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의 신흥아이콘으로 부각
-수라카르타 시장부터 자카르타 도지사까지
-종교선택은 자유지만 종교는 반드시 있어야 해
-종교와 인종이 2014년 대선을 흔들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사진=KBS뉴스)

2019년 인도네시아의 대선이 어느덧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현직 인도네시아의 대통령으로 연임에 도전하는 조코 위도도(조코위)와 야당인 인도네시아 운동당의 프라보워 수비안토 총재 후보가 양자 대결로 맞붙는 양상이다.

조코위가 처음 집권했던 2014년 대선에서는 어떠했는가? 데쟈뷰처럼 동일한 후보가 접전을 별친 바 있다. 선거 캠페인은 막바지까지 치열했으며, 예상 득표율은 늘 오차 범위 안을 맴돌았다. 선관위의 최종 발표 전 까지 결과를 단정 지을 수 없었던 ‘명승부’였다. 이번 선거는 어떨까? 2014년과는 사뭇 다르다. 오차 범위를 훌쩍 넘어서는 조코위 후보의 우위가 6개월 넘게 꾸준히 이어지면서, 조코위가 비교적 쉬운 대선을 치를 것이라는 분석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대결 구도의 구심점이 되는 주제 또한 사뭇 다르다. 2014년에는 한인도네시아의 종교와 종족 문제가 지지율을 흔드는 변수로 작용한 바 있다. 말하자면 한국의 학연, 지연을 둘러싼 이슈와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다. 당시에도 조코위는 독보적인 지지율을 바탕으로 편하게 대선을 치를 것이라던 분석이 다수였으나, 해당 문제로 인해 지지율 격차가 바짝 쫓기는 추격전을 겪어야만 했다.

반면, 올해 대선에서는 해당 이슈가 지지율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어떻게 민생을 살릴 것인가, 어떻게 하면 경제 성장을 이룰 것인가와 같이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 조코위, ‘화려한 시작’은 수라카르타서

인도네시아 최초의 문민정부를 수립한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수라카르타 지역의 가구 사업가 출신이다. 2005년 수라카르타 시장선거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처음으로 발을 들였다. 시장 부임 당시 가장 큰 문제는 ‘도시의 분위기’였다. 열악한 행정 서비스 구조와 높은 실업률, 낮은 생활수준, 엉망으로 즐비한 수천의 노점상 문제와 빈민 현상은 도시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침체시키고 있었다.

조코위의 시장부임 시절 가장 큰 업적으로는 대개 수천에 달하는 거리 노점상들을 구획화되어 정리한 점으로 꼽힌다. 동시에 행정 서비스와 사업 허가를 위한 원-스텝 행정 서비스를 구축하여 열악한 서비스 구조를 개선했다.

빈민가 정비를 시행하여 건강 증진 서비스를 도입하였고 총체적으로 침체 해있는 수라카르타의 행정 시스템과 도시 이미지를 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속되는 실업률과 낮은 경제 성장률을 극복하기 위해 도시의 이미지를 관광지화해 전격 재개발하였다.

이러한 조코위의 추진력은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강력한 리더십 드라이브를 인정받아 2010년 수라카르타 시장 연임에서는 득표율 90.9% 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그의 파격적인 행보와 높은 지지율은 2012년 자카르타 도지사 선거 당시 ‘새 인물’을 찾던 투쟁민주당의 러브콜 대상이 되었다.

◆ SARA를 극복한 조코위

한국에서 학연, 지연, 혈연이 집단의 의사결정과정에 개입하는 문화는 반드시 근절해야 할 요소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대선이나 총선에서 위와 같은 요소는 표를 획득하기 위한 필수적인 ‘선거 전략’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사실 어느 나라나 이러한 요소는 존재한다.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지역주의의 한 갈래라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인도네시아에도 SARA 라고 일컫는 개념이 있다.

SARA의 단편적 의미는 인도네시아의 인종, 종교, 종족 사회 계층 간을 포함한다. 쉬운 말로 출마 후보와 같은 인종이거나 종교, 같은 종족사회의 사람에게 표를 몰아주는 경향성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선거 지형도를 규정하는 지역주의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

2012년 자카르타 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조코위 후보의 상대 진영은 당시 현직 도지사였던 파우지 보워였다. 자카르타 지역에 토착 원주민은 브따위 족이다. 그렇다면 조코위는 브따위 족 출신이었는가? 정답은 ‘아니다’에 가깝다.

조코 위도도는 중부 자와의 수라카르타 출신으로 자와 인종이었다. 자카르타에 사회 기반을 둔 인물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약점이 명확했다. 반면 재선에 도전했던 파우지 보워 후보는 원주민인 브따위 족에 속했다.

2002년 자카르타 부주지사를 거쳐, 2007년에는 자카르타 주지사로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2012년 연임에 도전하는 인물로, 자카르타 사회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린 인물이었다. SARA의 관점에서 지역 토착인이자 안정적으로 사회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파우지 보워 후보의 당선이 유력해 보였다.

자카르타 시내 전경. (사진=Indonesia Expat)

조코 위도도 후보의 경우 SARA의 관점에서는 자카르타의 미약한 지지기반과 토착민이 아니라는 점에서 득표율 획득이 어려워 보였다. 선거는 구정치와 신정치의 구도로 흘러갔다. SARA와 비SARA의 구도를 이루어 접전을 이루었다. 당초 세 후보가 출마했으나 결국 조코위와 파우지 보워의 양자 대결로 흘러갔다.

결과는 놀랍게도 조코위의 승리였다. 득표차는 6퍼센트 포인트 남짓이었다, 이와 같은 결과를 예상한 이는 무척 적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했다. 인도네시아 상공부 관리는 당시 국영통신사와의 인터뷰에서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SARA의 후광을 입은 구태 정치인보다는 비전을 갖고 발로 뛰는 젊은 정치인을 원한다”며, “조코위의 자카르타 시장 당선은 이를 방증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당선 당시 자카르타는 수라카르타와 다른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총체적으로 낙후되고 슬럼화된 도시를 활성화 시키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던 수라카르타와는 달리 인도네시아의 수도로서 자카르타는 안정적인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자카르타의 경우 행정체제의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었다. 부정부패로 인한 행정 서비스의 딜레이가 심각한 문제로 떠올라 있었다. 교통체증, 홍수, 빈부격차 등 인구 과밀화로 인한 인프라 미 확충 문제도 주요한 과제였다.

조코위는 우선적으로 행정체제 딜레이를 막기 위해 행정 서비스의 시스템화를 도입했다. 온라인 소통창구를 만들어 민원 접수에 즉각적으로 대응 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홍수와 빈번하게 발생하는 교통체증 문제를 포함한 인프라 시설 확충을 목표로 자본 유입을 활성화했다.

17년 11월 당시 인도네시아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과 거리에 나선 조코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2014년, 마침내 대선에 나서다.

수라카르타 시장과, 자카르타 도지사를 커지며 조코위는 어느덧 10년차 중견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동시에 끊임없는 파격 행보로 새로운 대선후보로 떠오르고 있었다. 외신을 중심으로는 ‘인도네시아의 오바마’라는 별명도 붙었다. 긍정적인 의미였다.

그가 몸담고 있던 투쟁민주당의 강력한 대선 주자는 초대 대통령의 딸이자 제5대 대통령이었던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였다. 그녀는 중임제인 인도네시아 대통령제에서 연임을 노리고 야심차게 출마했으나, 상대 진영의 유력 후보였던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의 벽에 막히고 말았다. 이후 유도요노 연임을 막기 위해 출마한 2009년 대선에서마저 낙마의 고배를 마셨다.

초대 대통령의 카리스마의 유산으로 메가와티에 대한 지지층은 굳건한 편이었으나, 세 번째의 출마는 아무래도 부담이 되었다. 더욱이 상대 진영 후보로 떠오르고 있던 프라보워 후보 역시 구 정치의 유산이자 군부 출신으로 그녀와 유사한 이미지를 가진 인물이었다.

결국 투쟁민주당에서는 떠오르는 아이콘이었던 조코위를 대선 후보로 세움으로써 낡은 정치를 타파하겠다는 새로운 정치 이미지를 부각했다. 예비역 육군중장으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부각시킨 프라보워 후보는 러닝메이트로 당시 대통령과 사돈 관계였던 하타 라자사를 러닝메이트로 지목하며 지역주의의 색채를 한층 더 강하게 드러냈다. 이로써 2014년 대선 양상은 2012년 자카르타 도지사 선거와 마찬가지로 신정치 VS 구정치의 대결이 재현되었다.

막강한 정치적 기반과 자본을 바탕으로 캠페인에 돌입한 프라보워 후보팀은 미약한 정치 신입생이자 미약한 자본으로 활동하는 조코 위도도 후보의 캠페인과 달리 규모면에서 크고 화려했다. 그럼에도 조코 위도도 후보의 폭발적인 지지율을 꾸준히 유지되었다.

결국 프라보워 진영은 SARA 문제를 자극하기에 이르렀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후보. (사진=연합뉴스)

조코위 부부의 종교와 인종에 대한 루머가 퍼지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국민은 국가가 지정하는 6가지의 종교, 이슬람교, 기독교, 천주교, 힌두교, 불교, 유교 중 반드시 한가지의 종교를 믿어야 한다. 따라서 개개인에게 종교 선택의 자유는 있으나 종교를 믿을 의무가 부여된다.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아직까지도 인도네시아 주민등록증에는 개인의 종교를 표시하고 있다.

신앙심은 일상에서 중요한 요소이자 이들만의 하나의 문화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는 이 중 이슬람교 신자가 가장 많으며 90%에 가까운 인구가 이슬람교를 믿어 세계 최대의 무슬림 인구를 보유한 국가로 불린다.

또한 인도네시아는 300여개가 넘는 인종이 혼재해 있는 다 인종 국가다. 수백의 종족이 분포해 있으나 이 중 절반이 ‘자’와 ‘족’에 속한다.

따라서 인도네시아에서 중앙 정계 진출에 용이하기 위해서는 이슬람교 신자이면서 자와 족이어야 한다는 정설이 있다. 이러한 종족에 대한 구분은 또다시 인도네시아 땅에서 나고 자란 토착민과 이민족으로 나눌 수 있다. 화인, 인도계, 아랍계 등 12세기부터 유입된 외부 인종을 이민족이라 부른다. 인도네시아의 토착민과 이민족에 대한 갈등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특히 인구의 2%에 미치지 못하는 화인은 인도네시아 재계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토착민들의 화인에 대한 반감은 타 이민족에 대한 그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1998년 있었던 인종 폭동 사건의 경우, 토착민의 화교에 대한 반감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났던 사건으로 보아도 좋다.

프라보워 진영에서는 조코위 부부가 자와 족이 아닌 이민족, 화인의 혈통을 따르고 있으며, 기독교 신자라는 유언비어를 퍼트렸다. 이에 확고했던 지지 기반의 대규모 이동이 일어났다. 당초 지지율 면에서 20% 가까이 앞서고 있었으나, 혈통과 종교에 대한 의구심이 일자 조코위의 굳건한 지지자들이 대규모로 이탈해버리고 만 것이다. 이제 지지율은 4%안팎으로 줄어들었다. (계속)

글: 하영지, 인도네시아전문가

지역전문가이자 인도네시아 전문 통/번역사이다.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에서 인도네시아 문민정부의 출범과 그 이후에 대해 연구 중에 있다. 주한인도네시아대사관에서 근무했으며, 인도네시아 진출에 요구되는 이문화와 어학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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