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이도 국회의장, 국가 지도자 선언...미국은 지지
-중국·러시아, 마두로 지지하며 신냉전 체제 돌입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사진=SBS뉴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사진=SBS뉴스)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인 우고 차베스의 최측근이자 정치적 후계자였다. 버스 운전사 출신으로 노동운동을 하다 정계에 입문했다. 2013년 차베스가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외무장관, 부통령 등 후계자 수업을 착실히 받았다. 첫 대선에 이어 지난해 5월 선거에선 68%의 득표율로 재선됐다. 하지만 최악의 물가상승률 등 경제 파탄의 책임과 부정선거 논란 등으로 퇴진 압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금은 심지어 누가 대통령인지 모르는 상황이다.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자신이 국가 지도자임을 자처하고 나섰다. 5일 임기 1년의 국회의장에 선출된 과이도는 마두로가 임기를 시작한 이틀째인 11일 스스로 임시 대통령을 선언했다. 

이에 세계도 친마두로와 친과이도로 나뉘어 두 쪽으로 갈라섰다. 과이도가 지난 23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수만 명의 시위대를 이끌며 마두로 퇴진과 재선거를 요구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즉각 “과이도 의장을 베네수엘라의 합법적인 대통령으로 공식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대선을 부정선거로 규정하고 마두로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유럽연합(EU)과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우파 정부도 일제히 과이도를 지지하고 나섰다. 이에 맞서 베네수엘라의 전통 우방국인 러시아와 중국, 중남미 좌파 국가인 쿠바·볼리비아 등도 가만있지 않았다. 이번 사태의 배후로 미국을 지목하며 마두로에 대한 연대감을 표했다. 마치 미국과 서방의 친미국가들, 중국과 러시아 등 전통적인 반미국가들이 마치 베네수엘라에서 대리전을 펼치는 모양새다.

◆ 유독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트럼프

미국과 국제사회는 유독 마두로에 강경하다. 미국의 ‘민주주의의 수호자’이며, ‘세계의 경찰’을 자처해 온 것이 하루이틀은 아니지만, 전통적인 미국의 역할을 부정해 온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사태에 유독 시시각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다.

심지어 작년 베네수엘라에 ‘무력 개입’을 암시하는 듯한 태도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트럼프는 왜 이리 베네수엘라에 집착할까? 물론 베네수엘라의 경제문제는 심각하다. 차베스 전 대통령이 반미 정책으로 일관해온 데다가, 내수경제가 파탄나며 그간 투자된 미국의 자산과 투자액이 일제히 증발하거나 제3국으로 도피하기도 했다.

IMF는 올해 베네수엘라의 경제성장률이 -5%를 기록할 것으로 봤다. 물가상승률은 1000만%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있다. 2016년과 2017년 단 2년 사이에 베네수엘라 국민의 평균체중은 10㎏ 줄었고, 전체 인구의 10%인 300만 명의 국민이 먹고살기 위해 해외로 탈출했다. 여러모로 북한과 비슷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 (사진=BBC뉴스)

한 국제문제 전문가는 이에 대해 “미국 역시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자국의 이익이 되는 사안에만 개입해왔다”며, “과이도를 집권시키면 산업구조 개편을 자국에 유리하게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 분석했다. 과이도는 국제사회와 여론을 움직여 자신에게 유리한 ‘판’을 깔아준 미국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고, 좌파정권의 가장 큰 패착이라고 여겨져 온 주요산업의 민영화를 이끌어 낼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가장 큰 수혜자는 미국 및 서방국가의 투자기업들이다. 이미 전임 차베스 대통령이 미국과의 단교를 불사하며 국내 석유회사에서 미국·유럽 투자자들을 몰아내고 국유화한 전력이 있다.

실제로 마두로는 차베스의 후계자이며, 차베스는 세계 ‘반미’ 전선의 선봉장이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의 페데이라 교수는 “미국으로서는 대통령이 누가 되었든 간에, 베네수엘라의 좌파 정권은 어지간히 눈엣가시였을 것”이라며, “중남미에 주기적으로 부상하는 좌파 정권의 기세를 꺾어놓기 위해서, 또는 좌파 정권의 추가적인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미국은 마두로의 실각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 밝혔다.

심지어 마두로 대통령은 최근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친해지려는 노력도 아끼질 않았다. 지난해 9월 재선에 성공한 뒤 곧바로 중국을 방문하며 유대를 과시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연일 베네수엘라 정부에 맹공을 퍼붓는 근거가 될 수 있다.

◆ 중국, 러시아는 마두로 수호에 나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등 여러 중남미 국가들, 그리고 캐나다와 프랑스 등 서방 국가들 역시 과이도 의장을 베네수엘라의 지도자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국가들이 과이도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중남미의 대표적인 좌파 국가들인 쿠바와 볼리비아를 비롯해 중국, 러시아 역시 마두로 정부를 옹호하며 미국이 내정간섭을 한다며 비판하는 상황이다.

크렘린궁은 24일 베네수엘라가 외부세력에 의해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의 합법적인 권력인 마두로 정권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표했다고 전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미국이 또다시 다른 나라 국민의 운명을 결정하려고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마두로 정권의 이전 정부였던 우고 차베스 대통령 시절부터 베네수엘라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어왔다. 현재 러시아 국영 석유 기업이 베네수엘라 유전 개발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러시아 자동차 기업이 베네수엘라 현지 공장에서 버스를 조립, 생산하는 등 러시아는 중국에 이어 베네수엘라의 두 번째 경제 협력국으로 알려져 있다.

양국은 군사 분야에서도 긴밀하다. 러시아 군용기들이 베네수엘라 공군기들과 연합 훈련을 한 적도 있다. 러시아 전략폭격기와 장거리 수송기들이 베네수엘라에 기착하기도 했다. 러시아가 베네수엘라를 미국에 맞서는 남미의 거점으로 삼으려 한다는 의혹도 있다. 28일에는 푸틴이 용병 부대를 비밀리에 베네수엘라로 급파했다는 의혹이 보도되기도 했다.

작년 8월 마두로와 면담을 갖던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특히 중국의 경우는 베네수엘라의 최대 채권국이다. 25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중국이 차관 및 신용라인 형태로 베네수엘라에 제공한 자금은 55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미 자금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자 중국은 만기를 연장하는 한편 베네수엘라로부터 원유를 저가에 공급받기로 한 바 있다. 하지만 2014년 이후 유가 폭락으로 인해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그럼에도 중국과 러시아가 베네수엘라의 정국 혼란에 촉각을 세우는 것은 과이도 야당 지도자가 해외 기업 및 정부에 던진 경고 때문이다. 마두로 대통령의 지휘 하에 체결된 차관 조약은 법적 효력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인터아메리칸 다이어로그의 마가렛 마이어 이사 역시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수백억 달러의 손실 위기에 처한 중국이 베네수엘라의 정국 안정을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려는 움직임”이라며 “양국의 자금 거래는 과거 30년에 걸쳐 복잡하게 얽힌 상태”라고 말했다.  

◆ 한국의 입장은?

대한민국은 해당 사안에 대해 29일 현재까지 공식적인 입장이 없다. 관심사안 여부는 청와대를 통해 나온 공식 입장이 없어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성향이 반미적이냐 아니냐를 떠나 단지 우리와 가까운 이해당사국들이 아닌 국가들 간의 대외관계에 대해서는 조용한 외교를 추구하려는 성향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이미 리비아 내전에서 보듯 적대적이라 할 수 있어도 관계가 깊지 않은 나라에 대해선 사안이 종결될 때까지 침묵하는 쪽으로 외교 방향이 정립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 역시 이 사안에 대해 어느 쪽인지 입장을 정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미국과 유럽 등 제1세계 국가 노선을 타는 한 비공식적인 외교 채널로 압박이 들어올 가능성은 높다. 향간에서는 조만간 “과이도 과도정부를 지지한다”는 성명이 금주 내로 나올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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