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란 칸, ‘부패척결은 시대정신과 부합해’
-임란 칸, 군부와 이해관계 일치…군부 선거 개입 의혹
-군부와 반하는 정책을 펼 수 있을까
-전 총리 나와즈 샤리프의 거취도 주목돼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현직 파키스탄 총리 임란 칸의 인기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칸은 과거에도 스포츠 영웅이었다. 칸은 1992년에 파키스탄 크리켓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크리켓 월드컵의 우승을 이끌었다.

은퇴 이후에는 암 환자를 위한 병원을 설립하는 등 자선활동을 편 것으로도 유명세를 유지했다. 그는 크리켓 월드컵 우승 직후 현역 생활을 은퇴했으며, 2년 후 1994년에는 파키스탄 최초의 암 병원을 라호르에 짓는 등 사회활동에 전념했다. 당시만 해도 유명인사의 사회공헌활동은 굉장한 화제였다.

그러나 그가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부패척결을 내세운 투쟁 때문이기도 했다. 부패척결은 그가 1996년 파키스탄정의운동(PTI)을 창설한 이래 당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수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가 주장하는 부패척결은 국민적 영웅와도 같았던 베나지르 부토 같은 유명인사를 타깃으로 삼는 것이었다.

부패와의 전쟁은 특히 거대 권력가 집안(부토, 샤리프 등)이 사적으로 누리는 풍요로움에 분개하는 중산층에서 인기를 얻었다.

부토와 샤리프 등이 자랑하는 팬덤과 종파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건국 당시 사회 지도층의 주축이었던 농촌 지주의 후계자였거나, 최소한 그들과 결탁한 종파 중에서 선택된 이에 가까웠다. 

비교적 최근, 대도시인 카리치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 중산층에게는 이들이 반가울 리 없었다. 결국 칸의 ‘부패척결’이라는 수사는 젊은 중산층을 사로잡고 동시에 기존 정치 지도자들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는 두 가지 장점이 있었다. 

◆ 군부와 칸의 수지타산

결국 군부와 칸은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칸과 군부 사이에는 ‘민족주의에 대한 집착’이라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경쟁 후보들과 달리, 칸은 어떤 지방과도 연관성이 없었다. 

가령, 부토 가문은 신드 지역에, 샤리프 가문은 펀자브 지역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반면 2012년에 나온 그의 자서전에 의하면 칸은 스스로를 파슈툰족이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그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 사는 파슈툰족이 쓰는) 파슈토어 언어를 쓰지 않는다. 

거기에다 크리켓 국가 대표팀 주장이었다는 이력 때문에 그는 지역 간 분열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엘리트에 속했다. 군부는 민족적 단일성 구현을 바랐고, 칸이 가졌던 범(汎)파키스탄적인 정체성을 받아들였다. 

부연하자면, 파키스탄은 크게 펀자브, 신디, 파슈툰, 그리고 발로치 등 4개의 민족이 각자의 민족이 모여사는 지역을 중심으로 4개의 주를 형성하고 있는 연방국이다. 이는 인도와도 비슷한 형태의 연방 체제다.
 

발루치스탄 주는 연방 정부에 반대해 분리독립운동이 맹위를 떨치는 분쟁지역이기도 하다. 사진은 해당 지역으로 파견된 파키스탄 중앙군. (사진=연합뉴스)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이후 의회 민주주의 정착은 이들 간의 권리와 자치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지만, 점진적으로 발전해왔다.

군부는 지역 민족주의가 발흥하고, 소수민족이 헌법에 명시된 권한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상황을 바라지 않았다. 군부는 최근 정해진 절차 내에서 입맛에 맞는 후보자를 뽑아왔는데, 소수민족의 발흥은 그들의 전략에 부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군부가 연방주의 쪽으로 기울어진 현재 추세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칸의 범파키스탄적 정체성은 군부의 기호에 대단히 부합했다. 가령 군부는 2010년 파키스탄인민당(PPP)과 파키스탄무슬림연맹(PML-N)이 지방에 더 많은 자율성과 재정지원을 규정한 제18차 헌법 개정을 도모하자, 반감을 표출한 바 있다. 

이 상황에서 칸 총리의 민족주의는 인도에 대한 적대감으로 향했다. 가장 상투적인 방법이면서도 언제나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인도에 대한 비난을 계속했다.

◆ 무슬림국가의 수호자

이밖에도 이슬람에 대한 칸의 호의적인 언사는 파키스탄 무슬림 정체성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군부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았다. 바람둥이 이미지(두 번의 이혼경력)에도 불구하고, 칸은 종교에 대한 경건함과 사회 보수주의를 보여줬다.

칸은 2012년 무슬림타임즈에 실린 ‘종교를 향한 나의 여정’이라는 글에서 서구의 유물론과 부도덕함, 『악마의 시(The Satanic Verses)』 사태 당시의 이슬람에 대한 서구의 비판에 대응해 자신이 이슬람에 대해 재발견한 사실을 이야기했다. 

『악마의 시』는 영국작가 살만 루시디의 소설로 1988년에 출판되었다. 무함마드를 풍자하고 코란을 악마의 계시로 빗댄 이 소설은 무함마드를 모독하는 행위라 하여 이슬람계의 격분을 촉발했다. 파키스탄을 선두로 곧 이슬람 여러 나라에서 즉각 발간이 중지됐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가 작가 루시디에게 사형을 선고한 이후, 루시디는 어둠 속에 숨어 피신생활을 계속했다. 이에 대응해 서구사회에서의 비판이 쏟아졌으나, 이 글에서 칸은 당시 있었던 크리켓 경기에서의 승리를 ‘알라의 뜻’이라고 묘사하며 누군가를 옹호하는 스탠스를 보였다.

악마의 시 저자인 루시디. (사진=연합뉴스)

같은 글에서 칸은 서구화된 파키스탄 엘리트들과 이슬람교와 무관하게 비관용적인 급진주의자들이 대화할 수 있도록 중재했다고 주장한다. 칸은 중재자를 자처하는 한편, 점차 전통과 특히 가족적인 가치 등을 강조함으로써 이슬람교도들의 입장을 변호했다. 

그는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 법의 엄격한 적용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2013년부터 파키스탄 탈레반과 협상하기를 바란다고 밝혔으며, 탈레반의 사법체계와 대미 투쟁을 칭찬하면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을 옹호했다. 

칸은 2010년대 초 아프가니스탄 국경 지역에서 일어난 미국의 드론 공습에 반대하면서, ‘타협하지 않는 민족주의자’라는 명성을 얻었다. 파리정치학교 산하 국제연구소의 크리스토프 자프를로 연구원은 지난 11월 르 몽드에 기고한 글에서 “칸이 이번 총선에서 승리함으로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파키스탄에 대한 원조 축소를 결정한 이후 이미 복잡해진 미국과의 긴장 관계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았다.

◆ 군부와 임란 칸의 밀월관계

칸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 위와 같이 ‘굴하지 않는 민족주의자’라는 이미지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감성도 이용했다. 그는 세 번째 아내와 함께 유명한 수피교 성인의 무덤을 참배했다. 

칸이 속한 파키스탄정의운동(PTI) 당은 파키스탄무슬림연맹(PML-N)에 대해 말리크 뭄타즈 후세인 카드리의 처형에 책임이 있는 정치조직이라며, 유권자들에게 이들을 뽑지 말라고 촉구했다. 카드리는 2011년 1월에 펀자브 지역의 살만 타시르 주지사를 암살한 인물이었다. 

카드리가 타시르 주지사를 암살한 이유는 명확하다. 타시르 주지사가 힌두교도, 기독교인, 아하마디아교도 등 종교적 약자가 가장 먼저 희생되는 신성모독법에 반대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아하마디아교인들은 스스로 무슬림이라고 규정하면서도 19세기에 태어난 선지자를 믿는다. 

카드리는 말하자면 무슬림 근본주의자에 속했다. 거기에 당시 집권당인 파키스탄무슬림연맹 역시 이에 대해 어느 정도 온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중앙에서 임명되는 주지사를 암살한 것에 대해 온정적인 처사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는 신속히 처형되었다.

칸은 야당 당수 시절부터 이 점을 비판하고 나섰다. 뿐만 아니라 “선지자 무함마드가 마지막 선지자라고 믿지 않는다면 어느 무슬림도 스스로 무슬림이라고 할 수 없다”라면서 이 법(이미 수백 명의 남녀가 이를 근거로 투옥돼 있음)을 더욱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가장 민감한 주제는 지금까지 가장 급진적인 당파에 의해서 악용돼왔다. 

군부는 칸을 지원하기 위해 칸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 매체들을 통제했다. 파키스탄 주요 일간지인 <돈(Dawn)>이 대표적이었다. 

로이터의 작년 7월 기사에 따르면 군부는 세무조사 위협에서부터 유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단을 이용해 언론인들에 대한 협박을 시도했다. 유럽연합과 영국 연방 소속 옵서버들은 이를 두고 “표현의 자유와 자기 검열의 자유를 막는 장애물”이라고 묘사했다.

◆ 샤리프를 살리느냐? 죽이느냐?

이런 조작들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정의운동(PTI)은 총선에서 절대 다수표를 얻지 못하고 총 272석 중 116석, 1/3에 못 미치는 32%의 의석만을 차지했다. 반면 파키스탄무슬림연맹(PML-N)은 64석(전체 선거표 중 24%), 파키스탄인민당(PPP)은 43표(13%)를 차지했다. 여러 압력에도 불구하고 전 여당 지도자들은 선거에 출마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대해 자프롤르는 “정계에 막 입문한 정치인들이 총선에서 괄목할만한 성적을 거둔 사실은, 군부가 은밀하게 힘을 실어줬다는 가정을 뒷받침해준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전통적으로 군부와 가까운 무장단체인 ‘라쉬카르 에 타이바(Lashkar-e-Taiba)’의 이슬람운동 조직원들은 선거관리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무소속 후보로 출마할 수 있었다. 

이 같은 경우는 또 있다. 이슬람교 율법인 샤리아와, 그리고 타리프 주지사의 암살자를 옹호하기 위해 1년 전에 급조된 정당인 테릭-이 라바익도 4%의 표를 획득했다. 급진적인 이슬람 성향의 이 신진 정치인들은 전통적 이슬람 정당인 이슬람당과 이슬람성직자회의의 뒤를 잇고 있다. 

하지만 이들 간의 동맹은 그 속도를 잃고 있다. 

의회의 분열이 ‘군부’ 입장에서는 골칫거리이기는 해도, 칸이 의회에서 소수정당과 연정을 구성해서 (불안정하기는 하지만) 과반의석을 확보하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칸이 이끄는 파키스탄정의운동(PTI)은 파키스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인 펀자브를 포함해서 가장 큰 지역 두 곳을 이끌고 있다. 

이는 파키스탄무슬림연맹(PML-N)이 아깝게 놓친 성과지만, 군부에 있어서 천만다행인 일이다. 군부 입장에서 펀자브 지역은 핵심 장교들을 모집하는 곳이며 샤리프 가문의 영향력이 우려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파키스탄 군의 대부분은 펀자브인 출신이다. 과거 영국통치 시절부터 펀자브인은 ‘전투에 특화된’ 민족으로 여겨져 왔으며, 당시부터 펀자브 지역은 군 기간시설과 방산기업들이 밀집한 군부의 핵심지역으로 간주되고 있다.  

다만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의 형제인 사바즈 샤리프는 2009년부터 펀자브 지역을 통치하고 있다. 나와즈 샤리프는 힘을 잃었지만, 그의 동생을 중심으로 그의 지지자들이 언제고 결집할 수 있는 가능성은 남아있다.

위와 같이 힘이 분산된 상황에서 칸은 자신의 정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군부의 지시에 복종하게 될 것인가?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는 군부의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했고, 자르다리 전 대통령은 상황을 받아들였다. 

모디 인도총리를 만나는 나와즈 샤리프 전 파키스탄 총리. (사진=YTN)
모디 인도총리를 만나는 나와즈 샤리프 전 파키스탄 총리. (사진=YTN)

칸 신임 총리는 그 방법을 만들어내야 하지만, 아마도 중도적인 방법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노팅엄 대학교의 캐서린 아디니 교수 역시 지난해 실린 글에서 비슷한 의견을 내비쳤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의 재프롯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작년 4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칸은 쉬운 선택지를 두고 굳이 어려운 길로 돌아갈 사람이 아니다”며 그가 큰 고민없이 군부와 협력할 것임을 은연 중에 암시하기도 했다.

칸 총리는 제18차 헌법 개정을 완화함으로써 아마도 파키스탄을 다시 중앙집권화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며, 군부가 원하는 대로 펀자브 지역을 여러 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누는 데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군부는 왜 그들의 든든한 기반과도 같은 펀자브를 나누려고 할까? 사실 신드나, 파슈툰, 발로치 족에 비해 펀자브 인구는 수적으로 다수이며, 따라서 하원 역시 펀자브 지역 소속에 할당된 의석이 가장 많다. 그렇지만 나와즈 샤리프 같이 군부에 반하는 이가 펀자브와 의회를 장악한다면 군부는 코앞에서 그들의 자산을 송두리째 빼앗길 것이다.

따라서 군부는 이를 미연에 막고자 한다. 칸도 이에 협력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정치적 기반지역이 전무한 칸의 이해에 반하지 않는 정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칸 총리는 군 예산을 삭감하지 않으면 파키스탄 국민들에게 약속한 ‘이슬람 복지국가’의 재원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군 예산은 군인연금을 제외하고도 파키스탄 전체 지출 중 5번째에 속한다.

또한 칸 총리가 더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중국, 그리고 인도와의 관계에서 영향력을 갖기를 원한다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파키스탄 전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금융 위기와 파키스탄무슬림연맹(PML-N)과 파키스탄인민당(PPP) 등 야당 간 단합도 극복해야 할 사안이다.

이와 함께 자프를로는 10월 르 피가로에 기고한 글에서 인상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칸 총리는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어려운 임무를 맡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샤리프 전 총리를 감옥에 가두면 그를 순교자로 만들 위험이 있다. 베나지르 부토의 아버지 줄피카르 알리 부토가 감옥에서 순교하자 부토는 ‘파키스탄의 아버지’가 되었고, 베나지르 부토도 그 점을 이용하여 총리가 되었다.

그렇다고 나와즈 샤리프를 석방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야당의 힘이 엄청나게 커질 위험이 있다. 펀자브가 또다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자프롯 교수와 이슬라바마드 대학의 쉬드 교수는 작년 동국대에서의 인터뷰에서 “칸은 샤리프를 석방할 수는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모두가 동의하는 유일한 해결책은, 샤리프 전 총리를 또 다시 망명길에 오르게 하는 일일 것이다.  

◆ 이란으로 관심 돌리는 임란 칸

여러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에 당면한 임란 칸은, 외부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다. 올해 2월 파키스탄과 가까운 이란 남동부 국경지대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수송 버스를 겨냥한 자살폭탄 공격으로 장병 27명이 숨진 일이 있었다.

이란 정부는 이 테러의 배후를 파키스탄에 근거지를 둔 수니파 분리주의 무장조직 ‘자이시 알아들’이라고 지목하고 파키스탄 정부에 이들을 좌시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반면, 파키스탄 서부 국경지대 발루치스탄 주에서는 무장 괴한 일당이 버스를 습격, 민간인 14명을 납치,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파키스탄 정부는 범인 일당에 대한 훈련, 보급이 이란에서 이뤄졌다면서 이란 정부에 강력한 조처를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란과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임란 칸이 이란 방문을 통해 안보 불안과 경제난 두 가지를 해결하려 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경제난이 심각한 파키스탄은 오랜 수니파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와 UAE(아랍에미리트)에 122억 달러(약 13조 원)의 구제 자금과 원유를 빌린 바 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이에 2월 파키스탄을 찾아 에너지 분야에 200억 달러(약 23조 원) 규모로 투자하는 양해각서에 서명한 바 있다. 경쟁국 이란을 고립·견제하기 위해 이란의 인접국인 파키스탄을 끌어들이려는 의도다.

이란 역시 안보적 필요뿐 아니라 육상으로 이동할 수 있는 파키스탄이 미국의 제재를 피하는 우회로가 될 수 있다. 풍부한 천연가스를 내세워 에너지가 부족한 파키스탄과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미국의 적대적 고사 전략을 돌파해야 하는 이란으로선 지정학적으로 국경을 마주하는 이라크,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을 우군으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들 3개국 모두 미국과도 척을 지지 않은 터라 이들이 미국으로 기울어 이란과 멀어진다면 이란은 정치, 경제, 군사·안보적으로 고립되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역학관계를 종합해보면 칸 총리의 이란 방문추진은 이해가 간다. 파키스탄이 비록 경제난을 겪고 있지만, 핵보유국이자 서아시아의 군사 대국으로서 사우디와 이란의 역내 경쟁 구도를 자국의 이익에 이용하려는 행보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칸 총리는 지난해 9월 사우디를 방문했을 때 메카를 찾아 성지순례를 한 바 있다. 만일 이란과의 관계에서 의미 있는 성과가 만들어진다면, 그의 초반 리더십은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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