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 3월부터 중국산 품목에 고율 관세 부과...중국도 맞불
-미국, 중국산 수입 사실상 전 품목에 '관세폭격'...중국은 한계 다다랐다는 분석
-미국, 중국의 기술 굴기에 잇따른 견제구...극적 협상 타결됐으나 "일시적" 전망 다수

미중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치달으면서 반도체 및 전자부품 업계가 향후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중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치달으면서 반도체 및 전자부품 업계가 향후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지난 3월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전쟁이 미국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되면서 2018년 세계경제 지형을 강타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가 보호무역주의로 이름을 바꿀 때부터 전쟁은 예고되어 있었다. 4월만 하더라도 학계와 언론에서는 '무역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어느덧 그 표현은 '무역전쟁'으로 바뀌었다. 한 해 동안 미·중 간의 묵직한 공방전이 이어진 결과 타협점을 찾은 듯 보이나 휴전 상태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을 개시하면서 제기한 명분은 연간 최소 2000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행위와 연간 5000억 달러에 이르는 대중국 무역적자 해소다. 미국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협박도 잊지 않았다. 이에 3월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무역확장법 제 232조)과 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미·중무역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중국은 즉시 30억 달러 규모의 수입품에 보복관세를 예고하며 대응했다. 양국은 5월부터 6월 초까지 세 차례에 걸친 무역협상에 나섰다. 하지만 모든 협상은 결렬됐다. 6월 15일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 부과를 강행하자, 중국 역시 5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수입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다시 미국은 34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1300개 품목 총 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 역시 6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수입품에 5~25%의 관세를, 동일한 규모의 미국산 수입품에 보복관세를 추가하며 팽팽히 맞섰다. 중국은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이 몰려 있는 중서부 농장지대(Farm Belt)의 대두를 겨냥했다. 중국은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대두의 최대수입국(연간 3200톤)이다. 이밖에도 중국은 미국산 돈육, 과일, 자동차, 항공기 등도 보복관세 목록에 포함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7월 중국의 보복관세를 '악랄한 시도'에 비유하며 비난했다. (사진=도널드 트럼프 트위터)

8월 22일,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양측은 네 번째 무역협상에 임했다. 그러나 양보 없는 설전만 주고받은 끝에 협상은 결렬됐다. 미국은 9월 24일부터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하는 한편, 2019년 1월 1일부로 25%로 상향시키겠다고 위협했다.또한 미국은 중국이 굽히지 않을 경우, 2670억 달러 규모에 이르는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중국의 대미 수출액 규모가 5056억 달러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의미다.

◆ 수세에 몰리고 있는 중국

지난 10월, 일본과 북한, 남한을 거쳐 중국을 찾은 폼페이오 장관은 왕이 외교부장과 가시돋힌 설전을 벌였다. 그날 폼페이오 장관이 중국에 머문 시간은 고작 3시간에 불과했다. 중국 중산(鐘山) 상무부 부장 역시 “미국이 계속 중국제품의 관세를 인상하면 중국이 물러날 거라는 관측이 있지만, 이런 관측은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몰라서 나오는 것이다. 원하지는 않지만 무역전쟁이 발발한다면 철저히 대응할 것이다"며, "미국은 중국의 의지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맞받았다.

자신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무역전쟁에 대응할 만한 '총알'도 충분치 않았고, 잘 견뎌왔던 산업에서부터 부작용이 하나 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장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은 부문은 역시 수출제조업이었다. 9월 중국 제조업지수 중 수출과 생산 지표가 나란히 하락했다. 상하지지수가 연초 대비 15%가량 하락하는 등 증시도 무역전쟁의 여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달러당 위안화 환율도 22개월 내 최저치인 6.93을 기록했으며(10월 8일 기준), 외환보유액 역시 3조870억 달러(10월 8일 기준)로 최근 1년 내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국 정부는 부랴부랴 대응책을 내놓았다. 먼저 지난 1월과 4월, 7월에 이어 시중은행들이 고객으로부터 받은 예금 중 중앙은행에 의무적으로 예치하는 자금의 비율인 지급준비율(RRR, reserve requirement ratio)을 15.5%에서 14.5%로 1%p 인하했다. 다음으로 미국의 고율 관세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1585개 수출 품목에 대해 부가가치세(증치세) 환급율을 인상하고 환급 과정도 간소화했다. 감세와 경기부양책도 추진했고, 지방정부의 인프라 지출 확대를 비롯한 재정지출 확대 정책도 시행했으며, 개인소득세도 인하했다. 

◆ 중국에게 남아있는 방어책은?

경제전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무기는 환율이다. 미국은 중국이 추가 관세 조치에 대응해 환율을 조작함으로써 자국 수출업체들을 지원하고 고율의 관세로 인한 피해를 상쇄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미국은 4월 환율보고서에서 중국을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다.

관찰대상국을 넘어 다음 단계인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경우, 중국경제는 상당한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중국기업의 미국 조달시장 진입 자체가 금지되고, 중국에 투자하는 미국기업에 대한 금융지원도 중단되며, 국제통화기금(IMF)의 거센 환율 압박에도 노출된다. 그러나 환율은 중국이 결코 놓칠 수 없는 카드다. 이 지점에서 덜 위험한 ‘역외 위안화시장’이 등장한다. 이는 중국 정부가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거나 자본을 통제하는 대신 홍콩 역외 위안화시장에 개입해 금리 인상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위안화 하락을 방어하는 방법이다.

중국은 이미 역외 위안화 금리 인상을 통해 투기꾼들의 공매도 자금조달 비용을 높임으로써 위안화 절하를 방어하는 데 성공한 경험이 있다. 미국의 언론 및 전문가들은 중국이 이미 이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10월 초 홍콩의 위안화 은행 간 대출 금리인 하이보(Hibor) 금리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아직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이 카드는 무역전쟁 내내 중국의 숨통을 조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두 번째로 경계하는 것은 중국이 보유한 미 국채 1조1710억 달러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NYT)는 “그동안 중국이 미 국채 매각을 보복카드로 활용할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미국의 압박이 계속되면 상황이 달라질 여지가 있다”며 중국 정부가 미 국채를 매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만약 중국이 미 국채를 한꺼번에 시장에 내놓으면, 국채 금리 인상에 이어 가격이 하락하고 미국 재무부는 상당한 상환 부담에 시달리게 된다.

물론 실현되기는 쉽지 않다. 미국이 기축통화국만 누릴 수 있는 ‘달러 발행을 통한 유동성 공급’, 즉 ‘양적완화’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미 국채 매각이 현실화될 시 중국의 자산 가치 하락 및 위안화 가치 하락으로 연결되면서 대규모 자본 유출과 증시 폭락으로 이어질 수 있도 있다.

'중국제조 2025'가 내세운 주요 육성 산업 국산화 비율 목표. (사진=중국유럽연합상회)

◆ 무역전쟁의 본질은 세계 기술패권

미·중간 무역전쟁의 본질은 ‘관세 부과에 따른 무역수지 개선’이나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아니라, ‘향후 세계 기술패권을 누가 쥐느냐’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선전포고는 이미 중국이 했다. 지난 2015년, 중국 국무원이 제조업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제시한 ‘3단계 거시 산업고도화 전략’인 ‘중국제조(中國製造) 2025’가 그것이다. 이 전략의 목표는 2025년까지 미국, 독일, 일본, 영국, 프랑스, 한국과 같은 글로벌 제조 강국에 진입한 후, 2035년까지 글로벌 제조 강국 중 중간 수준으로 올라서고, 2045년 세계 1등 제조국이 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맞서 올해 1월 대북・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중국 2위 통신장비업체인 ZTE에 대해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금지하는 제재를 가했다. 벌금 14억 달러와 경영진 교체 등의 조건 하에 제재를 철회했으나, 3월에는 중국 자본이 투입된 브로드컴사의 미국 퀄컴사 인수를 무산시켰다. 중국 최대 반도체 업체인 푸진진화반도체와 미국 기업들 간의 거래도 끊어버렸다. 또한 중국제조 2025에 명시된 10대 전략산업을 지난 4월 발표한 ‘대중국 500억 달러 규모 고율 관세’ 목록에 고스란히 포함시켰다.

지난 11일 캐나다 측에 체포되었던 멍완저우 화웨이 CFO. 현재는 약 83억 원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상태다. (사진=SBS뉴스)
지난 11일 캐나다 측에 체포되었던 멍완저우 화웨이 CFO. 현재는 약 83억 원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상태다. (사진=SBS뉴스)

최근 세계 선두 통신장비업체인 중국 화웨이(華爲, Huawei)의 멍완지우(孟晩舟)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의 구금・보석 사태로 전 세계 통신사들이 ‘화웨이 퇴출’에 나선 것도 기술패권전쟁과 무관치 않다. 미국 CNN은 최근 보도를 통해, 미국(스프린트)뿐 아니라 프랑스(오랑주), 독일(도이체텔레콤), 뉴질랜드, 호주 등 유럽과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까지 화웨이의 5G 모바일 네트워크 장비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화웨이 퇴출에 동참하고 나섰다고 밝혔다. 화웨이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화웨이 CFO의 체포 즈음에서 제조업 2025의 연기, 혹은 수정이라는 소식이 들려나오기 시작했다. 현재는 기정사실화 된 분위기다. 미국의 판정승으로 마무리되어가는 분위기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폐막일이었던 이달 1일, 팔라시오 두아우 하야트 호텔에서 2시간 30여 분 동안 업무만찬을 갖고 “오는 1월 1일 이후 추가 관세는 없다”는 데 합의했다. 물론, 양 정상의 합의가 무역전쟁의 해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추가 관세 부과 시한이 내년 봄까지 유예됐을 뿐이다. 전문가들 역시 중국이 여기에서 물러날 것으로 보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반도체 측으로 '확전'될 가능성까지 내다보고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 역시 최근 이러한 내용을 보도했다.

하필이면 왜 반도체일까? 반도체 전선의 끝에는 인공지능(AI)부터 인터넷 장비에 이르는 세계 모든 기술의 패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기술 굴기'의 끈을 아직 놓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무역전쟁이 반도체에까지 확전된다면 올해 반도체로 재미를 본 한국도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렇다면 과연 그 패권은 누가 잡을 것인가? 2019년은 30년 산업의 명운이 달린 중국에게도, 승자의 지위를 공고화하려는 미국에게도, 그리고 강대국들 사이에서 기회를 확보해야하는 한국에게도 무척 중요한 해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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