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고령화에 NEAT족 나날이 증가
-부자 북부-가난한 남부 양극화 심화
-성장 끝나가는 노령 국가...한국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루이지 디 마이오 이탈리아 부총리 역시 이탈리아의 경제 위기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이탈리아의 경제가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유럽연합(EU) 국가 중에서 이탈리아는 그리스와 함께 유이하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의 국내총생산(GDP)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GDP는 위기 직전에 비해 5%나 낮은 실정이다. 1인당 GDP는 더욱 심각하다. 2000년에 비해서도 낮다. 현재 이탈리아의 1인당 GDP는 1만500유로(약 1400만 원)를 밑돌고 있는데, 이는 1999~2000년의 수치와 동일한 수준이다. 독일이나 프랑스는 물론, EU국가 중 꼴찌 국가에 가까운 스페인에 비해서도 경제적 활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오히려, 퇴보하는 국가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 가족기업의 낮은 노동생산성

이탈리아 경제의 약화는 노동생산성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탈리아의 노동생산성 증감추이를 보면 비교 국가에 비해 확연한 격차를 드러낸다. 이탈리아의 노동생산성은 프랑스, 독일과 비교할 수준이 못 되며, 2000년 이후 계속 하락하고 있다. 1인당 GDP의 증감 추이와 어느 정도 수렴하는 모습이다.

이탈리아의 노동생산성이 낮은 데에는 이탈리아 경제의 주축이라고 볼 수 있는 가족 소유 중소기업의 부진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들은 현재 연구개발(R&D) 투자나 인력고도화 측면에서 글로벌 기업들에 뒤처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종업원 250명 이상 대기업의 생산성은 다른 국가에 비해 나쁘지 않지만, 1~9인 규모 소기업의 1인당 부가가치는 스페인, 포르투갈과 함께 유럽에서 최하위를 밑돌고 있다.

국제특허출원을 기준으로 한 혁신 클러스터의 순위를 측정한 자료(2011~2015년 기준)에서 이탈리아는 상위 100곳 중 밀라노가 58위로 간신히 한 곳을 올릴 수 있었다. 100개 클러스터 중 미국은 32곳, 독일 12곳, 일본 8곳, 중국 7곳, 프랑스 5곳, 그리고 캐나다와 한국이 4곳을 차지했다.

이탈리아의 성장/후퇴 비율에 따른 상대 비교. (사진=ITIF)

이탈리아 기업의 문제는 미국 기업과의 비교에서도 일부 드러난다. 미국 기업에 비해 이탈리아의 기업들은 성장이 정체된 비율이 높고, 빠르게 성장하거나 또는 몰락하는 비율도 낮다는 연구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위의 그래프에서도 드러나듯이, 이탈리아의 성장/후퇴 비율에 따른 상대 비교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1~1%의 성장을 보이는(정체 구간) 구간에서 미국에 비해 훨씬 많은 기업이 존재한다. X축 양 끝의 빠르게 성장하거나 몰락하는 기업의 비중도 매우 작다.

◆ 방치된 젊은이들

이탈리아의 또 다른 고질적인 문제는 심각한 청년 실업과 학력 저하다. OECD 평균 대비 이탈리아 15세 학생들의 문해력, 과학, 수학 실력은 미국과 함께 낮은 수준으로 드러났는데, 그나마 미국은 전세계의 인재들을 불러 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이탈리아는 부정적인 면이 더 커 보인다.

OECD의 다른 자료에 의하면, 이탈리아의 학사 학위 취득 비율은 OECD에서 꼴찌 수준(27%)으로, 70%를 상회하며 1위에 오른 한국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점차 고학력을 선호하는 산업 지형의 변화와 맞물려 더 큰 문제로 다가온다. 대학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이탈리아 청소년들이 독일이나 스위스의 학생들처럼 직업 교육을 받는 것도 아니다.

이탈리아 청소년들은 OECD에서 학업 중도 포기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이자, 15~34세 젊은이 중 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닌 ‘NEAT’ 족 비율이 그리스보다 높다. 이 수치는 25%에 육박하며 OECD 국가 중 1위의 불명예를 차지했다. 2017년에는 이탈리아 청년들이 부모세대에서 재정적 독립을 달성하는 평균 연령이 2020년 38세에서 2030년 48세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 고질적인 지역 격차

이탈리아의 고질적인 문제 중에는 현격한 지역 격차도 빼놓을 수 없다. 이탈리아의 남북 간 소득차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부유한 북부에 비해 남부의 1인당 GDP는 이제 절반 정도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탈리아의 높은 지방분권이 오히려 사익추구에 골몰하는 이탈리아 정치인들의 강력한 보호막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이탈리아의 예산적 분관화 정도(Fiscal Decentralization)는 선진국 중에서도 매우 높은 편인데, 단편인 예로 이탈리아 지방정부는 전체 조달구매의 3/4를 차지하고 있다. 스페인 다음 순위이자 영국의 2배에 이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탈리아 지방정부들은 각각의 고유한 에너지 정책을 갖고 있을 정도다. 결국 중복 투자와 예산 낭비 또는 극심한 관료주의는 이탈리아 분권화 경제를 상징하는 말과도 같아졌다. 실각한 지난 렌지 정부는 지방분권을 약화시킴으로 중앙정부 차원의 SOC 인프라 사업을 벌여나가려고 결심했으나, 결국 좌초하고 말았다.

지방분권의 실패는 공공인프라 문제로 이어진다. 스웨덴 등 다른 유럽 국가의 광케이블 비중이 50%를 넘는 것에 비해, 이탈리아는 독일과 함께 5% 미만에 그치고 있다. 작년 8월에는 이탈리아 북부 제노바에서 51년된 랜드마크 다리가 갑자기 끊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43명이나 사망하는 막대한 인명피해로 이어졌고, 많은 사람들은 지자체의 유지보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지난 8월 있었던 제노바 다리 붕괴 사고. (사진=연합뉴스)

인프라도 좋지 못하고, 세제도 매우 복잡한데 인적 자원의 우수성도 높지 못하다 보니 외국인들의 투자도 낮은 편이다. 경제 규모가 비슷하거나 약간 낮은 스페인에 비해서 외국인 직접투자의 비율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탈리아 시민들의 공공부문에 대한 신뢰도도 매우 낮은 편이다. 특히 법치주의(Rule of Law)에 대한 믿음은 50%를 하회하며, 그리스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 이탈리아로부터 배우는 교훈

적극적인 대외 개방과 투자 유치,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지극히 당연한 선택지를 정부와 정치권은 애써 외면했다. 경제 불안으로 팽배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인위적 내수 진작과 복지지출 확대에 예산을 집중 투입했기 때문이다. 

과도한 국가부채는 국가 신용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심지어 자국 기업조차 정부에 등을 돌렸다. 이탈리아 최대 제조기업인 피아트는 2016년 네덜란드로 본사를 이전했다. 청년실업률(15~24세)도 지난해 34.7%까지 치솟았다. 우리나라는 과연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까. 잠재성장률이 전 세계 선진국들 중 최하위권을 기록하며 ‘노령 국가’에 접어든 선진국 선배가 어느덧 그들을 거의 따라잡은 ‘중년 국가’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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