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 이야기 / 공홍진 카이스트 교수

카이스트 물리학과의 공홍진 교수(65)는 지난 2016년 봄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국제 광학 학술대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가 수십 년 넘게 연구한 레이저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자, 낯선 미국인 한 명이 다가왔다. 동경에 근무하는 미 공군 연구소의 아시아 담당관이었다.

공 교수가 연구하는 레이저 기술은 작은 레이저 여러 개를 수십~수백 개 병렬로 연결시켜서 큰 출력을 내는 것이다. 이는 레이저 핵융합의 핵심인 레이저 드라이버를 개발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같은 병렬형 레이저 빔결합 기술에서 중요한 것은, 여러 개의 레이저를 병렬로 이어도 초점이 흐려지거나 레이저 사이에 간섭이 이뤄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 교수는 이 부분을 지난 20년간 계속 연구해 왔다.

일본에서 공 교수에게 접근했던 미 공군 연구소 담당관은 당시 이 첨단 과학에 대해 무지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공 교수의 연구 내용에 큰 흥미를 느끼고 2년 지원을 약속했다.

아무런 조건이나 까다로운 요구사항도 없었다. 공 교수가 하는 연구의 중요성을 직감적으로 느낀 것이다.

2년간의 미 공군 연구비 지원이 마무리 될 즈음, 미 공군의 후임 담당관이 직접 카이스트를 방문해 연구진척도를 확인했다. 그리고 3년간의 추가지원을 약속했다. 연간 연구비 규모는 2배로 늘었다.

카이스트 물리학과 공홍진 교수.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액체를 이용한  SBS위상공액거울이다.
카이스트 물리학과 공홍진 교수.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액체를 이용한 SBS위상공액거울이다.

사실 이런 미 공군의 연구비 지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손길이었다.

당장 돈이 안 되는 물리학자의 기초 연구에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설사 관심을 기울인다고 해도, 그 연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파악할 사람은 많지 않다.

또 만약 그 중요성을 파악했다고 해도, 별다른 조건을 달지 않고 5년이나 지원할 눈썰미 있는 담당자들은 거의 없다.

공 교수는 “해외에 기술발표를 하러 가면, 과학전문 공무원들이 꼼꼼하게 와서 메모하면서 경청하는 것이 기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역할을 담당할 사람들이 매우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미 공군, 학술회의 발표 보고 즉석에서 연구비 결정

그렇다면 공 교수의 연구에는 어떤 특별한 것이 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핵융합 반응을 먼저 알아야 한다.

수소폭탄을 만드는 원리인 핵융합 반응은 핵분열 반응을 이용한 원자폭탄 보다 훨씬 거대한 출력을 내면서도 방사능 오염은 무시할 만큼 적어 안전성도 높다. 게다가 주원료인 중수소가 무제한으로 많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서 미래의 이상적인 에너지원으로 알려져 있다.

원자폭탄을 평화적으로 활용하는 연구에서 원자력발전소가 나왔듯이, 핵융합 반응에서 나오는 막대한 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연구가 바로 국제적인 컨소시엄으로 진행되는 ITER 연구이다.

그런데 태양이 빛과 열을 내는 원리인 핵융합이 일어나려면, 최소한 1억 ℃의 높은 온도가 나와야 한다. 1억℃를 만들기 위해 ITER은 거대한 자기장 안에서 플라즈마를 일으키고 있다.

자기장 핵융합로 다음으로 나온 방안이 초고출력 레이저를 이용한 핵융합이다. 공 교수의 연구도 이와 큰 관련이 있다.

초고출력 레이저를 한 점에 집중시켜서 1억℃를 만들면,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융합하면서 헬륨으로 변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질량의 차이만큼 거대한 에너지가 나온다. 여기에 적용되는 공식이 바로 그 유명한 E=mc² 인 것이다.

그런데 레이저 핵융합은 장점이 아주 많지만, 갈 길이 매우 멀다.

4MJ(메가 줄)이라는 어마어마한 광 에너지를 가진 레이저 광선이 1초에 10회 이상 터져 나와야 한다.

현재 세계 최대 레이저는 미국 로렌스리버모어연구소(LLNL)에 있는 NIF 레이저이다. 출력에너지는 4MJ에 도달했지만 발사횟수는 하루에 2~3 회 정도밖에 안 된다.

NIF는 20KJ의 레이저 모듈 192개를 연결해서 4MJ을 내도록 설계됐다.

이 192개의 레이저 광선 다발이,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200 기압의 압력으로 들어 있는 직경 1~2mm 크기의 핵융합 타겟에 균일하게 집중된다. 이때 비로소 타겟의 온도가 1억℃ 이상 올라갈 수 있다.

과학자들은 2 KJ의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레이저를 1초에 10회 이상으로 작동시키는 레이저 모듈만 개발되면, 레이저 핵융합기술이 실용화가 되는 시기를 훨씬 앞당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때문에 이 레이저 기술을 개발하려고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그 중에서 공 교수가 하는 연구는 반복율이 10Hz이면서 출력 에너지가 100 J 이상의 작은 레이저를 여러 개 병렬로 결합, 20 KJ의 출력을 얻는 레이저 모듈을 완성시키는 기술이다.

예를 들면 10 Hz로 작동하는 100J의 광선 에너지를 200개 모으면 10Hz로 작동하는 20kJ의 광선 에너지가 된다. 이러한 모듈을 192개 모으면 레이저 핵융합용 레이저 드라이버가 완성된다. 이들을 레이저 핵융합 타겟에 집중시켜서 1억℃를 내도록 하면 된다.

레이저 실험실
레이저 실험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100J의 작은 출력의 레이저 200개를 병렬로 결합할 때 발생하는 간섭과 위상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레이저를 병렬로 여럿 연결할 때, 위상을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결합하면 레이저끼리 보강간섭이나 상쇄간섭이 제멋대로 일어나서 출력을 높이기 어렵다.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을 해 왔다.

그러다 1970년대 초 ‘유도 부릴루앙 산란 위상공액거울(Stimulated Brillouin Scattering Phase Conjugation Mirror; SBS-PCM)’이 나오면서 한 걸음 진전이 이뤄졌다.

위상공액거울은 빛을 원래 모습 그대로 반사시킬 수 있는 거울이다. 거울에 입사된 빛이 거쳐온 과거의 모습을 되살려 보여주기에 시각역행거울로도 불린다.

레이저를 이 위상공액거울에 반사시키면 파면 왜곡이 상쇄되는 매우 특이한 성능을 발휘하므로, 전 세계 레이저 연구자들의 큰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또 다른 난관이 닥쳤다. 파면 왜곡은 사라졌지만, 이 방식은 위상이 제 마음대로 정해져 버린다.

공 교수는 이 단점을 보완해서 ‘자체 제어 SBS 위상공액거울’로 발전시켰다. 이는 과학자들을 골탕먹였던 위상제어를 한방에 해결한 것이다.

SBS-PCM은 고압기체, 액체, 고체, 플라즈마 등 여러 가지 상태의 재료를 바탕으로 만들 수 있다.

공 교수는 이중 액체를 선택했다. 고압기체는 부피가 크고, 고체는 손상을 입기 쉬우며, 플라즈마는 간단하지 않다. 반면 액체는 손상을 먹어도 자체적으로 회복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공 교수는 본인의 아이디어가 저출력에서 완벽하게 작동되는 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과학자들은 공 교수의 방식이 kW급에서도 완벽하게 작동하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차세대 핵융합 발전 및 무기 개발에 활용

3년 전 공 교수의 연구실에서는 kW급의 레이저를 완성해 자체 실험을 했다. 그랬더니 ‘자체제어 SBS 위상공액거울’에 사용한 액체거울에서 액체의 대류현상이 일어났다.

다행히 그 원인이 올해 밝혀졌다. 액체거울의 매질로 사용한 액체(불화수소 계열)에 들어있는 불순물이 주원인이었다. 이 불순물을 1/1000 이하로 대폭 낮출 수 있다면, 목표에 한발자국 더 가까워질 것이다.

물론 진짜 중요한 과제는 남아있다. ‘평균 출력 kW 단위의 레이저를 최소한 2개 이상 병렬 결합’하는 것을 실험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공 교수에 따르면, 2개 이상만 성공적으로 결합하면 그 이상 개수를 늘리는 데 이론적 한계는 없다. 이는 수백 개를 병렬로 연결해 가공할 위력을 가진 레이저 탄생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공 교수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실험적으로 입증이 되기만 하면, 에너지 개발과 레이저 무기 개발에 엄청난 변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현재는 자기장 핵융합연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핵융합 발전로 개발에도 큰 진전이 일어날 전망이다. 또 금속을 먼거리에서 순식간에 녹여버릴 수 있는 레이저무기 개발에도 커다란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레이저 발생 및 증폭장치들이 연결되어 있다.
레이저 발생 및 증폭장치들이 연결되어 있다.

 

죽을 고비 2번 넘긴 과학자의 소명

한편 카이스트 4회 입학생인 공 교수는 원래 서울대 물리학과 재학생이었다.

그는 당시 침뜸에 반해서 학교를 휴학하고, 1년 동안 김남수 선생을 쫓아다니면서 침뜸을 배웠을 만큼 도전정신이 투철하다.

그런 그가 일생의 도전과제로 삼은 것이 레이저다. 공 교수는 1994년에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1.5 TW의 출력을 가진 신명(新溟)레이저를 개발했다. 2015년에는 이보다 훨씬 평균출력이 높은 금강레이저를 개발했다.

공 교수는 레이저 개발이 자신의 소명(召命)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소명의식은 두 번이나 말기암 수술을 이겨낸 뒤에 얻은 것이라 더욱 강력하다.

공 교수는 1998년 직장암 말기로 수술 후 60일을 입원하고 1년 반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5년 반 뒤 직장 근처의 임파선에 암이 재발하였으나 이 역시 수술, 방사선치료, 항암치료를 거쳐 기적적으로 이겨냈다. 두 번 죽음을 딛고 일어선 뒤 진짜 인류에 도움이 될 연구를 해야 하겠다는 마음은 더욱 단단해졌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타임즈(www.sciencetimes.co.kr)에도 실렸습니다. 데일리비즈온은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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