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접어들어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페미니즘이 지구촌 사회의 가장 핫한 이슈로 떠올랐다. 과거에 여성들의 목소리가, 단체 행동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는 별로 귀를 세우지 않았고 차별의 운동장은 기울어진 채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지금의 페미니즘은 양상이 사뭇 다르다. 정치 경제 사회 순수문화 대중문화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의 깃발이 펄럭인다. 페미니즘은 치열하게 거리에서 행진 중이고 금기의 언어에서 해방돼 가고 있다. 

지금의 페미니즘은 남녀차별 없는 세상이라는 목표는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경제와 사회 체제 속에서 여러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다. 페미니즘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이 향상된 여성의 노동과 소비, 취향과 가치관과 불가분의 관계다. 그래서 페미니즘은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상업화하기도 한다. 페미니즘을 사회적 가치와 더불어 경제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연재를 싣는다. 

오래 전 한국 여성들은 ‘달거리’가 찾아오면 ‘샅’에 ‘개짐’을 찼다. 한 번 쓰고 난 뒤에는 빨아서 보이지 않는 곳에 널어 말려 다시 썼다. 오늘날의 생리대는 100년 전쯤에 나왔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미국의 제지회사 킴벌리 클라크가 만든 일회용 붕대가 기원이다. 간호사들이 이걸 생리대로 이용하자 이에 착안해 ‘코텍스’라는 생리대를 대량생산했다. 국내에서는 1971년 유한킴벌리에서 나온 코텍스가 처음인데 끈이 달려서 묶는 방식이었다.

서울시가 공공장소에 배치한 비상용 생리대(사진=서울시)
서울시가 공공장소에 배치한 비상용 생리대(사진=서울시)

2016년 한국 사회 페미니즘의 전면에 갑자기 생리대가 등장했다. 이른바 가난한 여학생의  ‘깔창 생리대’ 사연이 큰 사회적 반향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생리대 값이 비싸서 신발 깔창이나 수건, 휴지를 사용하고 학교도 일주일간 가지 못했다는 사연들이 알려지면서 생리대는 ‘여성용품’ ‘위생용품’이 아닌 ‘공공재’로 봐야 한다는 인식이 비로소 퍼지기 시작했다. 생리대는 더 이상 거북하거나 금기의 단어로 검은 비닐 속에 꽁꽁 숨어있지 않았다. 거리에서, 국회에서, 정부 부처에서 ‘공공연한’ 단어가 됐다. 생리대 값을 낮춰라, 무상 지급하라,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포함됐는지 검사하라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월경권’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월경이 건강권, 모성권, 인권 문제와 맞닿으며 생리는 ‘정치적’ 문제가 됐다. 

“미친 사람이 아니면 도대체 누가 일부러 생리를 하겠어요?” 
미국의 유명한 SF작가 코니 윌리스의 단편소설 ‘여왕마저도’(Even the Queen, 2016년 국내 출간)의 한 대목이다. 약의 덕분으로 여성의 생리가 사라진 미래 사회, 유쾌한 여자들의 수다가 펼쳐진다. 맞다. 생리를 일부러 하거나 선택한 여성은 없다. 여성은 평생 약 500회, 일생의 8분의 1정도 기간인 3000일 동안 피를 흘리며 약 1만 2000개의 생리대를 쓴다. 생리전증후군(PMS)과 배란통을 경험한다. 적지 않은 돈과 힘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여성의 월례행사는 오랜 기간 침묵을 강요당했다. 생리대 광고는 1995년까지 ‘시청자에게 혐오감이나 악감정을 줄 우려가 있는 광고’여서 금지됐다. 밥맛 떨어진다고 했다. 그 후 우리가 본 생리대 광고는 파란색 물감이 생리대에 스며드는 장면이거나, “그날이 와도 걱정 없어요”라고 밝게 웃으며 자전거를 타는 흰 바지 차림의 예쁜 여성 연예인 모습이었다. 얼굴에 생리의 고통은 없었다. 생리혈이 파란색인 줄 안 소녀도 있었다.

2017년 영국의 여성용품 회사 바디폼(Bodyform)의 광고캠페인은 생리대 광고의 공식을 깼다.  광고는 생리대에 진짜 붉은 피를 뿌리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샤워하는 여성의 다리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속옷은 붉게 물든다. 광고에 나오는 여성들은 무용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복싱을 하고, 미식축구를 하면서 계속 생리혈을 흘린다. 그들은 예쁘거나 청순하지 않다. 행복한 미소를 짓지도 않는다. 광고는 “어떤 피도 우리를 멈춰 세울 수 없다(No blood should hold us back)”이란 말로 끝난다. 광고의 제목은 ‘Blood Normal’. 생리는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칸 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인류의 절반이 매월 겪는 생리는 왜 이토록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테마가 아니었을까. 여기, 도발적이며 탁월한 질문과 해답이 있다. 그리고 그 답은 지금 이 순간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질문은 이렇게 간단하다. 
“만약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그 답은 이렇다.

“월경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남자들은 자기가 얼마나 오래 월경을 하며, 생리양이 많은지 떠들어댈 것이다. 초경을 한 소년을 축하하기 위해 선물과 종교 의식, 가족의 파티가 마련될 것이다. 정부는 생리대를 무료로 배포한다. 의회는 국립 월경불순 연구소에 연구비를 지원한다. 의사들은 심장마비보다 생리통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한다. 월경 중인 남자들이 올림픽에서 더 많은 메달을 딴다는 사실이 통계로 증명된다. 우파 정치인이나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월경은 남자들만이 국가에 봉사하고 신을 섬길 수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신은 우리의 죄를 사하려고 피를 주셨다. 화성이 지배하는 주기에 따라 일어나는 신성한 월경을 하지 않는 여성이 고위직을 차지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매월 한 번씩 행해지는 정화의식이 없는 여성들은 깨끗할 수가 없다’라고 주장한다.”

미국 페미니즘의 선구자이자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사진=글로리아 스타이넘 공식 홈페이지)
미국 페미니즘의 선구자이자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사진=글로리아 스타이넘 공식 홈페이지)

미국 페미니즘의 대모이자 1972년 최초의 페미니스트 잡지 ‘미즈(Ms.)’를 창간한 글로리아 스타이넘(85). 그녀가 1984년에 쓴 페미니즘의 고전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남자가 생리를 한다면 생리는 긍정적으로 해석되고, 권위와 권리의 표상이 되고, 자랑스러운 일로 숭배되었을 거라는 이야기다. 

스타이넘은 10년 후 이 책의 개정판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여성운동가로서 나는 이 책이 아직도 읽히고 있다는 데 안타까움을 느낀다. 독자 대부분이 이 책의 내용이 아주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 느낀다면 더 큰 보람을 느낄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발칙한 행동과 일상의 반란(Outrageous acts and everyday rebellions)’이다. 국내에서는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과 ‘일상의 반란’으로 나뉘어 2002년 출간됐다. 책은  복잡한 이론을 내세우지 않아 쉽게 읽힌다. 곧장 남성 중심적 남성우월적 가치관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월경에 대한 이데올로기는 월경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누가 월경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하층민 노동계급의 암울한 삶을 그린 켄 로치 감독의 201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는 생리대를 훔치는 여성이 나온다. 가난한 싱글맘 케이티가 식료품 지원센터에 갔다가 생리대는 지원이 안 되자 마트에서 생리대를 훔치다 걸리고, 종국에는 성매매의 길에 들어선다. 영국의 복지제도는 음식은 지원해주지만 생리대는 지원해주지 않은 것이다.

월경은 굶을 수 없다. 남자든 여자든 월경 없이 태어난 사람도 없다. 하지만 월경은 이렇게 여성의 문제로만, 여성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국한돼 왔다. 귀찮고 아프고 돈이 들어도 말하기 어려운.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OECD 국가 중 한국의 생리대 가격이 가장 비싸다. 일본 181원, 미국 181원, 프랑스 218원, 한국 331원이다. 일본과 미국에 비해 거의 두 배다. 생리대 라돈 검출 논란 이후 수요가 많아진 유기농 프리미엄 생리대는 개당 500~800원 정도다. 보통 한 달 생리대 평균 구입비(7일, 매일 6개)는 약 1만 4000원이다. 35년간 생리한다고 치면 약 600만 원이다. 진통제, 병원비 같은 비용이 추가되면 한 달에 2만 원이 든다. 엄마와 딸 둘이 있는 집은 부담이 크다. 그런데도 그동안 국내 생리대 가격의 인상폭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두 배에 가까웠다.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집단행동 형태로 거리로 뛰쳐나오는 건 이제 흔하다. 그 유의미한 시작은 2016년 5월,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에 대한 여성의 집단 분노였다. 그해 터진 깔창 생리대와 이후의 생리대 안전성 논란은 한국 사회에 불붙기 시작한 페미니즘 운동과 자연스레 맥을 같이 했다.

2016년 7월 서울 인사동에서는 ‘#생리대를 붙이자’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한국의 비싼 생리대 가격을 따지고 생리를 부정적으로 보는 문화에 저항한다는 취지다. 여성들은 생리대를 빨갛게 칠해 전시했다. 이 정도는 사실 온건한 편이다. 영국 프랑스 등에서는 여성들이 실제 생리혈을 뿌리며 시위를 한다. 

여성단체 회원들이 2018년 ‘세계 월경의 날’에 광화문에서 안전한 생리대 등을 요구하는 회견을 하고 있다.(사진=)
여성단체 회원들이 2018년 ‘세계 월경의 날’에 광화문에서 안전한 생리대 등을 요구하는 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여성환경연대)

‘세계 월경의 날(Menstrual hygiene day)’을 아는 남자가 몇이나 있을까. 5월 28일이다. 세계적 NGO 워시 유나이티드(WASH United)의 제안으로 2014년부터 시작됐다. 월경에 대한 사회적 침묵과 터부를 깨뜨리고 월경을 건강하고 즐겁게 치르자는 것이다. 여성의 평균 월경 주기 28일, 생리 기간 5일에서 나온 날짜다. 

2018년 5월 28일 ‘세계 월경의 날’에 여성환경연대가 10년 만에 재개한 월경페스티벌.(사진=여성환경연대)
2018년 5월 28일 ‘세계 월경의 날’에 여성환경연대가 10년 만에 재개한 월경페스티벌.(사진=여성환경연대)

국내의 많은 여성단체들은 일제히 연대해 이날 월경 페스티벌 같은 다양한 행사를 가졌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월경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다. 정부는 여성 누구나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안전한 공공 생리대를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생리대 성분 표시, 제조 기준 마련, 유해 화학물질 검출 시험 결과 공개 등을 촉구했다. 이른바 ‘월경권’이다. 집회에서 여성들은 붉은 음료를 잔에 따른 뒤 “월경에 치얼스!(cheers)”라고 외치며 건배했다. 무상생리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다.

페미니즘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여성들이 떠들어야 사회는 움직였고, 단체로 행동해야 반응이 왔다. 지자체와 정부, 국회는 생리대 이슈를 외면할 수 없었다. 여성가족부는 저소득층 여성청소년들을 위해 ‘생리대 바우처(이용권)’제도를 만들어 매월 1만 500원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생리대 성분 표시제도 의무화됐다. 서울시는 일부 공공시설 화장실에 생리대 자판기를 비치했다. 기업이나 사회단체들이 생리대 기부 캠페인을 벌였다. 국회에는 여러 관련 입법이 상정됐다.

월경 이슈는 외국도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다. 뉴욕시는 2016년부터 공립학교와 노숙자 보호소 등에 무료로 생리대와 탐폰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뉴욕 시장은 생리대는 ‘필수품’이라고 말했다. 뉴욕시는 세계 최초로 여성들에게 무상생리대를 지급하는 도시가 되었다. 스코틀랜드도 2017년부터 모든 학생들에게 생리대를 공짜로 지급했다. 호주와 인도 케냐 캐나다 등 생리대에 부과했던 세금을 철폐하는 나라들이 늘어났다. 스타이넘이 대놓고 생리를 언급한 지 35년이 지나서야 생리대를 ‘공공재’로 여기는 인식이 세계적으로 확산된 것이다. 언젠가 국가가 모든 여성들에게 생리대를 무상 지급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여성은 월경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일상과 학업, 노동, 성과 평가에서 부적절하게 차별받고 배제돼왔다. 생리는 여성혐오 기류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월경을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지 않고 쉬쉬한다. 하지만 월경은 이 순간 바로 옆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것도 당신의 엄마와 누이와 아내와 딸에게서, 국민의 절반에게서. 그건 그들의 잘못도, 선택사항도 아니었다. 그들은 건강하고 안전하고 편안하고 눈치 안 보며 생리를 치러야 한다. 그래서 월경은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중요한 이슈여야 한다.

전라도 한 지자체 의원은 얼마 전 ‘저소득층 생리대 지원 건의안’이 상정되자 “의회 본회의장에서 생리대라고 말하는 건 적절치 못한 발언”이라고 말했다. 이게 아직도 대한민국 남성의 보통 인식이라면 스타이넘의 책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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