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독일 총리(왼쪽)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박상희 기자] 유럽에서 미국과 중국에 맞서 초대형 기업을 키우자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EU) 양대 축인 독일과 프랑스가 EU 내 거대 기업의 합병을 막는 `EU경쟁법`을 개정해 초대형 유럽 기업이 탄생할 수 있도록 협력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유럽연합(EU) 반독점당국의 결정에 불만을 토로해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항공산업의 에어버스와 같은 '유럽 챔피언' 기업을 만들기 위해 공동 산업전략을 마련하고 EU경쟁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앞서 독일 지멘스와 프랑스 알스톰의 철도사업 합병 시도가 연이어 EU 반독점당국에 의해 거부되자 경쟁법규를 바꾸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독일 내에서는 자국 기업의 인수·합병 시도를 좌절시키는 족쇄가 되었다는 비판론이 거세다. 루프트한자항공은 2017년 파산한 에어베를린을 인수하려다 EU당국의 반대에 부딪혀 불발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페터 알트마이어 독일 경제부 장관과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경제부 장관은 19일(현지시간) 베를린에서 회담 후 EU경쟁법규 개정, 공동 투자촉진 등을 골자로 한 ‘프랑스ㆍ독일 산업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5페이지 분량의 이 성명서는 EU 기업들이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양국은 인공지능(AI) 연구개발에서 양자협력을 통해 세계 정상 수준의 기술을 확보하고,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공동생산 등에도 나서기로 했다. 

FT는 “EU당국이 지멘스와 알스톰의 합병을 불승인한 데 따른 독일과 프랑스의 반발”이라며 “EU 기업들이 글로벌시장에서 성공적으로 경쟁하기 위해서는 기존 EU경쟁법규가 수정돼야 할 필요를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세계 40대 기업 중 유럽기업은 5개에 불과하다.

이날 메르켈 총리는 “경쟁법규를 개정하려는 EU의 의지를 확인해야만 한다”며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멘스와 알스톰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진짜 글로벌 플레이어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조장한다”며 EU당국의 결정을 거듭 비판했다.  

독일 유력 경제지 헨델스블라트는 “메르켈 총리가 3월 말 EU정상회의에서 경쟁법규 개정 등 EU 산업정책에 대해 논쟁하길 원한다”며 늦어도 2020년 하반기 중 경쟁법규 개정에 나서길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시장경쟁 보호 측면에서 독일과 프랑스, EU집행위원회의 입장 차가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는 점이 걸린다. FT는 “프랑스와 독일 정부는 중국의 부상이 유럽산업에 가하는 위협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고, 자국 기업들이 아시아계 라이벌로부터의 기술침해 등 피해를 입는 것에 강경한 입장”이라면서 “EU집행위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경쟁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의회 행사 후 블룸버그통신과 만나 “지멘스와 알스톰의 합병 시도의 경우 신호시스템, 차세대 고속철도 등 가격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는 독점 우려를 해소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페터 프라트 유럽중앙은행(ECB) 수석 연구원 역시 같은 날 “시장경쟁에 대해 다룰 때 일반적 관점에서 승자와 패자, 챔피언 등을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며 정치적 논쟁을 경계했다. 그는 “유럽 챔피언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좋은 거래인지 아닌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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