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의 부테플리카 대통령, 대선 불출마 선언
-대통령의 고령과 건강문제는 늘 우려사항
-알제리 국민, 거리로 나와 대통령 불출마 요구
-정권 교체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알제리의 부테플리카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알제리의 부테플리카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고령과 건강 문제에도 5선에 도전하려던 알제리 대통령의 계획이 국민들의 거센 반발로 결국 좌절됐다.

82세인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은 지난 11일 대국민 발표문을 통해 자신의 “5번째 임기는 없을 것”이라며 “4월 18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도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AFP통신과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이 보도했다.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이번 발표가 “나에게 수없이 가해지던 거절하기 힘든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표현 방법을 선택한 많은 사람의 (시위)동기를 이해한다”며 알제리인들이 평화적으로 시위를 벌인 것을 긍정적으로 평했다.

알제리에서는 지난 8일 약 50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집회가 열렸지만 집회 참가자는 대체로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고 평화롭게 자신들의 주장을 폈다.

◆ 나이가 너무 많은 부테플리카

1999년 취임한 뒤 5년씩 4차례나 연이어 집권한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고령과 건강 문제에도 불구하고 올해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켜왔다. 그는 2013년 뇌졸중 증세를 보인 뒤 휠체어에 의지한 생활을 하면서 공식 석상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2014년에도 중증 뇌졸중에 걸린 채로 4선 연임에 성공한 바 있다. 그는 당시 선서를 하기 위해 국민 앞에서 연설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로 국민들에게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항상 휠체어를 탄 채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테플리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는 자멜 울드 아베스는 10월 81세의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서 5선에 도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발표에 대해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암묵적인 동의를 표시했다. 

그는 대개 수도 알제 서쪽에 위치한 관저에서 지병을 치료받고 있다. 이에 여론은 늘 현직 대통령의 건강을 놓고 갑론을박이 활발해왔다. 지난 9월에 상공회의소는 대놓고 알제리는 새로운 후보가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한 바 있다. 한 국영기업의 CEO 역시 작년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부테플리카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야당 인사들은 물론, 한 때 집권 여당에 몸담았던 지식인들 역시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할 상태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며 5선 연임은 불법이라고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이 주장하는 근거는 알제리 헌법 제102조에 적혀있다. 

알제리의 헌법 102조는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이 중병 때문에 국정을 운영할 능력이 없을 경우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할 수 없는 상태임을 선언하도록 의회에 만장일치로 제안한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들의 요청을 이미 2014년에 거부한 바 있다. 올해에도 같은 제안을 거부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선거유세에 나설 수도 없는 상태라고 비웃었다.

휠체어에 탄 부테플리카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 모두가 반대했던 현직 대통령의 연임

대통령이 자리를 비우는 날이 일상이다 보니, 르 피가로와 르 몽드 등 유력 일간지에서는 “알제리는 올해 대선을 앞두고 군사 쿠데타의 위협이 높아질 것”이라는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부테플리카를 입후보시키려는 이들이나, 대체자를 찾아내려는 이들 모두 상대방을 향한 ‘선제공격’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가령, 2년 전부터 군부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인사이동도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10월에는 군부 고위급 5명이 ‘부정축재’와 ‘직권남용’으로 구금됐으나 대통령이 사면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어 11월에는 다른 장군 3명, 그리고 8월에 임명된 벨밀루드 오트만 군대 치안 중앙청장이 동시에, 그리고 갑작스레 경질됐다. 

시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알제리에서는 연일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지난 3주 동안 매주 금요일마다 대규모 집회가 열렸으며 특히 지난 8일 수도 알제의 집회는 약 30년 만에 최대 규모로 평가됐다.

국민들의 저항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귀국한 지난 10일부터는 5일간의 총파업이 시작됐다. 이날은 프랑스에서도 지지 시위가 열렸다. 알제리 전역에서 상점이 철시하고 대중교통은 멈춰 섰으며, 많은 학교가 문을 닫았다.

노동자들도 거리로 몰려나왔다. 특히 알제리 국내총생산(GDP)의 약 30%를 차지하는 에너지부문의 일부 노동자들도 파업에 동참하면서 부테플리카 정권을 압박했다.

50년 이상 정권을 잡고 있는 여당 민족해방전선(FLN)의 일부 의원은 탈당해 시위대에 합류했다.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1990년대 약 10년의 내전을 치른 알제리의 평화정착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집권이 장기화하면서 권위주의적 통치로 흐른다는 비판에 휘말렸다. 

알제리 시위를 보도하는 CNN. (사진=CNN)

◆ 혁명은 아직 진행 중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이날 향후 정국 운영 계획도 밝혔다. 독립적인 대통령위원회의 지휘 아래 정부가 국민회의(national conference)를 구성하고, 국민회의가 올해 말까지 운영되면서 독립적으로 대선일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번 발표는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이유로 스위스 제네바 대학병원에 입원했다가 전날 오후 2주 만에 급거 귀국한 뒤 나왔다. 그의 입장 발표 후 아흐메드 우야히아 총리는 사임했고, 내무장관인 누레딘 베두이가 후임자로 임명됐다.

대통령의 불출마 선언이 나온 뒤 수 주간 시위를 벌여온 알제리 국민들은 거리로 나와 국기를 흔들며 환영했다. 또 차량을 몰던 이들은 경적을 울리며 기쁨을 표시했다. 무료로 식료품 및 생필품을 나누어주는 상점 주인들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절반의 승리”라며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청년단체 관계자인 야스민 부케네는 가디언에 “작은 전투의 승리”라며 대통령이 1년을 더 원하고 마음대로 하는 만큼 시위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다른 시위 참가자인 라우프 파라흐도 “부테플리카는 어떤 확약이나 일정표도 없이 국민의회의 활동이 종료될 때까지 권력에 남아 있을 것”이라며 그가 승리를 훔치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AP는 즉각적인 퇴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점차 가열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미 전 국민적인 비판을 수용한 부테플리카가, 82세의 나이에 권력욕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큼은 모두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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