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치달으면서 반도체 및 전자부품 업계가 향후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시진핑과 트럼프.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G20과 APEC이 마무리된지 2주가 좀 지났다. 현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분석해보면, 미국이 중국과의 외교전에서 승리했다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 

APEC에선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중국이 파푸아기니 외무장관실에 난입하려 했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18일 “APEC 성명이 불발된 것은 공동성명 초안에 포함된 일부 문장에 중국이 강력히 반발했기 때문”이라며 “중국 외교 당국자들은 이를 반대하기 위해 파푸아뉴기니 외무장관 사무실에 난입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측의 거센 불만을 불러온 문장은 ‘우리는 모든 불공정한 무역관행 등을 포함해 보호무역주의와 투쟁하기로 합의했다’라는 부분이다. 중국을 제외한 20개 국가들이 이를 삽입하기를 원했지만 중국은 '불공정한 무역관행’이 중국을 가리키는 말이라며 삭제하기를 요구했다는 것.

반면,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이 끝난 이후 블룸버그는 협상의 달인이란 표현을 써가며 트럼프를 칭찬했을 정도로 미국 측의 분위기는 좋았다. 더욱이 선진국들만의 모임이라는 G20에서 중국이 주장했던 '보호무역주의 배격'이 공동성명에서 제외됐다. 중국의 개도국의 지위를 박탈할 수도 있는 WTO 개혁지지마저 채택되었다. 이는 미중 여론전에 중국이 철저히 패했다고 봐도 무방한 결과다.

국제 여론전에서 중국은 스스로를 자유무역의 수호자임을 자처했다. 미국의 보호무역에 반대하며 반미전선을 만들고자 한 의도일 것이다. 문제는 거기에 참전하는 선진국이 없는 상태라는 점이다. 실질적으론 중국에게 표를 던지는 국가는 나타나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다. 당장 우리만 해도 중국이 노골적으로 보호무역의 장막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세계 2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국가가 여전히 개도국의 지위를 통해 보호무역을 유지하려고 하는 점은 누구에게도 공감을 사기 어렵다. 

물론 현재로선 딱히 뚜렷한 결과물은 없다. 하지만 패권전쟁에서 국제여론전은 매우 중요하기 마련이다. 한 전문가는 "지금 다른 국가들의 행보는 흔히 말하는 줄서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국이 판을 못 깔았다는건 치명적이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런 상태에서 상황이 악화되어 과거 미소냉전때처럼 미중 냉전시대에 돌입하면 중국은 무조건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에 중국은 G20 회의서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은 지식재산권이나 비관세장벽문제까지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물론 90일의 유예 기간동안 합의라는 조건이 달려있지만 분명 전세가 불리하다는 신호다. 이 기간내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합의를 못 끌어내면 25%의 관세까지 두드려 맞는다. 이렇게 될 경우 무역전쟁은 장기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그 동안 간을 보고 있던 중국내 자본과 기업들은 비용이 낮은 곳으로 생산기지 이전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기업과 외화유출에 대한 압박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물론 중국이 망할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크나큰 타격을 입을 것은 명백하다. 이는 꼭꼭 억눌러놓은 내부불만의 촉발제가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한번 발화된 불꽃은 어디까지 전이될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뿌리깊은 지방정부 리스크까지 확대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대로 무역전쟁은 중국의 패배로 마무리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점을 쉽게 예측할수는 없다. 애초에 이번 미중 무역전쟁은 쉽게 타결되기가 어려운 타이밍에 불거졌다. 말하자면, 죄수의 딜레마 상황 속에 빠졌다고 볼 수도 있겠다.

중국의 이해관계는 중화사상에 입각해 미국을 대신하는 패권국가가 되는 것이다. 미국의 이해관계는 도전자의 상승세를 꺾고, 패권국가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다. 물론 상충하는 이해관계 속에서 양 측에게 최선의 결과는 지금 당장 화해하고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는 것이다. 무역전쟁이 미국 제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음도 명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금의 타이밍은 양 측의 화해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중국의 경우 지금 미국으로부터 유리한 결과를 얻어내지 못할 시, 앞으로는 이와 같은 기회가 없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중국도 이미 노령화국가라서 그들에게 허락된 성장모멘텀의 시간은 많지 않다. 중국으로선 일단 시간 벌기엔 성공했지만 고민이 많을 터이다. 미국 역시 지금이 중국을 누를 적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물러설 가능성은 매우 적다. 다만 우리나라로선 무역전쟁으로 인한 여파가 제한적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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