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더십 탐구] ③-3 조코위의 5년, 어떻게 평가할까?
[글로벌 리더십 탐구] ③-3 조코위의 5년, 어떻게 평가할까?
  • 하영지(인도네시아전문가)
  • 승인 2019.04.0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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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초기, 우호적이지 않은 정치 환경
-중기들어 이미지 쇄신에 성공
-5년간의 5%대의 경제 성장률 두고 논란 지속
-2019년 구 카리스마와 신 카리스마의 재대결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인도네시아의 2014년 대선은 정치사의 전환점이라 말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경험하였으며, 독립 역시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했다. 국가건설 과정에서 군배의 지배가 오래 지속되었으며, 민주주의를 위해 뼈아픈 진통을 겪었다는 점에서 한국과 유사점이 많았다. 

독립이후 독립문 선언과 함께 대통령에 오른 민족 영웅이자 군인이었던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는 22년간 정권을 유지했다. 그의 독재를 몰아내고 들어선 군부정권 2대 대통령 수하르토 역시 32년간의 독재정권을 유지했다. 이들이 재임했던 시기만 따져도 약 55년에 달한다.

반세기를 독재 정권 아래에 보내고도 직선제까지의 길은 쉽지 않았다. 3명의 간선제 대통령을 더 거치고 나서야 마침내 직선제를 이룰 수 있었던 것. 2004년 첫 직선제로 선출된 대통령이 바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이하 SBY) 대통령이다. 

그는 연임에 성공하여 10년간 대통령으로 재임하였다. SBY는 최초의 국민 투표로 당선된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그 역시 아버지의 대를 이은 육군 장성출신으로 군인 혈통에 속했다. 아내 역시 과거 주한인도네시아 대사를 지냈던 외교관의 딸로, 엘리트 가문에 속한다.

반면 조코위는 수라카르타의 강가에 즐비한 빈민촌에서 자라 자수성가한 가구사업자였다. 고향에서 자라고 만난 그의 아내 역시 평범한 가정에 속했다. 그렇기에 2014년의 조코위의 당선은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던. 구태 정치를 탈피하고 싶었던 시민들의 염원이 만들어낸 결과였던 것이다.

◆ 신입생에게는 어려운 정권초기

그는 신정치의 기로에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무언가 새로운, 과거와는 다른 정치 행보를 보일 거라는 국민들의 기대감은 컸다. 이러한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그는 선거 공략이었던 정부 개혁을 시행하기위해 의욕적으로 나섰다. 

외유성 출장 예산의 절감을 주문하고, 스스로도 공적 용무와 사적 용무의 선을 그었다. 막내 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싱가포르에 가면서도 소요 비용을 개인비용으로 처리했다. 대통령이 이코노미석을 이용했다는 소식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파격행보가 국민들의 실질적인 삶의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가 정책을 기획하여 시행하는 데에 있어서는 물론 크고 작은 난관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조코위도 취임 후 한 인터뷰에서 “국민은 곧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는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조코위 정부의 초기 국정 운영은 실제로도 쉽지 않았다. 취임 당시 인도네시아 의회는 프라보워 후보를 지지한 정당이 전체 의석의 60%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소야대의 양상에서 새로운 정책 시행이 쉽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심지어는 여당 세력조차도 그에게 소극적으로, 더러는 적대적으로 대응하였다. 당에서 원래의 대선 유력 후보였던 메가와티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은 여전히 굳건했던 탓이다. 이 가운데서 조코위가 제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 가운데서 그는 정책 추진과 개혁을 위해 역량을 집중했다. 그의 대선 공략 중 대표적인 다섯 가지는 정부개혁, 지역 균형 발전 국민 생활의 질 향상, 국가 생산성 및 경쟁력 강화 그리고 국가 경제주권 확보였다. 이와 함께 인도네시아의 의식개혁이라는 슬로건을 발표하고 3대 핵심정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의 마케팅과, 가치 중심의 교육 시스템 구축, 그리고 미래 지도자의 양성이라는 모토가 그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를 둘러싼 정치적 환경은 우호적이지 않았고, 따라서 정계의 낙관적인 시선이나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또한 외교와 국방 분야의 경험 부족으로 인한 우려도 제기되었다. 

그는 의식개혁 슬로건 아래 단호하게 정책을 추진하였고 또 일부 분야에서는 조기에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유약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기 위해 강력한 리더십 드라이브를 걸었다”고 평하기도 한다. 그 중 하나가 마약문제였다. 자국민 마약사범 뿐 아니라 외국인에 대해서도 총살형을 단행했던 것이다. 그는 곧 세계적으로도 유명인사가 되었다.

물론, 호주를 비롯해 몇몇 국가와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꾸준히 사형집행 중지 요구가 있긴 했다. 그러나 조코위는 호주와 인도네시아 간 자유무역협정 서명을 연기시키면서까지 마약금지를 위해 단호하게 대응했다. 이는 인도네시아 내에서 조코위의 결단력과 리더십을 확인할 수 있는 긍정적인 사례로 종종 언급된다.

2017년 호주를 방문해 말콤 턴불 연방총리를 만나는 조코위. (사진=SBS뉴스) 

인도네시아 해역에서 불법으로 조업하던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의 외국 국적 어선들에 대해 직접 폭격을 지시한 점도 언급할 수 있다. 이는 국제문제로 비화될 조짐을 보였으나, 그는 단호했다. 뿐만 아니라 해외 근로자들의 취업비자 발급 규정 강화 등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무분별한 유입을 막아 자국민의 취업 경쟁력을 강화시키고자 하였다.

◆ 메가와티의 그림자를 벗어던지다.

임기 초기 그는 단호한 정책시행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개혁들이 시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야만 했다. 임기 내 7%의 경제 성장을 공약했지만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경제성장률은 불과 5%대에 불과했다. 경제성장률로만 따지자면 이전 정부보다도 떨어지는 성적표였다.

이에 조코위는 임기 중반을 맞이하여 개각을 카드를 꺼내들었다. 메가와티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가득했던 첫 번째 내각에서 13명의 장관을 교체했다. ‘조코위의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하마평에 오르내렸다. 그 와중에 메가와티의 심복으로 꼽혔던 리니 수마르노 국영기업장관은 개각의 바람을 피했다. 

리니 장관은 메가와티 정부 시절 통상산업부 장관으로 흔히 親메가와티계 인사로 분류된다. 그랬던 그가 조코위 정권에서까지 활약하자 메가와티는 돌연 그를 두고 ‘배신자’라고까지 비난한 바 있다. 이러한 리니 장관을 개각에서 제외한 것은, 리니 껴안기와 더불어 조코위가 더 이상 전 대통령의 그림자에 머물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할 수 있다.

시민들의 지지율이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한때 50%대까지 떨어졌던 지지율은 다시 70%대에 근접했다. 이와 함께 그는 경제 성장에 박차를 가했다. 인프라 구축이 대표적이었다. 수마트라섬을 남북으로 잇는 2300km 고속도로 사업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2000km 의 도로건설과 10개 공항, 10개 항구, 10개 산업 단지를 건설하여 자바섬에 집중된 인프라를 전국으로 확산시키고자 했다.

워낙 인프라 확충을 통한 도시 간의 격차를 줄이고자 하는 것이 그의 정책의 첫 번째 목표였다. 관광 개발과 물류사업의 원활함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 성장률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미칠 것으로 보였다.

◆ 임기 후반기, 그의 힘으로 이룬 성과들

정권 5년 동안 그는 늘 노동력과 생산성 향상을 강조하였다. 특히 임기 내내 전 분야에 걸친 인프라 확충 사업을 제안했다. 인도네시아가 끊임없이 일할 수 있는 성장의 동력을 제공한다는 목표였다.

이러한 그의 노력의 결실은 인프라 전 분야에서 성과를 보였다. 55개의 댐 건설 사업 중 14개의 댐이 건설을 완료하였고, 41개의 댐은 건설 중이거나 예비사업 단계에 머물고 있다. 도로건설 분야에서는 2000km에 달하는 고속도로가 임기 내 완공되었다. 

인도네시아의 고질적인 인프라 문제는 경제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사진=Notenough.com)

그럼에도 부정적인 견해는 존재한다. 기존의 계획과는 달리 제안 단계에 머물고 있는 사업이 여전히 다수라는 것이다. 거기에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근본적인 재원 부족으로 착수가 애초에 어려운 사업도 많았다. 민관협력 형태 사업의 경우 현지 기업들이 애초에 참여를 꺼리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7%의 경제 성장률을 약속했던 것과 달리 지난 5년간 인도네시아는 5%대의 성장률에 머물러야 했다. 이번 대선에서 상대 진영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기 5년 동안 그가 ‘일하는 정부’와 ‘일하는 인도네시아’를 만든 점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그가 인프라 사업을 이토록 강조하는 이유는 그의 주된 대선공략이 인프라 확충으로 인해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도로 확충을 통한 물류 사업이 활성화된다면 이를 통해 국가 생산성 및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다. 그리고 국가의 생산성과 경쟁력이 강화되면 국가의 주권 강화는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다. 

그의 5년을 어떻게 평가할 지는 국민의 손에 달려있다. 따라서 이번 대선은 조코위의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이기도 하다. 프라보워가 상대후보로 출마하면서 지난 2014년과 동일한 양상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물론 그 때와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조코위의 경우 5년 전 ‘정치적 신인’일 때와 비교해 지난 5년간 갈고닦은 정치적 내공이 상당하다는 평이다. 물론, 엘리트 출신에 군부 출신인 프라보워의 카리스마 역시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5년간 보여준 조코위의 단호하고 뚝심 있는 행보는 그만의 카리스마를 굳건히 구축하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구시대의 카리스마와 신시대의 카리스마가 또 한 번 맞붙는 이번 대선의 캠페인에서 양 후보가 들고 나올 히든카드가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 하영지, 인도네시아전문가

지역전문가이자 인도네시아 전문 통·번역사이다.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에서 인도네시아 문민정부의 출범과 그 이후에 대해 연구 중에 있다. 주한인도네시아대사관에서 근무했으며, 인도네시아 진출에 요구되는 이문화와 어학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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