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재계 인사들, 정계 진출 유난히 잦아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 그는 대대로 기업가이자 부호 출신이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정솔 기자] 남미의 기업가들이 정계를 휩쓸고 있다. 페루, 칠레, 파라과이,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은 모두 기업인 출신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입법부에도 과도하게 많은 수의 경제 엘리트들이 포진해있다. 

2016년 페루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대기업 회장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는 부패 스캔들로 사임했고, 2018년 3월 기업가 출신인 마르틴 알베르토 비스카라가 새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4년 전 파나마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대기업 회장인 리카르도 마르티넬리 대통령의 뒤를 이어 기업가 후안 카를로스 발레라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코카콜라 멕시코 지사 회장인 비센테 폭스는 2000~2006년 멕시코 대통령을 지냈고, 칠레의 사업가 세바스티안 피녜라는 2010년~2014년까지 당선과 재선을 거쳐 대통령을 지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사업가 마우리시오 마크리가 2015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파라과이에선 오라시오 카르테스가 2013년 당선됐다.

남미에서 기업 회장이 권력의 최고 자리에 오르는 일은 최근 들어 보편화되고 있다. 미겔 세르나 몬테네그로대 교수는 작년 5월 르몽드에 기고한 기사를 통해 이를 시대별로 분석했다. 우선 기업가들은 1970년대의 군사정권에 지지를 보낸 동시에 1980년대의 독재정권에서는 정치개입에 신중을 기했다. 그들의 민주주의 역시 경제적으로는 ‘자유방임주의’에 가까웠기에 정치권력과 재계가 서로의 역할에 대해 크게 견제하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대에 걸쳐 일어났던 신자유주의 열풍이 기업가들의 정계 진출의 도화선이 되었다. 기업 지도층이 공공행정의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더해 기업가들은 남미 우파의 포퓰리즘을 구현하려는 인물들과 긴밀한 친목을 조직했다.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와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메넴 등이 대표적이다.

정계 유망주를 꿈꾸는 기업인들에게는 1990년대 말이 위기였다. 위기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이 시기의 광범위한 경제위기, 두 번째는 민영화를 통한 국외 자본의 쇄도, 그리고 급진적인 정부의 등장이었다. 베네수엘라에서 잇따라 등장한 차베스와 마두로 대통령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다시 기업가들의 정치권 공세에 유리해졌다. 말하자면 좌파가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몰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기업가들은 공격적으로 정치권력에 탐닉했다. 브라질의 상공회의소에 해당하는 ‘상파울루 주 산업연맹’은 2016년 국회 탄핵 전날에 호세프 대통령의 반대 운동을 직접 조직하기도 했다.

세르나 교수는 이에 2010년~2017년 사이 8개 국가(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멕시코, 페루, 살바도르, 우루과이)에서 기업 대표들이 입법부에 종사하고 있는 비율을 조사했다. 그 결과 8개 국가의 국회의원 801명이 기업의 고위간부나 대표, 또는 대지주 출신임을 알아냈다. 평균적으로 약 3분의 1(23%)이다. 가장 높은 국가는 40%를 기록한 엘살바도르이며, 최저는 13%의 아르헨티나다. 

이 조사결과는 남미의 입법부에 경제 엘리트층이 과도하게 많다는 생각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기업의 대표 및 간부는 남미 전체 경제활동 인구의 3.4%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양원제를 채택한 국가의 경우 경제 엘리트들이 상원 내에 밀집돼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기업 대표 및 간부 수가 브라질의 상원의 30%, 우루과이 상원에서는 20%를 차지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상원은 하원과 비교해 직접선거로 뽑히는 경우가 적고, 기득권을 공고화하기 유리하다. 재계가 정계 나들이를 시작하기 가장 적당한 장소라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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