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과의 전쟁이 국민들에게 높은 평가
-민족주의 어필, 인플레이션 등 우선순위 설정에 뛰어나
-필리핀 거시경제도 덩달아 상승곡선에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사진=KBS뉴스)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지지율이 2019년을 넘어선 시점에서도 거침없이 상승하고 있다. 필리핀의 로컬 뉴스는 연일 ‘신이 난 두테르테’ 라는 헤드라인으로 그의 리더십을 조명하기 바쁘다. 이 같은 분위기라면 올해 예정된 중간선거도 문제없이 휩쓸 수 있다는 식이다.

올해 5월 13일 예정된 선거는, 6년 임기제인 필리핀 대통령의 남은 절반 임기를 판가름할 민심의 장이다. 동시에 논란에 휩싸여 왔던 그의 리더십과 의회에서의 권력 분점을 결정할 사실상의 국민투표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걱정하는 시각도 많다. 필리핀 사정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올해 필리핀의 의회 정치를 놓고 “의회 민주주의 역사상 올해가 가장 큰 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두테르테의 ‘동맹’들이 이번 중간선거에서 상원을 장악한다면, 두테르테의 직권 남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해질 것이라는 우려다.

이는 대통령을 포함한 선출직 공무원의 임기를 없애고, 연방주의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의 개헌을 포함할 수 있다는 평가다. 특히 연방제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다바오 지역에서 시장을 맡고 있는 딸(사라)의 영향력이 확대된다. 대통령 임기 이후에도 2세를 통해 정치적 배경이 되는 지역에서는 영향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의혹은 집권 당시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최근 두테르테의 지지율 상승은 단기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지지율 상승의 배경에는 그의 선거 캠페인의 일환이기도 했던 ‘마약과의 전쟁’ 덕분이라는 평가다. 2016년 중반부터 필리핀과 두테르테는 ‘마약’ 유통 혐의자 수천 명을 살해해 왔다.

그의 단호한 정책은 최근 헤이그에 위치한 국제형사제판소의 경고를 받은 적이 있었고, 이와 더불어 국제사회로부터의 지탄을 받아왔다. 하지만 반대로 필리핀에서는 해를 거듭할수록 지역 사회로부터 ‘범죄에 대한 단호한 대처’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최근 지지율은 대도시를 넘어 저 멀리 시골 선거구까지 확대되고 있다. 

◆ 이례적으로 높은 두테르테의 지지율

필리핀의 여론조사기관 SWS의 작년 12월 조사에 따르면 두테르테는 최근 74%의 국정 만족도를 기록했는데, 매우 잘하고 있다는 평가가 60%를 넘어가고 있다. 이는 해당 임기 시점에서 필리핀 헌정사상 최고 지지율이다. 지난 분기 대비로는 6% 상승한 수치다. 이러한 지지율은 한 분기가 끝나가는 현재까지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두테르테 입장에서는 그의 지지율이 전 지역과 계층에 걸쳐 고르게 상승 중이라는 점이 호재다. 수도 마닐라에서는 그의 지지율이 전년 동기 대비 무려 22%가 상승했는데, 상류층과 중산층에서는 21%가 상승했으며, 빈민층에서도 약 20%가 올랐다.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그룹은 대졸자 계층인데, 이들의 지지율은 65%을 넘겼으며 전 분기 대비 11% 상승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 역시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대통령 대변인인 살바도르 파넬은 “현 정부는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환영의 뜻을 표한다”며, “이 조사는 전 사회경제학적 계층에 걸쳐 우리 정부가 지지받고 있다는 지표다”라고 밝혔다. 파넬은 이어 “우리는 필리핀 국민들에게 감사하며, 현 정책을 더욱 일관되고 지속성있게 몰아붙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여론기관 Pulse Asia에서 실시한 다른 여론조사 역시 두테르테에 대한 일관적인 지지를 드러낸다. 이 조사 역시 전 분기 대비 두테르테의 지지율이 6%가량 상승했으며, 현재까지 무려 81%에 달하는 국민들이 두테르테에 대해 호의적이라고 밝혔다. 

체포된 필리핀의 마약사범. (사진=연합뉴스)

◆ 우선순위를 아는 두테르테

물론, 필리핀 대통령들은 역사적으로 연말에서 새해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보여왔다. 크리스마스와 새해 축제들이 전통적으로 정치적 갈등을 줄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해 두테르테의 가파른 상승에는 다른 요소들이 개입해왔다고 보아야 더욱 정확한 설명이 될 듯하다. ‘새해 효과’는 그의 지속적인 인기를 설명하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한 요소가 많다.

많은 사람들은 필리핀 국민의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하는 그의 정치 마케팅에 주목한다. 지난 달 필리핀 중동부 사마르섬의 발랑기가가 미국으로부터 117년 만에 교회 종 3개를 돌려받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돌아온 종들은 여러 나라가 구미 국가들한테 약탈당한 다른 유물들에 견주면 문화재적 가치는 별로 없지만, 필리핀은 꾸준히 이 종의 반환을 요구해왔다. 두테르테 대통령도 지난해 국정연설에서 이를 언급했다. 필리핀이 이 종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약탈 과정에서 겪은 고통 때문이다.

미국 식민지가 된 지 3년 만에 발생한 발랑기가 학살이 그것이다. 1901년 발랑기가의 필리핀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미군 48명을 사살했다. 이에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지시로 토벌에 나선 스미스 준장의 지시로 10살 이상 남자들이 무차별적으로 살해당했다. 어린애들도 총은 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 때의 학살로 수천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보다 설득력있는 설명은, 최근 온 나라에 불어닥친 인플레이션을 잡았다는 평가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불거졌던 인플레이션과 식료품 가격 상승은 특히 빈민층에 가장 큰 타격을 주었다. 17개월 연속 물가 상승이 이어졌고, 지난 10월에는 최근 10년동안 최대인 6.7%의 물가 상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11월, 12월을 거쳐 최근에는 물가 상승이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식료품 수입이 재개되고 있으며, 이는 생필품 가격을 진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이에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12월 5%대로 가라앉았다. 

◆ 필리핀 경제에 일어난 변화

최근 외신들 역시 이른바 ‘두테르테 효과’에 관심이 많다. 포브스는 지난달 30일 기사에서 두테르테가 중국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점을 언급했다. 최근 중국 ‘큰 손’들이 마닐라 등 필리핀의 주요 도시의 부동산을 사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자본들이 필리핀의 내수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대도시 거주자들의 친정부 성향이 강화되었다는 분석이다. 

또다른 분석은 거시 경제지표의 상승에 있다. 2017년 필리핀의 1인당 GDP는 2891달러를 기록했는데, 이는 최근 몇 년간 꾸준한 성장률을 뒷받침한다. 특히 1960-2017년 기간 필리핀 국민의 1인당 소득이 1627달러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더욱 그렇다.구매력지수로 환산할 시 필리핀의 성장세는 더욱 무섭다. 2017년 7599달러를 기록한 필리핀의 소비자구매력지수(PPP)는 1990-2017년 기간 4969달러를 기록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뚜렷한 성장세다.

IMF 역시 필리핀의 작년 경제성장률을 6.8%, 올해 경제성장률을 6.9%로 전망했다. (자료=IMF) 

총고정자본형성의 측면에서도 상승폭이 두드러진다. 총고정자본형성은 산업, 정부서비스생산자 및 민간비영리서비스생산자가 고정자산을 추가하는 데 따른 지출액을 의미한다. 이 지표는 미래 국가경제의 전망을 살펴보는 데 유용한 통계로, 필리핀은 작년 2분기 해당 항목에서 약 6954억 페소(약 14조 원)을 기록했다. 2015년 4500억 페소(약 9조 원)에 비해 월등하다.

이는 내수경제에 대한 투자로 이어졌고, 2년 전 약 6%을 기록했던 실업률을 작년 5%로 낮추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두테르테는 적어도 인권 및 사회정의의 측면에서 근래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경제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이는 특히 대도시의 모든 연령, 계층의 사람들의 지지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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