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서평 / 인간의 본능

생물학, 신경과학, 물리학 등의 발달로 인간에 대한 이해는 깊어졌지만, 몇 가지 분야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인간의 의식과 자유의지가 과연 무엇인가’에 관한 내용이다.

둘의 쟁점은 조금 다르다. 자유의지의 경우 ‘있느냐 없느냐’가 초점이다. 의식의 경우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 초점이다.

그렇다면 이 논의를 어떻게 풀어나갈까? 미국 브라운 대학의 생물학 교수 케네스 밀러(Kenneth Miller)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볼만하다. 미국 중고등학교 및 대학교 교과서를 집필한 밀러 교수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대표적인 정통 과학자이다.

밀러 교수는 그의 저서 ‘인간의 본능’(The Human Instinct)를 통해 “신을 믿으면서 진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지적설계론을 교육과정에 가르치려다가 아홉명의 학부모가 반대하며 벌어진 ‘키츠밀러 대 도버’ 재판에서 원고측 전문가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케네스 밀러 지음, 김성훈 옮김 / 더난출판 값 18,000원
케네스 밀러 지음, 김성훈 옮김 / 더난출판 값 18,000원

 

쥐 뇌 안에 ‘공간세포’ 들어있어 

그렇다면 과연 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 전문가인 밀러 교수 역시 확실한 증거를 내놓지는 못했다. 다만 ‘자유의지는 진화의 산물이며, 인체 내에서 일어나는 생물학, 물리학적인 여러 과학적 작용의 결과’라는 주장을 인용할 뿐이다.

자유의지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밀러 교수에 따르면 이 논의는 철학에서 시작해서 물리학으로 연결되다가 지금은 신경생물학으로 퍼져있다.

피터 울릭 체(Peter Ulric Tse)가 신경생물학 관점에서 설명한 자유의지의 진행과정은 확실히 새롭다. 그는 뇌에서 발생하는 여러 현상 중 시냅스의 변화를 가지고 자유의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한다.

체는 자유의지와 선택의 문제를 설명하는 3단계 신경세포모형(three-stage neuronal model)을 제시했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앞선 정신적 처리과정에 반응해서 신경 네트워크의 급속한 시냅스 재설정이 일어난다.

두 번째 단계에서 다양한 입력이 새로 설정된 네트워크의 기준에 따라 처리된다.

세 번째 단계는 재설정된 네트워크가 이 기준에 따라 흥분하거나 흥분하지 않는다. 바로 이 세 번째 단계에서는 무작위성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이것이 자유의지라고 본 것이다. ‘생각’ 같은 정신적인 사건들은 세포의 수준에서는 물리적 사건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첫 번째, 두 번째 단계는 기계적으로 이뤄진다.

세 번째 단계는 다르다. 체는 의식이 세 번째 단계에 영향을 미쳐서 뇌의 네트워크 작동이 변화하고, 그것이 결국 인간의 행동에 변화를 준다고 해석했다. 의식이 뇌의 미래 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의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의식이 만들어지거나 진행되는 과정의 일부는 과학적으로 설명이 된다. 그 중 하나가 2014년 노벨상을 받은 공간개념 세포의 발견이다.

영국의 존 오키프(John O’Keefe)는 쥐의 뇌에 전극을 넣어 추적한 결과, 뇌의 해마 영역에 세상의 구체적인 장소와 관련을 가진 장소세포(place cell)가 있음을 발견했다. 이 발견에 이어 노르웨이의 에드바르드 모세르(Edvarde Moser)와 마이-브리트 모세르(May-Britt Moser)는 뇌 안에 있는 새로운 신경세포 집단을 발견했다.

이 격자세포(grid cell)는 동물이 자기위치에 익숙해지면 거의 육각형 격자무늬로 배열된다. 말하자면 뇌 안에 공간지도가 그려지는 것이다.

비슷한 방법으로 버클리 대학 연구진은 의미구조도가 뇌 안에 만들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특정 단어를 들으면 뇌의 특정부위가 활성화된다. 어떤 영역은 숫자에 반응하고 어떤 영역은 사회적 단어에, 혹은 장소 모양 색깔 등에 반응하는 영역이 달랐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신경과학을 통해서 의식의 어려운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이런 과학적 과정이 의식의 문제에 최종 해답이 될 수 있을까? 밀러 교수는 아니라고 본다.

예를 들어, 커피를 마실 때 뇌 안에서 일어나는 신경과학적 과정이 과학적으로 밝혀질 수는 있다.

그러나 커피를 마실 때 사람이 경험하는 느낌과 주관적인 판단까지도 과학적으로 증명이 될까?

노란색을 보는 과정은 노란색에서 나오는 전자기파 스펙트럼의 특정 영역에 속하는 복사에너지에 의해 촉발된다. 그러나 노란색을 볼 때 느끼는 경험과 기억과 느낌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단순히 복사에너지로 설명이 안되는 것이다.

의식을 알려면 물질을 더 잘 이해해야

저자는 철학자 갈렌 스트로슨(Galen Strawson)의 말을 비중 있게 인용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의식적 경험이 물질적인 것일 수 없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물질의 본성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렇지 않다. 의식의 어려운 문제는 의식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물질이 무엇인가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신을 믿는 진화과학자의 시선은 인간의 위치에 대한 존중과 공경을 빼놓지 않는다. 기존의 3단계 역사분류법은 공룡 이전의 고생대, 공룡의 시대인 중생대, 포유류가 등장한 신생대이다. 밀러 교수는 인류가 지구의 주인노릇을 하는 현재를 인류세(Anthropocene)로 분류해서 4번째 시기로 세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이 6번째 대멸종을 주도하는, 그저 지구를 한 번 휩쓸었던 주도세력으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인간만이 지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자각하고, 대비하면서 자기 행동의 결과를 이해하고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따뜻한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본다.

밀러 교수가 증인으로 나간 ‘키츠밀러 대 도버’ 재판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지적설계론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이며, 학교에서 이를 가르치는 것은 정교분리에 대한 공격이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그리고 진화와 신에 대한 그의 기본 개념은 이 한 문장에 압축되어 있다.

“진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깊어질수록 세상은 더욱 경이롭고 아름답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타임즈(www.sciencetimes.co.kr)에도 실렸습니다. 데일리비즈온은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합니다.>

저작권자 © 데일리비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