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화의 경제학] ⑦ 마드리드, ‘카탈루냐의 불꽃’ 재점화
[분권화의 경제학] ⑦ 마드리드, ‘카탈루냐의 불꽃’ 재점화
  • 박종호 기자
  • 승인 2019.04.15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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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준 자치권, 쉽게 빼앗을 수 있나?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조기 총선을 앞두고 카탈루냐 민족주의 진영에 강경한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여당인 사회노동당이 전임 국민당내각을 실각시키는데 협조했던 카탈루냐 민족주의 정파의 도움 없이도 여당의 총선 승리가 예상되자 유화 제스처를 버리고 헌법 수호라는 '원칙론'으로 돌아선 것으로 풀이된다.

“헌법이나 카탈루냐 자치법이 또다시 위반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 정부는 어떤 도전에도 비례의 원칙에 따라 강력히 대처할 것이다. 우리는 헌법을 지켜야 하는 정부이고, 국가 전체가 헌법을 따르도록 해야만 한다. 만일 카탈루냐가 또다시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마리아노 라호이 전 총리가 했던 것처럼 헌법 제155조를 발동해 카탈루냐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직접통치에 나설 수 있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14일 일간지 오이(Hoy)와의 인터뷰에서 돌연 카탈루냐의 분리독립 움직임에 대해 강경한 움직임을 시사했다. 산체스 총리의 이번 발언은 취임 초기 카탈루냐의 민족주의에 대한 유화적 태도에서 180도 달라진 스탠스다. 오히려 ‘자치권 박탈’, ‘직접통치’같은 수사의 등장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산체스 총리는 우파 국민당 내각을 중도 실각시키고 작년 6월 집권한 뒤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킴 토라 수반과 전격 회동하고 스페인-카탈루냐의 공동 각료회의를 7년 만에 부활시키는 등 화해분위기 조성에 힘쓴 바 있다.

최근 산체스 총리의 카탈루냐에 대한 태도 변화는 조기 총선을 앞둔 정치지형이 취임 때와는 크게 달라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가 이끄는 좌파정당 사회노동당은 우파 국민당의 대규모 부패 스캔들이라는 기회를 포착, 의회에서 카탈루냐 민족주의정파들의 협조로 라호이 총리 내각을 실각시키고 집권했다.

그러나 산체스는 집권 후에는 여전히 하원 제1당인 국민당의 국정 운영 비협조로 소수내각의 한계에 직면했다. 결국 2월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이 카드가 보기좋게 적중하자, 상황도 변했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사회당의 지지율이 올랐던 것이다. 이에 따라 산체스의 카탈루냐에 대한 입장도 급선회했다. 선거를 2주 앞둔 현재 사회당은 각종 총선 여론조사에서 30% 초반대의 지지도를 보여, 의회의 제1당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사회당은 카탈루냐 소수 정파의 협조 없이도 급진좌파 포데모스와 바스크민족당 등 기타 군소 정파들의 세를 규합하면 과반 의석 확보가 유력하다. 좌파 연립정부 구성의 가능성 역시 높아지고 있다.

◆ 라호이시절로 회귀하려는 움직임

그 동안 스페인 정계는 늘 부패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전 라호이 정권의 주축이자, 현재 제1야당인 국민당은 워낙 독재자 프랑코의 정권을 계승하는 당이다. 과거사 문제나 카탈루냐의 자치권 확대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지지부진하다. 카탈루냐 민주연맹은 8석을 가지고 있지만 전국정당인 국민당에 단독으로 대항할만한 처지는 못 된다.

더군다나 2017년 카탈루냐 내 전 지역으로 확산되었던 분리 독립의 움직임 역시 국민당 내부에서 조장한 결과라는 의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세바스티앵 보에르 툴루즈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이에 작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기고한 글을 통해 “국민당 정부는 자신들의 부패혐의가 늘 국민들의 감사대상이 되어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그들은 늘 카탈루냐의 독립 움직임을 자극하는 것으로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려 했다”고 지적했다. 예나 지금이나 지역주의를 자극하는 것만큼 잘 먹히는 소재도 없었다.

마리아노 라호이가 국면 전환용으로 내놓은 국민당의 헌법소원 청구로 카탈루냐 자치권 확대가 무산되었다. 당시 국민당은 선거에서 예상보다 적은 의석을 확보했고, 국민당을 향한 공격도 끊임없던 시기였다. 라호이는 이에 스페인 전역을 돌아다니며 카탈루냐 자치권에 반대하는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선동은 카스티야를 중심으로 다시금 먹혀들었다.

장 세바스티앵 모라 르몽드 기자는 과거 한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위와 같은 분석에 설득력을 더해 주었다. 라호이 총리의 강경 전략은 카탈루냐 문제해결 의지보다는 소속 정당의 위기 탈출구라는 것이다.

과거 카탈루냐 자치법의 14개 조항 삭제부터 최근 사건까지, 내전의 상처가 여전히 남아있는 나라에서 라호이는 본인도 감당할 수 없는 사태를 유발했다는 악평을 듣곤 한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카탈루냐 인구 12%만이 지지하던 카탈루냐 분리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해줬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전 총리. (사진=연합뉴스)

◆ 핵심은 재정분권화에 있어

국민당 정부의 비관용적인 자세에 더해 경제적인 긴장감은 양측의 사이를 악화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과거 2008년 리먼 사태는 유럽 중에서 특히 남부 유럽에 막대한 타격을 줬다. 여기에는 스페인도 속했다. 카탈루냐도 피해를 비껴갈 수는 없었다. 기업이 도산했고 실업자가 증가했다.

자료에 따르면, 위기의 시작부터 2013년까지 카탈루냐 민간에서 사라진 일자리 개수는 약 56만 개에 달했다. 상대적으로 스페인에서 부유했던 카탈루냐였기에 충격은 더 컸다. 카탈루냐 자치주에는 약 4000개의 다국적 기업이 들어와 있고, 자치주의 GDP는 약 2200억 유로(약 300조 원)에 달한다. 스페인 GDP의 5분의 1을 담당하는 지역이자, 포르투갈의 전체 GDP와도 비슷한 수치다. 이런 경제적 토대에 주목해 스페인 각지와 세계 각국에서 자본이 몰렸다. 

이에 카탈루냐는 과거부터 마드리드와 카탈루냐의 경제적 불균형에 불만을 드러냈다. 2012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카탈루냐가 스페인 정부에 납부하는 세금은 스페인 정부로부터 받는 분배금보다 훨씬 많았다. 그 차이는 연평균 120억~160억 유로(약 16조 원~21조7000억 원)에 달했다. 정치적으로 적대적인 중앙정부가 경제적으로도 뺏어 간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히기 시작했다.

당시 주민투표를 카탈루냐의 ‘재정 자주권 되찾기’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은 이유다. 스페인의 바스크 지역은 중앙정부와 약정을 맺고 지역 관할의 세금을 각 주가 징수해 일부를 중앙 정부에 납부한다. 반면 카탈루냐는 스페인 정부 다른 15개 주와 함께 일반적인 세제에 포함돼 있다. 국가가 징수해 그것을 각 자치주에 '탑-다운' 형태로 배분하는 시스템이다. 

반면 카탈루냐 자치주는 이 분배 방법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바스크 지방의 경우 카탈루냐보다 더 이질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고, 소득수준도 카탈루냐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중앙과의 협약으로 세금징수 등 재정운용이 자치적인 편이라 현재는 독립 목소리가 크지 않은 편이다. 기타 자치권의 정도도 카탈루냐에 비해서는 독립국가 수준으로 높은 편이라 별다른 이슈가 있지 않는 한 연방정부에 적대적일 필요가 없다.

따라서 2017년에 마침내 크게 터진 카탈루냐 독립투표 사태는 기본적으로 예산에 관한 완전한 자치권을 얻고자 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언론들도 당시 ‘연방정부와 카탈루냐의 다툼은 재정 자치권을 둘러싼 제로섬 게임’이라는 맥락의 의견을 중점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사실 중앙정부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애초에 지방정부가 예산을 완전히 자율적으로 사용하는 안을 쉽게 받아들일 중앙정부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예산의 완전한 자율적 사용은 사실상 다른 나라로의 독립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더더군다나 이는 국가의 균형발전이라는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자치권은 흔히 세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재정, 정치, 행정적 자치권이 바로 그것이지만, 대개 명확한 수치로 판단하기 쉬운 재정 자치권이 연방주의의 관계를 규명하기 좋은 토대가 되곤 한다. 그러나 전술하였듯 재정 자치권의 확대는 연방정부로서는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다. 연방제에서의 자치권 문제란 얼마를 주느냐보다, 주느냐 혹은 안 주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필립 로이더 미국 캘리포니아 대 교수는 2009년 실린 그의 유명한 논문을 통해 “자치권의 궁극적 확대는 민족국가의 소멸”이라고 주장했지만 동시에, “자치권의 무한정 축소는 동시에 분권화의 종말”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정부가 그렇다고 이 둘 가운데 합의점을 찾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로, 종국에는 대부분이 자치권을 소멸시키는 길을 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것이 연방제의 딜레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은 그간 꽤 선방한 축에 속했다. 바스크에게 허용한 독립국가 수준의 자치권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간 유수의 대학에서 연구한 바에 따르면 스페인의 지방정부에 허용한 자치권의 정도는 타 국가 대비 꽤 너그러운 편이었다.

다시금 독립의 물결이 불고 있는 카탈루냐. (사진=연합뉴스)

다트머스 대학의 한 젊은 교수진과, 런던 대학교(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2010년 연구를 종합한 결과, 스페인은 연방주의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깊은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에 비해서는 분권화의 정도가 덜하지만, 상대적으로 연방제를 채택한 역사가 짧은 국가들(인도, 말레이시아, 벨기에, 나이지리아)나, 연방국은 아니지만 분권화된 국가(이탈리아, 중국)에 비해서는 월등했다.

더더군다나 스페인 역시 프랑코 독재정권이 마무리된 1978년 연방제를 채택한 이후, 상대적으로 연방주의가 사회 내에 뿌리내릴 시간이 적었다는 점을 고려해보자. 그렇다면 오늘날의 커다란 잡음에도 불구하고 연방제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운용해왔다는 평을 내릴 수도 있다. 더군다나 연방제로의 선회와 진행과정이 스페인과는 똑 닮았던 벨기에의 분권화 정도가 제3세계의 ‘신생 연방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긍정적으로 평가할 여지는 충분하다.

◆ 마드리드가 연방주의에 먹칠을 가해

필립 로더 교수는 한없는 집중화의 수렁에 빠지는 연방정부들의 경우, 그들에게는 다양성에 앞서 국가의 안보와 정체성을 더 중히 여겨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서 집중화는 분리독립 움직임에 의한 국가해체를 막기위해 필요한 ‘필요악’에 가깝다고 이해한다.

그만큼 연방제는 어려운 것이다. 결국에는 집중화를 택한 (혹은 택한 경험이 있는) 스페인, 벨기에, 인도, 말레이시아,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 등 대부분의 신생 연방국에게는 어느 정도 이를 고려한 면죄부가 주어져야 한다는 입장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 분권화는 답이 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아예 존 맥개리 캐나다 퀸스 대학교수는 2011년 연방제 연구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학술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연방국이 점차로 분권화될 경우 분리독립의 가능성은 이에 비례해 높아지는 경향성을 보인다”고 정리했다. 

그러나 스페인의 경우 약 10년간 전개된 ‘자치권 부여’의 실험들은 국가안보와 거버넌스를 고려한 마중물이었다고 보기에는 힘들다. 전술하였듯이, 마드리드의 권력자들은 권력 유지와 혹은 권력 집권을 위한 카드로 카탈루냐의 재정 분권화를 ‘이용’했다는 의혹이 있기 때문이다.

자치권이 없는 이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해야 하나를 고민하는 것은, 국가운영의 철학에 따라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상당한 수준의 자치를 누리는 이들의 권한을 ‘빼앗는’ 것은 그야말로 연방제의 매커니즘상 최악의 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자치권을 부여하지 않는 것과 빼앗는 것은 애초에 다른 문제이며, 애초에 이미 화가 나 있는 상대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상대의 가진 것을 빼앗는다’는 최악의 협상 전략에 속한다.

◆ 자치권을 기분 따라 빼앗을 수 있나?

이번 산체스 총리의 담화 역시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과거 스페인 총리 마리아노 라호이가 국면 전환용으로 내놓은 국민당(PP)의 헌법소원 청구로 카탈루냐 자치권 확대가 무산된 것이 채 몇 년이 지나지 않았다.

이에 장 세바스티앵 모라는 "산체스는 현재 선거에서의 승리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만을 믿고, 과거 우군이었던 카탈루냐 지역을 다시금 헌신짝처럼 버리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외대의 페레이라 헬더 교수는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자치권을 빼앗으려는 시도는 더 큰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미국 필라델피아대학의 팔레티 교수의 유명한 저서, <라틴아메리카의 민주화와 분권화>에 실린 주장을 재인용하며 “재정 분권화에서 불만족을 느꼈다면, 카탈루냐는 차례로 일상에서의 불편함에도 눈을 뜰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정치적 분권화의 요구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정치적 분권화는 과거 팔레티 교수의 주장을 필두로, 분권화 연구자들의 공통된 가정인 ‘중앙정부가 가장 주고싶지 않은 종류의 자치권’에 해당한다. 그 다음은 재정 자치권, 마지막이 행정 자치권 순이다. 그러나 오늘날 다시금 재점화되고 있는 카탈루냐 독립의 불꽃은 이미 일상으로까지 번져있다.

카탈루냐 독립을 지지하는 한 시위대 여성. (사진=BBC)

애초에 재정 자치권의 수준이 오락가락하는데, 행정 자치권의 수준이 높을 리 없다. 오히려 그간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재정 자치권을 누려왔지만, 카탈루냐의 주민들이 행정적으로 누리는 편익은 무척 적은 편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가령, 카탈루냐에서 러시아를 가기 위해서는 마드리드 공항으로 가야만 한다. 스페인 정부가 러시아는 마드리드 공항에서 출발한 항공편으로만 갈 수 있다는 조약을 러시아와 체결했기 때문이다. 카탈루냐에도 이미 훌륭한 공항이 있지만, 유럽의 주요 거점으로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드리드로 향해야만 한다.

카탈루냐와 상의도 없이 카탈루냐 중부로 흐르던 강을 남부인 안달루시아로 돌리려고 계획했던 일은 유명하다. 해당 사건은 아직까지 카탈루냐 지역의 윗세대에게는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물론 당시에도 대대적인 독립 운동이 벌어졌다. 그러나 더 마음아픈 일은 이미 60년대에 벌어졌던 당시의 ‘해프닝’과 지금은 사실 많은 것이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페인에는 연방제가 들어섰고, 카탈루냐는 자치권을 얻었으며, 연방정부는 좌와 우가 번갈아가며 집권하는 양당 내각제가 뿌리내리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카탈루냐를 대하는 태도에는 무엇이 바뀌었는가?

이에 세바스티앵 보에르 교수는 마드리드의 지도자들에게 묻는다. “그들에게 카탈루냐는 무슨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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