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명부에 자신의 이름이 없다면

인도의 무슬림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인도 뭄바이에 사는 지샨 살림 무타니는 올해 28세로, 그의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여유롭지는 않지만, 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종종 아파트의 경비 일도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그에게 이번 총선은 무척이나 기대되는 정치 행사다. 그는 늘 야당인 인도국민회의(INC)를 지지해왔다. 힌두교 국가에서 사회적으로 무시당하는 무슬림 신자에게 힌두민족주의를 대변하는 여당인 인도인민당(BJP)는 늘 꺼림칙했다.

그런 그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다. 3월 16일 인도 선관위가 직접 그의 이름이 선거명부에 없다고 전해왔던 것이다. 이유인즉슨 그가 18세 이하로 선거권이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무타니는 분명 1991년에 태어났으며, 당연히 그가 올해 28세임을 밝히는 신분증도 있었다.

무타니의 사연은 곧 뭄바이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지만, 알고 보니 석연치 않은 이유로 졸지에 ‘선거를 못 하게 된’ 사람은 무타니 뿐만이 아니었다. 

무타니의 사례는 곧 Missing Voters라는 온라인 어플리케이션에 등록되었다. 이 앱은 작년 무타니와 같은 사람들의 소식을 공유하고, 또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현재 안드로이드에서 8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하고 있다.

이 앱의 개발자는 소프트웨어 앤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칼리드 사이풀라로, 그는 “무려 1억이 넘는 투표권자가 선거명부에서 삭제되었을 수 있다”며, 그 중 7000만 명은 무슬림이나 달리트(불가촉천민)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계급적 전통이 깊게 남아있는 인도사회에서는 아직도 불가촉천민이 경제적으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은 현실이다.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상의 ‘선거권 박탈’이 지향하는 바는 분명했다. 자기목소리를 낼 힘이 없는 소수 종교집단이나 계층을 노린 고의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이들 집단에서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 모디 정부의 총선을 앞둔 노림수가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야당지지자들을 향한 공공연한 공격 및 선거 방해 행위는 일찍이 멀게는 미국에서, 가까이는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논의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여태껏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의된 적이 없었다.

“오늘날 인도 사회는 종교적, 계급적, 계층적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어요. 인민당이나 국민회의는 상대적으로 엄청난 정치자금을 보유하고 있거든요. 이들이 이 자금을 바탕으로 유권자에게 직접 접촉하기보다는, 선거 관계자들을 직접 매수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죠.”

이전에 인도 선관위원장을 지낸 적이 있는 쿠라쉬는 파이낸셜타임즈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어떠한 것도 가능하다”며, “한 지역의 유권자명부를 아예 없애버리는 것도 가능한 현실이다”고 전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소수자 및 취약계층을 향한 투표 방해행위는 주로 무슬림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무슬림은 아직도 인도 내에서 13%를 차지하고 있는 집단일뿐더러, 모디 총리와 여당인 인민당의 주요 타깃이 되어왔다.

애초에 모디는 구자라트 주지사 재임 시절, 2002년에 일어난 무슬림 학살의 주역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공식적으로 드러난 바는 없지만, 그를 지지하는 인도인들마저 총리가 해당 사건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는 형편이다.

‘구자라트 학살’은 느닷없이 발생한 기차 화재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002년 2월27일 구자라트 주의 고드라 역을 떠난 기차가 발차 이후 몇 분 지나지 않아 원인 모를 화재에 휩싸였다. 58명이나 되는 승객이 순식간에 사망했다. 통로로 통하는 문은 양쪽 다 잠겨 있었기에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었다.

구자라트 학살 당시의 폭동 장면. (사진=뉴욕타임스)

2017년 구자라트 주의회 선거 당시에는 고드라에서 여당인 인민당이 불과 258표 차이로 상대 진영을 누르고 승리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2002년 학살이 일어난 그 장소이자, 무슬림들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던 곳이기 때문에 더윽 의아한 결과였다. 실제로 야당 진영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되기도 했었다.

이변의 원인이 무엇일까? 당시의 소요사태로 1000명이 넘는 무슬림들이 고향을 등진 탓도 있겠지만, 최근에는 인민당의 조직적인 선거방해가 가장 큰 이유로 언급되고 있다. 사이풀라가 개발한 앱의 프로그램에 따르자면, 구자라트의 일부 지역에서만 수천 명의 무슬림 유권자들의 기록이 증발했다는 것이다.

구자라트의 주의회 선거 직후, 사이풀라와 17명으로 구성된 그의 연구진들은 카르나타카 주의 2018년 주의회 선거의 선거명부 기록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카르나타카는 인도에서 규모로나, 인구로나, 경제적으로나 부유한 주에 속하기 때문에 연구대상으로 적절한 지역이었다.

선거명부와 센서스 기록을 대조해서 조사한 결과, 그들은 한 주에서만 무려 150만 명의 무슬림 유권자들의 기록이 삭제되었다고 주장했다.

센서스 통계는 일찍이 투표권을 가진 이가 가족 내에서 1명인 가정의 비율이 5% 이하라고 밝혔다. 인도사회는 워낙 대가족 위주인데다, 결혼해도 분가하지 않고 부모나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이들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그다지 놀라울 것 없는 수치였다.

사이풀라 연구진들은 이 점에 주목했다. 선관위가 제시한 선거명부를 센서스와 면밀히 비교검토한 결과, “선관위에서 발표한 선거명부 통계에 따르면 투표권자가 1명인 가정의 비율이 전국적으로 10%가 넘는다”고 폭로했다. 

무슬림이나 불가촉천민 가정의 경우 더했다. 전국적으로 17%에 달했으며, 어느 주에서는 20%을 넘기도 했다. 이들이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고의적으로 누군가가 이들의 명단을 선거명부에서 지워버려야 설명할 수 있다.

사이풀라는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진 다른 연구결과와 자신의 데이터를 비교하기로 했다. 우타르 프라데쉬, 마하라슈트라 등지에서 10개가 넘는 선거구를 발로 뛰며 조사한 결과를 접하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오류를 수정하려 했다.

그는 여러 NGO와 협업으로 이루어진 이 프로젝트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연구결과에 확신을 얻었다. 그는 여러 매체에 지난 선거에서는 명백하게 선거권을 행사했으나, 이번 선거에서는 자신의 이름이 명부에서 사라졌다는 사람들의 탐문 인터뷰 결과 더욱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사이풀라의 프로젝트는 약 800개의 선거구에서 1억2000만 명의 유권자가 자신의 선거권을 빼앗기고 있다고 말한다. 더더군다나 이러한 행위는 정치 이슈에 상대적으로 무지하고, 문해율이 낮은 지역에 집중된 형태를 보인다.

그는 이에 '투표권을 돌려주는' 운동을 전개하고자 최근 5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그리 밝지 못하다. 그 자신도 자신들의 연구와 활동이 널리 알려지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무슬림과 달리트 집단들은 교육을 받지 못하고, 행동력이 부재한 경우가 많아요. 아무도 그들의 이름이 선거명부에 올라있나 확인하지는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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