는 기록까지 있을 정도다.

그러니 인도 영화와 그들의 관람 문화를 비난해서는 곤란하다는 시각이다. 셰익스피어 역시 당시로서는 직관적이면서도 통속적인 이야기를 즐겨 썼고, 워낙 비극을 숭상하던 당시의 귀족 문화에서는 그를 애써 평가절하하기도 했었다. 그가 애초에 오늘날의 위상을 갖게 된 것도 빅토르 위고의 재평가가 있고 나서였다.

따라서 인도 영화 전체를 얕보아서는 곤란하다. 그들 역시 진지한 영화를 만들고자 하면, 오늘날의 기준에서도 깜짝 놀랄 정도의 걸작을 뽑아낼 수 있는 저력이 있는 국가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유명한 ‘세 얼간이’가 대표적이다.

최근 영화 중에서는 ‘피케이(PK)'나 ’내 이름은 칸‘, 혹은 얼마 전 국내에서도 개봉한 ’당갈‘ 등이 비평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남기기도 했다. 특히 피케이의 경우 현지에서 워낙 민감한 종교적 내용을 거부감 없이도 묵직하게 담아냈다는 호평이 자자하다. 

영화 당갈은 인도 여성도 레슬링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사진=당갈 공식페이지)

옛날 영화 중에서도 하나 언급하자면, 개인적으로는 1971년 개봉한 ‘아난드’라는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직업이 의사인 주인공이 언뜻 이상해 보이는 한 남자를 만나며 겪게 되는 인격적 성숙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서사 전개와 연출 방식이 매끄러우면서도 비범하다.

다시 스포일러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아무리 능청스런 인도인들이라 하더라도 이런 영화를 볼 때는 기존같이 스포일러를 남발할 것 같지는 않다. 그들 역시 진지한 영화를 볼 때에는 진지할 테니까. 한창 진지한 이야기하는데 춤추고 노래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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