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자동차를 선호하지 않는 시대'...전기차·자율주행 등 신기술 통해서만 회생할 수 있어
-완성차 업체 지고, 유력 부품 제공할 수 있는 부품 산업은 호황
-유례없는 업황 부진 속 국내 부품업계도 반전 계기 마련해야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사진=현대차)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1920년대 미국에서 자동차 보급이 본격화되자 도시인들은 이전까지 누리지 못했던 이동의 자유와 풍요를 즐길 수 있었다. 물론, 당시의 농부들 중 상당수는 직전까지의 대표적 운송 수단이었던 말을 위한 마초 재배에 의존했다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 후 1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면서, 자동차 산업은 다시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자동차 산업의 변화는 자율 주행 자동차의 보급과 공유 서비스화가 견인하는 양상이다. 당장 자율주행이나 공유 서비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전기자동차의 보급은 점차로 확대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지난해 7월 기사를 통해 유럽에서 2025년까지 신차의 30%가 전기자동차가 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역시 상대적으로 보급은 더디지만, 전기자동차는 신차의 5%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테슬라 등으로 대표되는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 모두 미국 기업들이 앞서고 있는 형국같지만, 전통적인 강자인 독일 역시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기술력은 물론 양산체제에서 큰 장점을 보유한 독일의 대표 자동차 브랜드 BMW와 벤츠는 관련 테크 기업의 인수에 열심이다. 나아가, 승용차에서 트럭까지 다양한 자사 모델에 자율주행 기술을 확대, 적용하고 있다. 

◆ 자동차 산업 지형 변화가 낳은 명과 암

자동차 산업의 지형과 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당장 혁신이 진행되고 있는 파생 분야들도 있다. 자율주행과 커넥티드 카의 등장은 교통정체와 긴 통근시간에 시달리는 대도시 통근자들의 괴로움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지독한 교통정체로 유명한 LA의 경우, 교통정체로 인한 손실액이 연간 233억 달러(약 25조 원)에 이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커넥티드 카와 중앙집중 시스템의 등장은 새로운 도로를 증설하지 않아도 기존 도로의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낳고 있다. 이로 인해 교통정체가 줄어드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교통정체를 완벽히 사라지게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운전자는 자율주행을 통해 운전의 부담에서 벗어나 자동차 내부를 움직이는 사무공간이나 거실 등 휴식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올해 초 기사를 통해 "자동차 인테리어의 변화와 관련 산업의 성장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자율주행차 구상도. (사진=삼성전자)
자율주행차 구상도. (사진=삼성전자)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이다. 미국 자동차 산업은 2015년 이후 고용 증가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고용 시장 개선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최근들어 GM과 Ford를 비롯한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일자리 감축에 적극 나서고 있는 형편이다. 그나마 작년 8월 자동차 산업 고용 일자리가 1만4000개가 증가하며 형편은 나아졌지만, 자동차 산업은 이미 최고점을 지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자동차 산업의 고용 성장은 2016년과 2017년 1분기 사이 고용이 뚜렷이 둔화되는 추세다. 2017년 다시 반등한 다른 제조업종과 대비를 이루고 있다. 2017년 3월까지 15개월 동안 100개 매트로폴리탄 지역의 제조업 성장여부를 관찰하면 29개 지역에서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다. 자동차 산업이 마이너스 성장을 보인 지역은 45개에 이른다. 작년 8월 고용이 호전되기는 하였지만, 전체 매출은 여전히 정체를 보이고 있다. 6월까지의 자동차 매출이 11.4% 감소했으며, 8월 매출도 4.2%가 줄었다.

완성차 메이커들의 매출 하락은 더욱 심각하다. 2017년 상반기동안 크라이슬러는 24%, 포드는 20.2%, GM은 18.6%나 매출이 줄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닛산은 2017-18년도 순이익이 19.4%나 하락했다. 도요타도 18% 줄었다. 일본 자동차 업계도 중국의 추격과 자동차 선호의 변화 속에 영업마진율이 대부분 하락하고 있다. 중국 완성차 업계의 카피 전략에 경쟁력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 자동차를 선호하지 않는 현상...완성차 업계의 위기?

파이낸셜 타임즈는 작년 8월 기사를 통해 미국 자동차 산업의 문제는 '젊은이들의 운전 기피 현상'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2014년 미국의 19세 이하 운전면허 발급 통계를 보면 2014년은 1965년 이래 가장 적은 수치라는 것이다. 연령대별 운전면허 보유 비중 추이를 보아도 16~24세의 연령대 비중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추세다. 이에 따라 미국의 전체 자동차 면허 소지자의 수는 정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1인당 자동차 주행거리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락했다가 다시 오르고는 있지만, 그 정도는 미미한 실정이다. 젊은이들의 자동차 주행 기피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만, 미국의 자동차 소유자의 평균 연령은 2000년에서 2015년 사이 7년이나 늘었다. 자동차 업계의 한 전문가는 이에 대해 "미국 자동차 산업의 어려움은 한때 미국의 블루칼라 직업이었던 자동차 빅3사 노동자들의 임금 단가가 급격히 하락한 것에서 예고된 것"이라며, "유럽과 일본 사람들은 미국사람들 이상으로 운전하기를 꺼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니케이신문의 지난해 6월 기사에 따르면, 일본의 1가구 당 자동차 보유 대수는 1.06대로, 정점을 찍었던 2006년 1.12대는 물론 1999년 이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도쿄 가구의 자동차 보유 대수는 불과 0.45대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일본도 젊은이들의 자동차 외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며, "20~24세 일본남성 중 운전면허 취득 비율은 2001년 87.8%에서 2015년에는 79%로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 자동차 부품 산업, '스마트카' 시대 맞아 가치 높아져...전망도 밝아

장기적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완성차 업계와는 달리, 부품업계는 최근들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자동차가 점점 '바퀴 달린 스마트폰'으로 진화하다 보니, '스마트 카'를 위한 전문 부품들을 공급하는 회사들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스마트폰의 메모리 칩이나 배터리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처럼, 자동차의 핵심 부품의 부가가치도 커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자율주행 자동차, 커넥티드 카, 전기 자동차의 보급 확대는 관련 서비스 및 부품 산업의 전망을 밝게 하는 요소다. 파이낸셜타임즈의 올해 기사에 따르면, 1990년대 초만 해도 자동차 부품의 비중은 전체 자동차 구성의 40-50%에 그쳤지만, 현재는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비중은 점차 늘어날 전망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적지 않은 자동차 부품회사들은 자체 브랜드 없이 완성차 회사에 의존해왔고, 또 낮은 이윤으로 버텨왔다. 하지만 현재 부품회사들이 주식시장에서 받는 대접은 완성차 회사들을 능가한다. 주가수익률(PER)에서 자동차 부품회사들은 완성차 업계들과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 5년전만 해도 이들의 PER는 같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2017년 들어 완성차의 PER는 7.4배로 추락한 반면, 부품회사들의 PER는 13.4배로 차이가 두 배 가까이 벌어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 역시 "물론 완성차 업계에서 중국 변수를 빼놓을 수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역시 내연기관보다는 전기차 비중을 더 확대할 전망이라, 전통적 완성차 업계의 산업 재편에 대한 부담은 커질 수 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파이낸셜타임즈 역시 자율주행 관련 가장 많은 특허를 소유한 기업은 구글이나 완성차 업체가 아닌 부품회사라고 전했다. 이어 향후 자동차는 점점 여러 가지의 네트워크에 연결될 것이고, 안전 관련 소프트웨어 시장의 경우 향후 5년 간 3~4배나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프랑크 셰퍼스 로버트보쉬코리아 대표이사가 지난 6월 열린 2018년 연례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내 보쉬 사업 활동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로버트보쉬코리아)

◆ 한국 부품 산업은 연례없는 위기...전면적인 해결책 필요

이러한 세계적 추세에 따라, 최근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도 부품산업 지원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자동차 부품업체 등은 여전히 일감 부족과 금융 애로를 겪고 있다"면서 "이럴 때 기업이 힘을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정부로서 당연한 소임"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6월 현대ㆍ기아차의 1차 협력사인 리한의 워크아웃 신청을 시작으로 다이나맥, 금문산업, 이원솔루텍 등 굵직한 부품사들이 줄줄이 법정관리에 돌입했다. 한 부품사 관계자 역시 "IMF시절보다 더 심각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전후방 산업이 유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면서 "금융권에서는 만기가 도래한 대출 연장 불가 움직임이 뚜렷하고 노사 문제까지 겹쳤다"고 토로했다. 

문병기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자동차 부품 업계는 국내 자동차 생산 감소에 따라 수익성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향후 미국의 금리 인상, 자동차 고율 관세 부과 가능성 등으로 수출 부진까지 겹치면 부품 업체의 어려움은 몇 배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내년에는 자동차, 철강,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 대대수 업황에 대한 전망이 어두워 소비재, 신산업, 부품 산업을 중심으로 수출 고부가가치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우려는 국내 자동차 부품산업이 독립적으로 커나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간 한국의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완성차 업체들의 그늘에서 시름해 왔다. 많은 부품업체가 일부 완성차 업체에 종속돼 독자 성장이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한 전문가는 "부품업체들은 때로는 일부 완성차 업체의 단가 후려치기에 당하고, 때로는 기술을 갈취당하고, 때로는 일감몰아주기에 당하고, 때로는 디자인 특허 등의 문제로 독자브랜드를 만들어 국내외에 팔 수 있는 기반도 마련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통령까지 나서서 자동차 부품업체를 지원하라고 한다. 내친김에 자동차 부품산업을 독립시켜 독자 산업으로 육성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자율주행이나 전기·수소차로 미리 방향을 돌릴 수는 없을까? 대만만 해도 완성차 산업이 거의 발달하지 못했는데도 부품산업이 우리보다 훨씬 나은 여건에서 세계시장을 누비고 있다. 우리도 미래의 자동차산업은 부품업계가 이끄는 모습을 보고싶다. 세계 1위 부품업체 '보쉬'처럼 말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비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