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명품산업, 경제침체·중국發 규제로 침체 가속화
- 루이비통·구찌 등은 다양한 활로 모색

유럽 명품산업의 위기가 심상치 않다. 사진은 샤넬 매장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유럽 명품 브랜드들에 비상이 걸렸다. 구찌(GUCCI), 혹은 루이비통(LOUIS VUITTON)으로 대표되는 유럽 명품 산업의 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방인인 우리 눈에는 늘 승승장구하는 기업처럼 보이지만, 명품 업계 관계자들은 요즘이야말로 유럽 명품의 진정한 위기가 찾아왔다며 호들갑이다. 루이비통은 3분기 실적 발표 이후로 주가가 10% 가까이 빠지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유럽 명품 브랜드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늘 위기였다"며 "사람들은 더 이상 700유로(약 90만원)씩 주고 구찌 스니커즈 운동화를 사지 않는다. 2000유로(약 260만원)나 되는 루이비통 핸드백를 선뜻 사려는 사람들도 많이 줄었다"고 말한다. 

◆ 중국인 수요로 버티던 명품산업, 최근 중국 세관 단속에 전망 어두워 

이 위기를 메운 것은 부유해진 중국인들이었다. 중국인들과 밀레니엄 세대들이 명품 소비를 늘리면서 전 세계 명품 시장은 2017년 2800억 유로(약 360조 원)에 달하며 1996년 대비로는 3배나 커졌다. 2025년에는 3900억 유로(약 501조 원) 규모까지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명품 산업의 성장은 중국 소비 시장의 성장과 궤를 같이 한다고도 볼 수 있다. 컨설팅 업체인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현재 중국인은 세계 사치재 구매의 1/3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사치재 산업 성장의 2/3를 책임지고 있는 것이며, 10년 후에는 사치재 구매 비중이 50%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명품매장 앞에 줄을 선 중국인 관광객들. (사진=연합뉴스)
해외 명품매장 앞에 줄을 선 중국인 관광객들. (사진=연합뉴스)

대륙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을 대신하여 명품을 구입해주는 사람을 '다이거우(Daigou)'라고 부른다. 이들의 구매력은 2016년 50억 파운드(약 7조 원)로 추정될 정도로 상당하다. 파이낸셜타임즈(FT)가 최근 취재한 24세 중국 여성 다이거우에 따르면, "런던에만 1000명의 다이거우가 활동하고 있다. 고객은 약 4000~5000명 정도로 호경기에는 매달 3만5000파운드(약 5000만 원)~4만6000파운드(약 6600만 원)를 벌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럽 명품산업의 진정한 위기는 다이거우의 불경기에서 시작했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중국 세관 당국이 명품 보따리 장사를 단속하기 위해 여행자들의 물품을 엄밀히 검사하기로 한 탓이다. 중국인의 해외 쇼핑 면세 한도는 5000위안(약 82만 원)이지만, 다이거우는 느슨한 단속 아래 명품을 비롯한 해외제품 암시장의 도매상인 역할을 해왔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세관 단속을 강화하면서 표적으로 삼은 게 바로 이들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10월 초 아시아나 항공이 중국과 홍콩행 항공 편에는 상업용 목적의 개인 화물을 싣지 않겠다고 발표하고, 중국 공항에서 여행자 물품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유럽 명품 브랜드의 주가가 다시 한 번 곤두박질 치기도 했다. 이에 10월 중순 루이비통의 주가가 7% 넘게 추락했다. 장중에는 낙폭이 한때 8.4%에 달했다. 구찌 브랜드로 유명한 케링, 까르띠에의 리슈몽도 각각 파리, 스위스 증시에서 투매압력에 시달렸다. 미국 뉴욕증시의 보석 브랜드 티파니는 10% 넘게 폭락했다. 

◆ 업계의 생존 전략도 진화 중

상황이 이렇게 되자 명품 업계는 중국인이라는 특정 소비집단을 대체할 소비층을 발굴해 내는 데 분주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기존의 명품을 열심히 구매했던 중국인들의 대다수가 20·30대임에 주목한 것이다. 이에 구찌와 프라다 등은 발빠르게 온라인 사업으로 사업망을 확장했다. 기존의 고가 브랜드들이 가져다주는 차별성과 폐쇄성을 버리고 신사업에 투자한 과감성은 업계에서 많은 우려를 낳기도 했다.

스트릿 패션의 상징 '슈프림'과 협업한 루이비통. (사진=LVMH)
스트릿 패션의 상징 '슈프림'과 협업한 루이비통. (사진=LVMH)

하지만 그들의 변화는 판매전략의 변화에서 그치지 않았다. 상품 디자인에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밀레니엄 세대의 소비층을 겨냥해, '물질적인 소비’대신 여행과 문화생활 등의 ‘경험’으로, 기성품보다는 비스포크(고객의 개별 취향을 반영해 제작하는 물건으로 확장)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루이비통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루이비통은 2017 남성복 컬렉션에서 스트리트 패션의 상징 ‘슈프림’과 협업해 업계를 충격에 빠트리기도 했다. 

'슈프림'은 과거 루이티통이 자사 디자인을 표절했다고 법정 공방까지 벌인 브랜드라 상황은 더욱 아이러니하다. 어쨌든 이 날 런웨이에서 루이비통은 브랜드 상징인 ‘LV 모노그램’ 대신 슈프림의 로고가 가득한 패션으로 런웨이를 장식했다. 루이비통은 베이스볼 셔츠, 드라이빙 장갑, 스타디움 재킷 등 스트리트 감성을 한껏 녹인 디자인으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과감한 시도를 했다.

'비싼데다 촌스럽기만 한 브랜드'로 줄곧 하향세를 걸었던 구찌도 반등에 성공했다. 구찌는 2015년 무명 디자이너였던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했다. 미켈레 디렉터는 모두가 미니멀리즘을 외칠 때 홀로 '맥시멀리즘'을 주장하며 차별회를 꾀했다. 화려하고 파격적인 무늬를 수놓으며 단조로움을 탈피하고 과감한 디자인으로 젊은 층에게 어필한 것이다. 이에 현재 구찌 매출의 55%가 35세 이하 밀레니얼 세대에서 나오고 있다.  

구찌플레이스 애플리케이션. (사진=구찌)
구찌플레이스 애플리케이션. (사진=구찌)

경영진들 역시 35세 이하 직원들과의 정기적인 점심 모임을 통해 회사 문화나 복지에 대해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한다. 여기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구찌의 탈모피 선언과 2017년 9월 새롭게 론칭한 ‘구찌플레이스’다. 구찌는 작년 10월 이래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요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관에 맞춰 모든 제품에 모피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와 함께 등장한 것이 구찌플레이스 애플리케이션이다. 특별한 경험이 있는 여행을 선호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맞춤 앱이다. 구찌 브랜드에 영감을 준 전 세계 곳곳의 구찌플레이스를 소개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 결과 구찌는 도태되는 럭셔리 시장 속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구찌의 모회사인 케링은 작년 사상 처음으로 주가수익률(PER)이 루이뷔통 모기업인 LVMH를 제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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