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학술지 홀대. 이제는 바뀌어야
연구업적 평가에 ‘국내 학회 기여도’도 넣어야

대학로 혜화역 3번 출구에서 나와 오른쪽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들어서 있다. 가장 앞쪽의 고색창연한 행정동 뒤쪽에 숨어있는 연구동 3층에 홍성태 교수 연구실이 자리잡았다. 책과 자료들이 빽빽한 홍 교수 연구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책은 의학학술지인 JKMS이다. Journal of Korea medical Science 바로 대한의학회지이다. 의학 관련 과학자들은 이 학술지에 영어로 자신들이 연구한 내용을 싣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몇 안 되는 세계적인 학술지로 꼽힌다.

홍 교수는 이 학술지의 편집장을 올해로 11년째 하고 있다. 판형도 크고 두께도 두꺼운 학술지는 하드 커버로 정성스럽게 제작됐다. 저렇게 두꺼운 전문 저널을 11년째 편집장을 맡고 있다니, 전쟁으로 치면 11년째 최전방 GOP에 틀어박혀 하루도 쉬지 않고 보초를 선 것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홍 교수가 편집장을 맡고 나서 대한의학회지는 나날이 발전했다. 처음 그가 맡았을 때는 격월간으로 나왔다가 점차 확대해서 월간으로 전환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작년부터는 주간지로 훨씬 빨라졌다.

연구실의 홍성태 교수
연구실의 홍성태 교수

이렇게 주간지로 전환한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지난해 정신과 의사 임세원 교수가 환자에 의해 피살된 사건이 벌어지자 그 다음 주 월요일에 의료인에 대한 폭력을 예방하려면 시스템으로 접근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설을 실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홍 교수는 월급은 대학교에서 받고 우리나라 의학계에 봉사한다고 말했다.

학술지에 대한 오랜 수고와 기여는 그로 하여금 학술지 발전방안에 관한 전문적인 식견을 갖게 했을 것이다. 홍 교수는 1년에 4번 학술지 진흥방안에 관한 과총 토론회를 주최한다. 우리나라의 과학이 학문으로서 발전하려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학술지의 역할이다. 학술지가 일정한 권위를 가지고 후배 과학자들이 쓴 논문을 정확히 심사해서 실어줘야 과학은 체계적으로 계속 발전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학술지는 허술한 부분이 너무 많다. 가장 심각하고 고질적인 적폐는 우리나라 학술지에 실린 것은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점이다. 사람들은 세계적인 학술지인 사이언스(Science)와 네이처(Nature)에 실린 것은 높게 평가하지만, 국내 학술지에 실린 것은 별로 거들떠 보려고 하지 않는다.

11년째 편집장을 맡고 있는 대한의학회지와 함께.
11년째 편집장을 맡고 있는 대한의학회지와 함께.

이 뿌리깊은 지식의 높은 해외의존도는 우리나라 과학발전을 가로막을 뿐 더러 노벨상 수상자 배출도 어렵게 만드는 병목이 된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홍 교수의 진단은 이런 추측을 뒷받침한다우리나라 학술지에 같은 내용이 실렸어도 사람들은 네이처, 사이언스만 인용한다. 

물론 이유는 있다. 국내 문헌을 잘 인용 안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국내저널이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다 보니 데이터베이스가 취약하고 그래서 찾아서 인용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비교적 의학분야는 잘 된 편이지만, 다른 분야는 더욱 들쑥날쑥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부에서 국내 학술지를 홀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연구비를 지원하는 BK사업 과제도 연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보는 평가 지표에서 조차 세계적인 논문인용지수인 SCI지수만 인정한다.

홍 교수는 논문이 아주 우수해서 JAMALancet 같은 해외 저널에 게재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정부가 주는 연구비로 한 연구성과를 국내저널에도 게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가 준,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낸 세금을 가지고 한 연구결과이니, “일정부분은 우리나라의 학문발전에도 기여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현실적인 방안으로 홍 교수는 국내학술지에도 일정 부분은 게재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제안하는 것이다.

서울대 의대에서 신임 교수를 선발할때도 네이처,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을 가지고 업적을 평가한다. 그것도 물론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국제적인 기여에 비례해서 국내 학회에 기여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 그런 것도 교수 임용기준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홍 교수의 주장은 매우 합리적인 의견으로 들렸다.

국내 학회에 대한 기여는 국내 학술지에 논문을 내는 것은 물론이고, 국내 학술지 제작에 참여하는 것을 포함한다.

우리나라 정부는 학술지의 진흥을 위해 예산을 편성했지만, 연구 규모를 볼 때 쥐꼬리만하다, 인색하다는 인상을 준다. 과기부가 26.1억원, 교육부 25.5억원, 국제화에 1.8억원 등을 책정했다. 과총은 이 돈을 학술지 제작에 사용하라고 학회에 나눠준다.

책 내는데 무슨 돈을 쓰느냐는 비판도 나올 것 같다. 그렇지만 연구성과나 과학적 발견이 갖는 무형의 가치를 고려한다면, 얼마를 지출하느냐는 기준은 매우 달라질 것 같다.

홍성태 교수
홍성태 교수


세계적으로 학술지는 시장의 논리에 의해서 큰 영향을 받는다. 사이언스와 네이처는 자체적으로 출판사를 가지고 운영하지만 약 절반의 학술지들은 엘스비어, 스프링거, 와일리 등 국제적인 대형 출판사들이 찍어서 배포한다. 나머지 절반의 학술지는 각 학회에서 자체적으로 발행한다.

우리나라에서 상업적으로 발행하는 학술지는 한 곳도 없다. 사업적으로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 학술지 중에도 국제기준에 맞는 국제적인 학술지가 제법 있다. SCI 등재 학술지가 2017년 기준 126종이고, 스코푸스(Scopus) 학술지는 189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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