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에 상륙한 지하디스트의 위협

IS 지하디스트가 코란과 깃발을 들고 있다. (사진=IS선전지 다비크)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국가의 다사다난한 역사와 데오반디즘(남아시아의 엄격한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이슬람 학교의 전통주의자에서부터 지하디즘에 투신한 중산층 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집단의 형성으로 인해 과격단체가 급속하게 확산됐다.”

과거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소속 연구원을 지낸 바 있는 장뤽 라신은 남아시아에 잠식하고 있는 지하디스트의 위협에 대해 위와 같이 평가한 바 있다. IS의 흥기와 함께 온건한 대다수의 무슬림들 사이에 극단주의의 분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한 지가 몇 년. 이른바 ‘이념적 긴장상태’는 파키스탄이나 방글라데시, 그리고 스리랑카를 중심으로 최근까지 이어져왔다.

이 균형을 깬 것이 과거 2013년부터 방글라데시에 반이슬람주의 성향으로 평가되는 유력인사들에 대한 표적암살이었다.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선언한 블로거 아흐메드 라집 하이데르가 첫 번째 희생자가 됐다. 암살자들이 체포됐음에도 불구하고, 2014년과 2015년 표적 암살은 급증했다.

블로거, 발행인, 자유주의 지식인, 동성애 또는 성전환 운동가들에 이어 수니파 극단주의자들을 고발한 모든 이들이 표적이 됐다. 시아파 사원의 신자, 기독교 신자, 힌두교 성직자는 물론 외국인 주재원 두 명(이탈리아인과 일본인. 아이러니하게도 3년 후 대규모 테러 당시 살해당한 외국인의 다수 역시 이탈리아인과 일본인이었다)까지 모두 50여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암살자들은 방글라데시인이었지만 알카에다와 IS조직이 사후 그들의 배후를 자처했다. 

◆ 방글라데시에 암약한 지하디스트

과거 IS조직이 힘을 얻자, 2011년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으로 이미 세력이 약해진 알카에다는 변방으로 밀리게 됐다. 이 맘 때쯤 새로이 알카에다의 수장이 된 아이만 알 자와히리는 2014년 9월 “인도아대륙의 성전을 위한 알카에다(AQIS)”의 창설을 선포했다. 그때부터 방글라데시는 요주의 대상이 됐다.

다카의 유력 일간지 ‘더 데일리스타’의 2014년 기사에 따르면 알 자와히리는 “인도아대륙의 움마(이슬람교 신앙공동체)의 약화”가 진정한 목표였던 독립의 의미가 퇴색됐다고 비난하면서 방글라데시 ‘형제들’에게 침략자들과 그들의 ‘상대로 반란을 일으켜야 한다고 선동했다.

AQIS(알카에다와 연계한 방글라데시 지부)는 블로거와 자유주의자들의 암살을 자행했다고 주장했고, IS조직은 과거는 물론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변절자들’에 대한 투쟁을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기서 변절자들이란 아와미 연맹은 물론 BNP, 심지어 자맛-에-이슬라미까지 포함한다. 이는 이슬람주의 운동 간 격렬한 대립관계를 여실히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2016년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한 대규모 테러는 결정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명 ‘IS의 동진’이라고도 불리는, 인질 21명이 사망한 한 베이커리에서의 테러는 오늘날 극단주의에 경도되고 있는 남아시아 이슬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더욱 문제는, 현상을 대하는 정치인들의 태도였다. 방글라데시의 양대정당인 아와미 연맹과 BNP는 서로 상대방 탓을 하기 바빴고, 전문가들은 IS조직과 알카에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정권의 부인 정책을 비난했다. 

테러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더 데일리 스타의 주필은 BNP가 “국가의 정치, 문화적 에토스”를 농락했고 아와미 연맹은 “이슬람주의의 위협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해 꾸준히 애쓴다”는 이유로 그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았다.

◆ 우려는 스리랑카에서 폭발

이미 존재하는 극단주의의 존재를 애써 부정하는 방글라데시 정부의 태도는 오늘날 이웃국가인 스리랑카에서도 동일하게 재현되고 있다.

21일 콜롬보와 인근 세 곳의 성당, 네 곳의 호텔 등 8곳에서 일어나 현재(23일까지) 3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폭탄테러는 아직 그 실상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현지의 이슬람조직 NTJ(내셔널 타우히트 자마트)을 이번 사건의 배후로 지목한다. 앤 스펙하드 국제극단주의연구센터 소장은 뉴욕타임스에 “NTJ의 목표는 반란이나 분리주의가 아니다”라며 “스리랑카에 지하디스트 운동을 들여와 증오, 공포, 분열을 조장하는 게 그들의 목표”라고 말했다. 불교도와 힌두교도가 다수인 스리랑카에서 이슬람 '성전'(聖戰)을 일으키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21일 스리랑카의 주요 도시에서 자살폭탄 테러 사건이 잇달았다. (사진=kbs뉴스)

만일 그렇다면, 중동에서 밀려난 IS가 스리랑카 출신 조직원을 앞세워 NTJ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분석은 제법 설득력이 있다. 최근 남아시아의 극단주의세력은 중동에서 촉발된 이벤트에 의해 수시로 영향을 받았다. IS에서 밀려난 알카에다가 파키스탄 및 방글라데시에 자신들의 지부를 마련했듯, 시리아에서 거점을 잃은 IS가 스리랑카에서 암약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전의 알카에다이든, IS이든 그 주체는 크게 중요치 않다. 망치를 들고 불상의 머리를 부수는 수준의 공격을 저질렀던 NTJ가 외부의 도움으로 이러한 사건을 일으킬 수 있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일부에서는 “IS에 가담하기 위해 중동으로 떠났던 스리랑카인 중 일부가 귀환해 자국 내 급진주의자들을 육성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다른 한 쪽에서는 “인도와 파키스탄 등 주변국 급진주의 단체와 연결됐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은, (파키스탄의 일부를 제외하자면) 온건한 이슬람이 대다수였던 남아시아 각국 또한 이제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무사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과거 방글라데시의 정치인들이 그러했듯이, 정권 유지를 위해,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해, 수니파 온건 이슬람세력의 지지를 위해 애써 부정해왔던 진실을 이제는 드러내야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는 자연히 과거 월스트리트저널의 이전 보도를 생각게 한다. 최근에는 인도에서도 IS와의 연계가 의심되는 테러단체 조직원들이 체포되기도 했다. 인도 국가수사국(NIA)과 경찰은 2017년 텔랑가나 주의 주도 하이데라바드의 구시가지에서 해외 IS 조직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혐의로 11명을 체포한 바 있다. 해당 지역은 인도 내에서도 무슬림 밀집 지구 중 한 곳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확산되는 지하디스트의 위협에 대한 각국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종파적 갈등에 워낙 민감한 인도의 경우 이와 관련해 민감하게 대처한 반면, 스리랑카의 대처는 3년 전 방글라데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3일 미국과 인도 보안당국이 '스리랑카에서 공격이 준비되고 있다는 징후를 포착했다'고 스리랑카 정부에 경고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스리랑카 정보 당국은 “늘 있는 일”이라며 관련 경고를 무시하다가 대비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에 힐미 아하메드 스리랑카 무슬림위원회 부위원장은 이에 더해 여러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NTJ 조직원 명단과 관련 세부 정보를 담은 모든 서류를 3년 전에 정보 당국에 전달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를 뭉개버렸다. 이번에 테러를 일으킨 이들은 그 때 바로 그들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비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