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금융 졸업했지만 국민은 고통 속
-경제위기 기간 동안 약물복용량 급격히 증가
-향정신성 약물, 항우울제 복용 두드러져
-현대 사회는 화학의 적용 범위內 있어

알렉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 (사진=연합뉴스)
알렉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서은진 기자]  교통, 항공, 학교, 병원의 파업으로 그리스 전체가 마비됐던 작년 초, 그리스 의회는 새로운 긴축안을 채택했다.

그리고 그리스 의회와 채권단이 제시한 긴축안에 유로존 재무부 장관들이 동의하면서, 작년 그리스는 67억 유로의 추가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이 그리스 국민들에게 미치게 될 영향은 자명하다.

물론, 지난 1월에는 구제금융 졸업 이후 처음으로 국고채 5년분을 발행해 25억 유로를 조달하면서 국채시장에 화려하게 복귀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가 그리스 경제의 무사복귀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연합은 지금까지도 “채권단에 약속한 모든 개혁안을 완수하라”고 그리스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들은 그리스가 막대한 공공부채와 부실 채권, 높은 실업률 등 여전히 취약한 요소를 안고 있다고 간주한다.

사실이 그렇다. 2010년부터 그리스에서 실행되고 있는 극단적인 긴축정책은 경제상황을 악화시키고 부채 증가, 생산 감소, 그리고 실업률 증가를 가져왔다.

◆ 그리스 국민 약물소비 크게 늘어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니콜라스 토마이디스 등이 2016년 미국화학회 등에 낸 논문에 따르면 아테네 시민들의 향정신성의약품 사용량은 2010년과 2014년 사이에만 약 35배가 증가했다.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진정제는 19배, 항우울제의 소비는 11배가 늘었다. 여러모로 이례적인 상승폭이다. 이는 아테네에서 배출되는 오폐수에 대한 연구에서 도출된 결과다.

아테네 대학교의 연구원들은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언급했던 “일상적인 불안”이 어떻게 표출되는지를 주목해 연구의 방법론으로 택했다. 2011년부터 2016년 간 매주, 니콜라오스 토마이디스와 그의 동료들은 아테네의 하수처리장들에서 불법 약물성분의 샘플을 채취했다.

해당 하수처리장은 그리스 인구의 1/3 이상인 약 370만 명의 오폐수를 처리하는, 공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148개의 의약품, 마약, 기타 불법 물질을 검출해내는 데 성공했다. 약 5년간 검출해 낸 샘플의 양은 성분 간의 차이는 있어도, 대체로 해마다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리스인들이 이것들을 섭취해 배설한 대사물질임을 검증해 내는 일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았다. 르몽드의 2017년 6월 기사에 따르면 이와 같은 물질들이 오폐수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은 예전에도 종종 확인됐다. 그러나 발견된 물질과 사회 현상간의 관계를 규명하는 연구는 여태껏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테네 시내에서 약물에 취해 쓰러져 있는 시민들. (사진=greece.com)

이번 작업은 ‘트로이카’ 채권단(EU집행위, 유럽중앙은행, IMF)이 강제한 긴축안으로 발생한 스트레스에 그리스 시민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다양한 종류의 물질의 소비가 2010년 이후 급격히 증가했다. 그 중에서도 향정신성의약품과 항우울제의 증가폭이 두드러졌다.

유로스타트(Eurostat)에 의하면, 2017년 9월 그리스의 실업률은 경제활동인구의 20.5%에 달했다. 이 수치는 과거 2013년 8월에 27.8%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공공지출은 대폭 줄어들고, 세금은 늘어났다. 퇴직연금은 2019년을 기점으로 또다시 18% 줄어들 전망이다.

퇴직연금의 경우 그리스 위기가 시작된 이래 12번째 감소한 수치다. 이에 워싱턴의 한 화학전문지 역시 2016년 9월 비슷한 기사를 통해 그리스의 경제침체와 약물소비에 대한 상관관계를 보도하기도 했다.

물론 그들의 경우, 계량분석을 통해 양 변수 간 인과관계를 밝히려는 시도가 부족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다만 치밀한 취재를 통해 그리스 국민들이 경제 위기 이후로 고혈압, 궤양, 간질 치료에 사용되는 의약품들의 소비를 늘려나갔다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이 점은 언론계와 학계를 막론하고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워싱턴의 연구진에 따르면 “반대로 (그리스 국민의) 항생제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IDs)의 소비는 감소했는데, 이는 정부의 보건 지출 삭감과 시민들의 구매력 하락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페나믹산 계열의 소염제의 소비는 무려 1/28로 줄어들었다. 

그리스의 보건 예산은 GDP 대비 6% 이하로 내려갔고, 공공병원의 예산은 2009년과 2011년 사이 26% 감소했다. 의약품구매는 2010년에는 43억7000만 유로(약 5조4600억 원)였던데 반해 2014년에는 20억 유로(약 2조5000억 원)에 그쳤다.

◆ 경제상황 악화되며 국민건강 침해돼

이에 토마이디스 팀은 다시 불법 메스암페타민(정신자극제로, 중독성이 강하고 신경독성물질이며 Speed, Meth, Crystal Meth 등으로 불림)의 소비도 2배 가까이 증가했음을 밝혀냈다.

이와 함께 ‘시사(Sisa)’라고 불리는 약물의 소비증가도 주목할 여지가 있다. 이는 흔히 그리스에서 유래한 불법 마약으로 알려져 있다. 메스암페타민에 일상적으로 구할 수 있는 배터리 액, 엔진 오일, 혹은 샴푸나 소금 등을 조합해 만드는 이른바 ‘1급 약물’로 분류된다.

시사의 소비 역시 2배 가까이 뛰었다. 이는 빈곤층이 주 소비자인 값싼 물질(Street drug의 일종인 환각제, 흥분제)의 소비도 증가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기타 환각제, 흥분제, 그리고 수면제의 사용량은 종류와 무관하게 최소 5배 이상 증가했다. 수면제의 경우 7배 늘었다.

시사는 가난한 이들의 코카인이라고도 불린다. 사진은 시사를 흡입하는 한 유튜버. (사진=유튜브)

신경안정제, 코카인, 대마초의 소비 패턴은 불규칙했지만, 주말만 되면 소비량이 치솟았다. 엑스터시(MDMA)의 소비도 급증했다. 연구진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치를 고려하자면, 실제 사용량은 이 이상일 것이다”고 내다봤다.

토마이디스에 의하면, 이런 결과는 그리스 국민들의 건강, 특히 정신건강이 최근 들어 급격하게 악화했음을 보여준다. 그의 팀이 이런 유형의 연구를 최초로 시행한 것은 아니지만, 최장 기간 최대 인구를 대상으로, 최다 샘플들을 채취해 분석했다는 평가다. 

토마이디스가 내린 결론은 명백하다. “모든 사회경제학적 지표들은 항우울제와 벤조디아제핀의 소비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실업, 경제상황 악화, 부채 증가는 국민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발생시키고 또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프랑스국립과학연구원(CNRS) 부원장을 지낸 모하메드 라비 부게라 연구원 역시 작년 6월 르 피가로 등에 기고한 글에서 “약물에 점차 의존하는 그리스인의 증상은 유럽연합(EU)과 국제자금제공자들이 ‘처방’한 ‘금융 치료’의 결과다”라며, “해당 연구는 그리스 국민들이 어떤 스트레스와 고통을 받고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준 첫 번째 작업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토마이디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같은 시기에 진행한 인터뷰에서 1954년 노벨화학상을, 1962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미국의 화학자 라이너스 폴링의 말을 인용했다. 
 
“정치와 국제 관계를 포함해 현대 사회의 모든 면은 화학의 영향 범위 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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