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직후, 좋은 학군에 대한 수요 가장 높아...12~2월은 '학군따라' 이사철
-좋은 학군 선호는 세계 공통 현상...관련연구 "기대수명, 소득에 영향 끼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등 아시아계의 선호도는 유별나

강남의 주택 전세 가격도 수능 성적표가 나오는 시기를 기점으로 상승 조짐을 보이곤 한다. 사진은 대치동의 은마아파트.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올해 수능 성적표가 5일 발표되며 수험생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성적표를 받아든 수험생들만큼이나 ‘맹모’들 역시 바빠졌다. 올해 수능이 '불수능'으로 불리며 역대 손에 꼽힐 정도로 어려웠던 탓에 수험생, 학부모 모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울 것으로 보인다. 우수 학원가, 우수 학군 지역으로 이사하려는 학부모들의 움직임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수능 직후인 12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는 학군 이주 수요가 가장 많은 시기다. 3월 새 학기가 시작하기 전 집을 알아보려는 학군 이사 수요가 본격화되기 때문이다. 명문 학군 지역의 경우, 특히 12월 아파트 거래량이 대폭 증가한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명문 학군이 몰려있는 서울 강남구의 아파트 거래량은 지난해 11월 703건에서 수능 직후인 12월 1057건으로 50% 증가했다.

명문 학군 지역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기말고사 및 수능이 끝나는 12월부터 봄방학까지 학군 및 학원가를 염두에 둔 이주가 눈에 띄게 증가한다”면서 “학군 수요는 부동산 경기나 집값과는 상관없는 실수요라 매년 반복되는 현상이다”고 설명했다.

◆ 학군 프리미엄은 영미권도 마찬가지...아시아계 선호 두드러져

우리나라만의 현상일까? 몇몇 교육전문가는 아니라고 한다. 자식 앞날 걱정하는 부모 마음이야 어느나라건 다 똑같다는 것이다. 특히 유서 깊은 교육의 전통으로 이름 높은 영국은 우리나라와 유사점이 많다. 미국 역시 아시아인의 교육열을 보고 배우려는 열의에선 그 어느나라에도 뒤쳐지지 않는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런던에서 좋은 학군에 살기 위해서는 부모들이 연간 평균 7만6675파운드(약 12억 원)의 집값을 더 내야한다. 학군 프리미엄은 런던만의 현상은 아니어서, Kent 지역의 Tunbridge Wells의 명문 4개 중등학교 학군에 살기 위해서는 인근 다른 지역에 비해 196%나 비싼 주택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브리밍햄의 명문 학군에 살기 위해서는 84%의 추가 월세가 붙는다. 파이낸셜타임즈의 작년 기사도, 2017년 런던 내 명문 초등학교의 '학군 프리미엄'의 가격이 평균적으로 1억3000만 원 정도가 더 비싸다고 전했다.

미국의 경우 학군 프리미엄(카운티 중위수 대비)은 심한 지역의 경우 600%를 넘었다. 다만 인종별로 봤을 때 아시아계의 학군 선호 현상이 백인보다는 낮아도, 다른 인종에 비해서는 높게 나왔다는 점은 유의할 만한 사항이다.

아시아계를 보다 세분해서 보면 대만계, 한국계, 인도계, 일본계 순으로 좋은 학군에 사는 비중이 높았다. 이들 민족은 백인에 비해서도 교육열이 높을 뿐만 아니라, 비록 소득이 낮아도 좋은 학군을 고집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대만계와 한국계는 저소득층(빈곤 소득의 150% 이내)이어도 좋은 학군 거주 비율이 평균적인 백인 가구 비율보다 높을 정도다.

영국의 명문 학군인 'Tunbridge Wells'. (사진=Tunbridge Wells 공식 웹사이트)

◆ 가난한 사람에게 부유한 지역은 왜 중요할까?

2016년 미 전역에서 큰 관심을 얻은 연구가 있다. 스탠포드 연구진이 소득과 기대수명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연구이다. 스탠포드 연구진에서 미국의 사망 통계를 연구한 결과, 상위 1% 소득의 40대 남성은 최하위 소득 1%의 40대 남자보다 약 15년이나 오래 산다고 밝혔다.

미국같은 나라에서의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보다 삶에서 육체적·정신적으로 소모되는 정도도 덜할 것이고, 건강하고 잘 관리된 음식을 먹을 것이며, 훨씬 나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것이라는 점이 쉽게 예상된다는 점에서 그리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연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 특기할 점은 기대수명이 지역별로도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가령, 뉴욕의 가난한 사람들은 디트로이트의 똑같이 가난한 사람보다 약 5년을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이 조사 몇 해 전에 실렸던 2012년 뉴욕타임즈의 기사는 의미있는 시사점을 제공해 주고 있다. 미국의 흡연율 역시 지역별로 편차가 심하다는 것이다. 가령 2012년의 미국 켄터키의 경우 지역 전체의 흡연율이 27%에 이르는 반면, 유타는 12%, 캘리포니아와 워싱턴, 뉴욕 등지는 대체로 18%에 수렴했다. 그리고 이 흡연율 지도와 기대수명 사이에는 상당한 연관성이 있었다. 

흡연 자체가 기대수명을 짧게 만들기도 하지만, 흡연율이 높은 지역과 기대수명이 낮은 지역 모두 빈민촌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빈민촌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나쁜 생활습관에서 쉽게 벗어나기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한 전문가는 이에 대해 "부자 동네에 사는 빈민들의 흡연율은 같은 소득을 벌면서도 빈민촌에 사는 빈민들에 비해 낮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그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담배를 적게 피는 것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고, 부유한 지자체의 각종 켐페인과 건강 관리 프로그램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몇몇 학자들은 미국의 빈민층에게는 사는 지역의 어디인지가 건강하고 오래 살기 위해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빈민촌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좀 더 좋은 환경으로 이사를 가면 장래소득이 높아진다고 한다. 뉴욕타임즈가 소개한 연구진에 의하면 사는 환경이 달라진 4600가구의 빈민층을 장기간 추적한 결과, 좋은 환경으로 이주한 가구의 아이들이 대학도 더 잘 다니고, 결혼도 많이 하며, 아버지와 같이 사는 비율도 높았다.

'빈민 지역 탈출'은 아이들이 어릴수록 그 효과가 뚜렷했다. 사춘기 이전에 빈민촌을 떠난 아이들과 그 이후에 떠난 아이들의 성장 후 소득을 보면 전자의 소득이 31%나 더 높았다. 후자의 경우 소득이 오히려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 그래도, 아시아인의 교육열이 유별난 것은 맞다

아시아계의 교육열은 유별나다. 당장, 한국만해도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명문 학군이나 부유한 지역을 고집한다는 사실은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2015년 연구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가난한 백인이나 아시아인들은 저소득 흑인과 히스패닉에 비해 무리해서라도 좋은 학군에 거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연구조사. 빈곤층이 좋은 학군에 사는 비율을 인종 단위별로 조사했다. (사진=브루킹스 연구소)

캘리포니아를 대상으로 한 통계에서는 백인, 인도계, 한국계, 일본계들은 다른 민족 집단에 비해 좋은 학군 거주 비율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는 빈곤선보다 150% 낮은 소득을 버는 이들을 '빈민'이라 정의했는데, 아시아계 빈민의 무려 46%가 좋은 학군에 거주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다. 백인은 49%에 달했고, 히스패닉은 37%, 흑인은 29%였다.

한국에서는 그러한 움직임이 가장 뚜렷하게 관측되는 시점이 바로 현재다. 주택업계 관계자는 "명문학군 지역들은 워낙 주거선호도가 높지만, 수능 전후에 그 인기가 더욱 높다"며 "특히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의 경우 고등학교 원서접수 마감이 12월 10일로 정해져 있어 기한 전까지 주소지를 옮길 경우 인근 학교 배정이 유리한 편이기 때문에 그 전에 전입신고를 마치려는 움직임이 크다"고 설명했다. 

학군에 대한 한국 학부모들의 집념은, 최근 자녀의 성향과 특정 학군의 매칭을 따져보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내 아이와 어울리는 학군·학원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입시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학업 분위기 역시 명문 학군이라 할 지라도 지역마다 다르다"고 설명한다. 가령, 대치동과 개포동은 같은 강남학군이지만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학원가를 도보로 이용할 수 있는 입지를 타고난 대치동에선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 이후 학원으로 이어지는 스케줄을 소화한다. 반면 개포동 혹은 일원동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무한 경쟁에 휘둘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학부모들이 선호한다. 경우에 따라선 대치동 학원가를 이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럼에도 소득에 관계없이 대부분의 학부모가 대치동을 선호하는 것은 사실이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대치동은 1등부터 꼴등까지 모두 다닐 수 있는 학원이 있어서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다만 대치동이나 개포동이나 모두 오늘날 한국에서 빈곤층에 속하는 서민들이 주거 경쟁을 뚫고 입성하리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모든 학부모가 선호해서인지, 대치동 학군 진입을 위해 아파트 매매를 결정한다면 최소 10억 원 이상의 유동성이 몇 년간 묶이게 될 것이다.

물론 대치동 사는 모든 부모가 고위직에 전문직에 부유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 없는 살림에 무리해서 가까스로 대치동에 입성한 중산층 이하 주민들도 이전부터 주위에 한 명쯤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유한 지역에서 자라난 아이가 더 많은 소득을 벌 가능성도 높고, 담배도 덜 피우게 될 것이며, 거기다 기대 수명이 몇 년은 더 높다고 하는데, 부모님들이 명문 학군을 선호하는 것은 어쩌면 부모 마음에서라도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그것이 한국만의 특별한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미국과 영국의 학부모들도 동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작권자 © 데일리비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