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율 급격히 상승
-IMF 지원프로그램은 딜레마에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 (사진=BBC)

[데일리비즈온 이재경 기자]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현재 처한 어려움은 다음과 같다. 아파트 월세와 회사로 출근할 교통비를 부담하거나, 4인 가족을 먹여 살릴 식재료를 사야한다. 그러나 양 쪽을 동시에 해결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 경우 집을 포기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교외로 밀려나가다가, 그마저도 여의치 않게 되자 수도 중심가로 돌아와 길바닥에 내앉는다. 이제는 가족 전체가 시내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이 일상이다.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물가상승 속에 대외 부채 지급 능력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자국 통화 가치가 급락하자 국제통화기금(IMF)과 560억 달러(약 63조원) 규모의 구제금융 대출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문제였다. 구제금융 대출 이후 눈덩이처럼 불어난 물가상승률은 시장의 예상치를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에 마우리시오 마크리 현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 또한 희박해졌다. 당초 그는 대선 캠페인에서 “인플레이션을 잠재우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강조한 장본인이었다.

더군다나 마크리 대통령은 세금 인상과 재정적자 축소를 위한 정부 지출, 공공서비스 보조금 삭감, 세계 최고 수준의 물가상승률 등으로 국민의 거센 비판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해 아르헨티나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47.6%로 1991년 이후 가장 높았다.

이에 IMF 당국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IMF의 고위관계자 니겔 챠크에 따르면 “우리는 아르헨티나 당국과 함께 사태를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며, “빈곤문제는 우리의 계획에 심각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매년 약 50%씩 증가하는 인플레이션이 결정적인 문제라는 분석이다. 2018년 말 기준 빈곤율은 전 인구대비 32%까지 치솟았다. 마크리 대통령이 2015년 집권했을 때와 그닥 달라지지 않은 수치다. 빈곤율은 2017년 중반까지 25.7%까지 떨어졌지만, 작년 시작된 통화위기와 직결되며 이 수치는 다시금 치솟았다.

이번 달 반정부 시위가 격화됨에 따라, 정부 당국은 60가지의 생활필수품에 대해 가격상한제를 전격 도입했다. 이 60개 품목의 대부분은 식료품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기본적인 식료품의 가격을 진정시킴으로써 소비자들의 불만을 일시적으로나마 진정시키겠다는 복안이다.

당초 IMF의 목표는 아르헨티나 정부가 애초에 설정해놓았던 재정적자 목표치를 초과하더라도, 공공복지를 통해 사회안전망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4월 중순께 나온 IMF의 보고서는 “현재 재정적자 상한치는 예상을 뛰어넘는 인플레이션과 빈곤율 탓에 올해 GDP 규모의 0.2%에서 0.3%로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빈곤 문제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재정적자 문제는 향후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도 상존한다. IMF의 한 관계자는 이에 파이낸셜타임즈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만일 정부가 적자문제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시장은 본격적으로 아르헨티나의 재정건전성과 유동성에 대해 우려를 보내기 시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악의 경우 정부는 재정불균형을 해결하기위해 외채에 의존할 수 있다. 이 경우 부채 문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것이라는 것이 IMF의 예측이다.

이에 현재 상원의원인 좌파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도 마크리 대통령의 재임을 저지하기 위해 대선에 출마할 방침이다. 야권은 현재 물가 상승을 억제하고 연금을 인상하기 위한 관련 법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 역시 재임시절의 잇따른 부패 혐의로 그녀에 대한 여론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사진은 그녀의 불체포 면책권을 박탈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시민들. (사진=연합뉴스)

아르헨티나의 대선은 올해 10월에 치러질 전망이다. 그렇다면 페르난데스 측이 승리한다면 현재 운용되고 있는 IMF의 구제금융 정책에 변화가 있지는 않을까?

그렇게 될 확률은 희박해 보인다. 이전 페르난데스 정부의 경제부 장관이었던 악셀 키실로프는 최근 IMF 담당자와의 면담에서 “페르난데스는 이 프로그램을 지속시킬 것”이라고 일단 확답을 내리긴 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이러한 정책 변화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다. 그만큼 그들의 삶은 시급하다는 것이다. 존스홉킨스 대학의 이코노미스트인 스티브 한키는 최근 실업률, 인플레이션, 이자율 등을 토대로 계산한 ‘빈곤지수’에서 아르헨티나가 세계 2위의 불명예를 안았다고 설명했다. 베네수엘라가 해당지수의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다소 과장되었다는 연구자들의 분석도 있다. 관계자들은 “빈곤수치가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사회복지 프로그램이 현상을 더욱 효과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는 IMF의 구제금융 및 확대재정 프로그램이 학교를 만들고, 슬럼가의 길을 정비하고, 살인률을 낮추며, 마약과의 투쟁 등의 방법을 통해 약 250만 명의 시민들을 구제할 수 있다는 옹호론에 기초하고 있다.

이에 파이낸셜타임즈에 실린 한 시민의 인터뷰는 인상적이다. 그는 “물론, 정부는 시민들의 호응을 얻을만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내 가족과 자식들이 굶고 있다. 길가에 내앉은 사람이 몇 백만 명이 넘는다. 어느 정부든 별다른 수가 있겠느냐”

저작권자 © 데일리비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