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영국 하원, 브렉시트 합의안 또 부결시켜
-집권당에서도 이탈표 쏟아져…메이 총리 리더십 도마에
-가장 큰 쟁점은 안전장치(backdrop) 합의 여부
-안전장치 해결 없이 브렉시트 타결 없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 (사진=연합뉴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영국 하원이 12일 열린 승인투표(meaningful vote)에서 브렉시트(Brexit) 합의안을 또 부결시켰다.

영국 하원의원 633명은 이날 오후 의사당에서 정부가 유럽연합(EU)과 합의한 EU 탈퇴협정 및 ‘미래관계 정치선언’, ‘안전장치’(backstop) 관련 보완책을 놓고 찬반 투표를 벌였다. 투표 결과는 찬성 242표, 반대 391표였다. 합의안은 149표차로 부결됐다.

찬성표를 던진 의원은 집권 보수당 235명, 제1야당인 노동당 3명, 무소속 4명 등이었다. 반대표를 던진 의원은 노동당 238명, 보수당 75명, 스코틀랜드국민당(SNP) 35명, 무소속 17명, 자유민주당 11명, 민주연합당(DUP) 10명, 웨일스민족당 4명, 녹색당 1명 등으로 집계됐다.

◆ 집권당서 이탈표 쏟아져

집권당 소속으로 정부 합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보수당 의원 75명은 브렉시트 강경론자 그룹이 대부분이다. 만약 이들 75명이 모두 합의안을 찬성했다면 찬성 317표, 반대 316표로 통과됐을 수도 있다. 이에 메이 총리의 지도력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우려도 속출하고 있다. 

이는 영국 의정 사상 정부가 의회에서 기록한 패배 중 네 번째로 큰 부결 표차다. 영국 하원이 브렉시트 합의안을 부결시킨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앞서 양측은 지난해 11월 585쪽 분량의 EU 탈퇴협정, 26쪽 분량의 ‘미래관계 정치선언’에 합의했다. 당시 제정된 EU 탈퇴법에 따르면 정부가 EU와의 협상 결과에 대해 하원 승인투표를 거치도록 했다.

그러나 지난 1월 중순 열린 브렉시트 합의안 첫 번째 승인투표는 찬성 202표, 반대 432표로 영국 의정 사상 정부 패배로는 사상 최대인 230표 차로 부결된 바 있다.

양 합의안이 부결된 데에는 이른바 ‘안전장치’ 논란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영국과 EU가 미래관계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 국경에서 엄격한 통행·통관 절차가 부활된다. 

이른바 양 국이 국경을 맞대고 껄끄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안전장치’(backstop)라 칭해왔는데, 가디언을 포함한 몇몇 외신을 중심은 이를 둘러싼 논란이 브렉시트를 둘러싼 최대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10일, 런던의 의사당 앞에서 브렉시트 반대 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이 ‘브렉시트 엿먹어라’고 쓰인 모자를 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안전장치란 무엇인가?

안전장치, 즉 백스톱(backstop)의 기원은 야구 경기 용어에서 비롯되었다. 바로 포수 뒤쪽에 쳐진 철망을 가리키는 것. 포수가 받지 못한 야구공이 계속 날아가 뒤쪽의 관중을 맞추거나, 유리창 등을 와장창 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여기서 야구공이 계속 날아간다는 것은, 2019년 3월 29일부터 시작돼 2020년 12월 31일까지 주어진 브렉시트 전환기 끝까지 브렉시트 후의 양측 간 무역 및 안보 관계가 명확히 설정되지 않은 것이다. 노딜 상태로 계속 협상만 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현재가 바로 그러하다.

EU가 걱정하는 것은 2년이 조금 남은 전환기마저 노딜로 끝났을 때 영국의 6400만 국민들이 겪을 어려움이 아니다. EU 27개국 4억5000만 명이 걱정하는 노딜의 ‘유리창 와장창’ 사태는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 사이에 진짜 국경이 생기는 사태다. 

이를 막기 위해 EU는 ‘북아일랜드 국경 백스톱’을 요구하고 있다.

애초에 백스톱은 브렉시트 협상 테이블에서는 ‘딜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자동으로, 무조건 적용 시행되는 조항’을 뜻해왔고, EU의 유일한 백스톤 조건은 “북아일랜드-아일랜드 국경이 지금처럼 없는 듯한” 상황이었다.

이 백스톱이 없으면 노딜의 경우 2021년 1월 1일(혹은 1년 전환기 연장해 2022년 1월)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에는 ‘진짜 실제의(hard) 물리적’ 국경이 생겨나고 그에 맞게 검문소 등 국경 인프라가 세워질 수밖에 없다.

이곳의 국경은 20년 전인 1998년 북아일랜드 내 민주통합파와 신페인 민족주의파간 평화협정으로 사라졌다. 이것이 사라지기 전 30년 동안 양측은 무장 충돌을 계속해 3600명이 사망하고 5만 명이 다쳤다.

민주통합파(DUP)는 영국 본토섬(브리튼) 지향의 개신교이며 신페인은 아일랜드섬 원주인인 아일랜드 공화국 지향의 가톨릭이다.

이 때의 기억으로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모두 서로에 대해 자유롭게 건널 수 없는 선을 그어 버리는 것에 대해 반발이 극심하다. 이러한 반발을 다스리기 위해 내놓은 복안이 안전장치다. 이에 아일랜드 공화국이 EU, 그리고 영국에 ‘실제적인 국경이 없는’ 상황을 최우선으로 요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물자와 서비스와 사람이 지금처럼 마찰 없이 출입 통과하기 위해서는 브렉시트 후에도 북아일랜드는 EU의 관세동맹이나 단일시장 규정을 받은 ‘준 EU’ 땅이어야 한다. 이는 EU 체제에서 벗어난 영국 본토 브린튼섬에서 아일랜드섬의 북아일랜드로 물자와 서비스가 이동할 경우 같은 나라임에도 다른 교역 규정이 적용되는 것을 뜻한다. 

말하자면 영국 내에서도 관세장벽이 세워질 수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북아일랜드의 민주통합당은 입장을 바꿔, 백스톱을 결사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문제는 소수파 정권의 메이 총리가 이 당의 의석에 기대 정권을 지탱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결국 메이 총리는 ‘한시적으로 북아일랜드뿐만 아니라 본토 브리튼섬을 포함 영국 전체가 EU 교역 체제에 속하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문제는 메이 총리의 이 전국 편입 안이 “한시적”이라는 조건에 기초한다는 점이다. 어느 특정 시점이 지나면 브렉시트 노딜 상황이더라도 북아일랜드의 EU 체제 귀속을 해제하며, 그래서 하드 국경을 세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는 자연히 EU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왔다. EU측은 그간의 모든 협상을 무효로 돌릴 수도 있다며 반발했다. EU와 아일랜드는 노딜 상황에서는 언제까지나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간 국경이 지금처럼 ‘투명하게 없는 것처럼’ 유지되길 원한다. 

그러나 사실 ‘한시적’이라는 문구가 빠진다면 메이 총리의 제안이 사실상의 ‘브렉시트 철회’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메이 총리는 빠져나오기 무척 힘든 딜레마에 빠졌다. 
 

의회에서 발언하는 메이 총리. (사진=BBC)

◆ 향후 정국은?

따라서 브렉시트 강경론자들은 백스톱 종료 시점이 명시되지 않아 영국이 영원히 EU 관세동맹 안에 갇힐 수 있다고 반발해 왔다. 거기에다 북아일랜드 측 의원들은 영국 본토와 달리 북아일랜드만 EU의 상품규제를 적용받을 가능성에 집중하고 있다.

실제로 메이 총리는 투표가 열린 전날인 11일,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을 만나 영국이 영구적으로 ‘안전장치’에 갇히지 않도록 법적 문서를 통해 보장하는 한편, 영국에 일방적 종료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의 보완책에 합의했다.

그러나 제프리 콕스 영국 법무상이 이에 대해 법률 검토한 결과, 여전히 영국이 EU 동의 없이 안전장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국제적으로 합법적인 수단은 없다”고 밝히자 브렉시트 강경론자들은 제2승인투표에서도 합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이 날 제2승인투표가 부결되자 메이 총리는 의회 성명을 통해 예고한 대로 다음날인 13일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는 ‘노딜’(no deal) 브렉시트 여부를 하원 표결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그녀는 ‘노딜’ 브렉시트가 가져올 타격을 우려해 하원이 이에 반대할 것을 촉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원들이 노딜 브렉시트에 합의한다면 EU와의 합의안을 마련하는 데 좀 더 협조적으로 나오게 될 것이라는 정치적인 복안이다. 

메이 총리는 의회가 노딜 브렉시트를 반대할 경우에는 다음날인 14일 리스본 조약 50조에 따른 브렉시트 시점을 연기하는 방안에 관해 표결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단순히 브렉시트 시점을 연기하는 것은 문제 해결 방법이 아니며, EU 측에 연기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어 발언에 나선 제1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하원이 협상 가능한 제안 아래 뭉쳐야 하며, 이는 노동당이 제안한 안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코빈이 제안하는 안은 설득력이 더 떨어진다. 영국의 영구적인 관세동맹 잔류를 EU가 받아들일 리 없기 때문이다.

코빈 대표는 이와 함께 이 날 메이 총리가 시간을 끌고 있는 만큼 조기총선을 개최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메이 총리의 전략이 ‘EU와 반대파들로부터 시간을 버는 것’이 명확해지는 만큼 메이 총리를 압박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노동당의 목표는 관세동맹에 잔류하는 브렉시트일까? 아니면 메이 총리의 실각일까? 합의 없는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EU와 영국 내 강경파, 그 틈에 낀 메이 총리가 취할 선택지는 이제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 노딜 브렉시트는 왜 최악의 시나리오인가
  
정치권이 선거 전략으로 꺼내든 브렉시트는 결국 영국을 분열과 혼돈 속으로 밀어 넣었다. 노딜 브렉시트 우려만 커진 현재의 혼란은 영국을 넘어 EU와 전 세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 와중에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은 현재의 혼란이 노딜 브렉시트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노딜 브렉시트가 3월 말부터 현실화되면 영국이 EU 관세동맹에서 갑자기 빠지게 되기 때문에 물자공급에 이상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또 EU와 FTA를 맺었던 모든 국가들이 영국과 원활한 교역을 할 수 없게 된다. 영국에게는 더욱 문제다. 영국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대외경제의존도가 높아 현재 식품수입 3분의 1을 EU에 의존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10월 “영국 전역의 일부 주민들이 쌀, 파스타, 말린 과일, 물 등을 비축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국기업들도 변화하는 정치 지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영국에 승용차를 무관세로 수출하고 있는데, 지난해에만 약 15억 달러의 수출액을 기록했다. 하지만 노딜 브렉시트가 이뤄지면 승용차에는 10%관세가 붙는다. 관세폭탄을 피하기 위해선 3월 말까지 영국과 별도의 양자 FTA를 맺어야 한다.  
  
또 현재 영국엔 국내기업 100여 곳이 진출해 있다. 전반적인 물가 상승이 예상되는 만큼 이들의 행정비용이나 물류비도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외교부 당국자는 “이 기업들이 본부를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에 피해를 최소화 하기위해 한ㆍ영 FTA 협상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저작권자 © 데일리비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