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타카’ 속 유전자 가위 기술 현실에 적용돼
-자유 의지 없는 배아의 유전자 넣고 빼는 것에 대한 우려도

특정 유전자를 제거하는 기술인 크리스퍼 기술은 일명 유전자 가위 기술로도 불린다. (사진=픽사베이)
특정 유전자를 제거하는 기술인 크리스퍼 기술은 일명 유전자 가위 기술로도 불린다. (사진=픽사베이)

[데일리비즈온 김소윤 기자] 지난 1990년대 개봉한 영화 ‘가타카’는 공상 과학 영화의 조상으로 불리는 작품이다. 유전자로 신분이 결정되는 가상의 미래사회가 배경인 영화에선 열성인자를 가지고 태어난 주인공이 유전인자로 신분을 위장해 우주항공사라는 꿈을 이뤄낸다.

영화의 배경은 유전자를 디자인하는 것이 일상이 된 세상이다. 주인공 빈센트는 자연임신으로 태어났는데 우성 인자들만 갖춰진 미래 시대에 돌연변이에 가까운 인간으로 분류됐다. 태어나자마자 ‘부적격자’ 낙인이 찍힌 것. 빈센트가 살아가는 시대엔 성격과 질병, 지능 등 유전자를 조작해 최고의 인자를 갖춘 우성 인자들을 찍어내고 있었다.

빈센트는 심장질환 가능성 90% 이상, 우울증, 집중력 장애, 근시 등을 가졌으며 기대수명은 30세에 불과할 것이란 판정을 받았다. 낙심한 빈센트 부모는 그의 동생을 유전자 조작을 이용해 나쁜 인자를 모두 제거해 완벽한 인간으로 만들어낸다.

태어나자마자 유전자 검사를 통해 부적격자 판정을 받은 영화 가타카 속 주인공 (사진=네이버 영화)
태어나자마자 유전자 검사를 통해 부적격자 판정을 받은 영화 속 주인공 (사진=네이버 영화)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유전자 가위다. 나쁜 DNA를 잘라낸다는 개념의 유전자 가위는 크리스퍼 기술이라고도 불린다. 마치 가위처럼 원하는 곳의 DNA를 정교하게 잘라낼 수 있는 기술이다. DNA의 특정 염기서열을 인지해 절단할 수 있다.

이 기술의 적용 범위는 멸종된 생물을 복원하는 것도 포함될 수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하버드대 연구진은 더운 나라에 사는 코끼리 DNA를 변형해 추위에도 견딜 수 있도록 바꾸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 말라리아로 옮기는 모기 등 인간에게 해로운 생물이 더 번식하지 못하도록 유전자를 변형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논란이 컸던 광우병과 관련해서도 이 병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을 제거하는 기술도 연구되고 있다.

동식물 품종 개량에도 유용하게 쓰인다. 단백질 흡수를 떨어뜨리는 피트산 함량을 낮춘 옥수수, 근육 발달을 막는 마이오스타틴 유전자를 제거한 돼지 등이 사례로 꼽힌다. 희귀 질환 치료에도 쓰일 수 있다. 하버드대 연구팀은 크리스퍼 기술을 이용해 인간에게 이식했을 때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돼지의 62개 DNA 조각을 제거하는 연구를 지난 2015년 성공했다.

우리나라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 교정 연구팀도 크리스퍼 염기서열 기술을 통해 특정 DNA 염기를 교체하는 실험에 성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기술은 비정상 DNA 염기를 정상 DNA 염기로 교체하는 기술로 난치성 유전 질환 환자들에게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게 됐다.

미국에서는 유전자 가위 기술로 원숭이의 심장병을 치료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픽사베이)
미국에서는 유전자 가위 기술로 원숭이의 심장병을 치료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픽사베이)

유전자가위로 심장병을 치료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지난해 사이언스타임즈에 따르면 펜실베니아대 과학자들이 유전자편집 기술을 적용해 원숭이의 심장병을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르면 연구진은 어른 원숭이의 간세포 유전자 기능을 약화시켜 콜레스테롤 생성량을 낮추고 심근경색을 치료할 방법을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심장병 외에도 단백질 결함이 있는 유전병 치료가 가능해졌음을 시사한다. 실조증, 고혈압, 백색증, 신경섬유종 등 치료하기도 힘든 질환들이 포함된다. 펜실베니아 교수는 영장류를 통해 치료 가능성을 확인한 최초의 사례라며 향후 불치병 치료제 개발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전했다.

최근엔 과학자들이 유전자가위 기술을 활용해 초기 인간 배아 속에서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교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과 중국에서는 인간 배아 대상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치료 임상실험을 허가했다. 연구가 활발해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 결과 유전자가위 기술을 통해 고관절 형성 부전 원인이 되는 유전자 기능을 제거해 환자의 면역력이 높아지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모든 기술이 장단점이 있듯 부작용 우려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일단 생명 윤리 논란이 먼저다. 착상 전 인간의 배아에게 유전자 가위를 사용하는 것을 두고 마치 살아있는 생명을 입맛대로 물건처럼 맞춤형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냐는 우려도 나온다. 심지어 자유 의지가 없는 배아의 유전자를 빼거나 넣는 것이 윤리적으로 맞겟느냐는 지적이다.

영화의 우려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두에 언급한 영화 ‘가타카’에선 자연 임신으로 태어난 주인공은 매우 열성한 유전자를 지녀 부적격자였다. 반대로 동생은 기술을 통해 우월한 유전자만 가지고 태어났다.

이 영화에 나오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주인공의 동생과 같이 유전자 가위 기술을 통해 우월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이들이었고 때문에 자연 임신으로 태어난 주인공이 돌연변이가 되는 상황이었다. 이는 또 빈부 격차에 따라 유전자도 차이가 날 수 있다는 무서운 상황을 상상하게 한다.

과학 기술의 발달은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또 다른 우려를 가져온다. 유전자 가위 기술이 바로 그렇다. 영화 속 환경을 생각한다면 연구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기술 윤리 제도를 먼저 논의하는 것도 필수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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