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역전쟁에 마음 급한 중국, 대기오염 규제 완화...미세먼지 피해 늘어날 듯
- 유럽은 대기오염 대응 협력체제 마련...유럽 주요도시들은 지자체별 정책 추진

(사진=연합뉴스)
서울 광화문 앞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권순호 기자] 외출하기 전 미세먼지를 체크하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됐다. 미세먼지 농도가 심각한 날에는 가급적 실내에서 활동을 하고, 굳이 외출이 필요하다면 마스크 착용은 필수다. 덕분에 편의점이나 약국에서 마스크는 잘나가는 인기상품이 됐다.

미세먼지는 2013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1급 발암물질로 지정될 만큼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 미세먼지는 기관지에 미세 분진 형태로 쌓여 호흡기 곤란을 일으키며 페암이나 심혈관 질환 등의 발병률을 증가시킨다. IARC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세먼지가 ㎥당 10㎍(마이크로그램) 상승할 때마다 폐암 발생 위험은 22%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세먼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는 지난해 9월 2022년까지 미세먼지 배출량 30% 감축한다는 내용이 담긴 ‘미세먼지 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노후 석탄발전소 가동중단, 사업장에 대한 대기오염물질 배출허용기준 강화 등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을 감축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중국과 몽골에서 유입되는 미세먼지가 국내 전체 미세먼지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세먼지 농도가 낮을 때는 비중이 30~50% 정도지만 농도가 높을 때는 60~80%까지 상승한다.

관련 업계에서는 “미세먼지 발생은 국내보다 중국 등 국외 요인이 크다”면서, “이런 상황에선 국내에서 추진하는 미세먼지 정책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오히려 국내 산업에 부담만 키울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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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천안문 앞에서 한 시민이 마스크를 쓰고 걸어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무역전쟁으로 발등에 불 떨어진 중국, 대기오염 정책 완화해

세계보건기구(WHO)가 2016년 세계 2500여 개 도시의 대기 중 초미세먼지(PM2.5) 농도를 조사한 결과, 중국 수도 베이징이 73㎍/㎥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 서울(26㎍/㎥) 보다 3배 , 미국 뉴욕(7㎍/㎥) 보다 10배 이상 높은 수치다. 다른 중국 도시들의 미세먼지 농도도 높은 수준이다. 중국 도시들의 미세먼지(PM2.5) 평균 농도는 48㎍/㎥로, 세계 도시 평균 농도인 19㎍/㎥의 2배를 넘는 수치다.

대기오염 문제로 인한 중국의 피해 규모는 상당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이 보도한 홍콩 중문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중국은 오존과 초미세먼지 등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연간 2670억 위안(43조4000억 원)에 달하는 경제적 피해를 보고 있으며, 조기 사망자도 1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중국 정부는 지난 7월부터 대기 질 개선을 위한 ‘대기오염 통제 3개년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오는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개최를 대비해 이산화황과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2015년보다 15% 이상 줄인다는 계획이다. 지난 8월엔 대기오염 수치 기준인 미세먼지 배출을 5% 감축한다는 목표치를 제시했다. 대기오염이 심한 도시들은 미세먼지 농도를 2015년 대비 18% 이상을 감축하기로 했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장기화되어 경기 둔화가 우려되자, 대기오염 정책 수준을 완화하고 있다. 미세먼지 배출 감축 목표치도 당초 제시한 5%에서 3%로 낮추고, 올겨울엔 미세먼지 발생 저감을 위해 지난해부터 실행 중이었던 철강 생산 및 석탄 사용 억제 정책도 완화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 한국으로 날아오는 대기오염 물질이 전보다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 파리 전경(사진=픽사베이)
프랑스 파리 전경(사진=픽사베이)

유럽에선 대기오염에 공동 대응하는 협력체제 마련해

국내에서는 중국의 자발적인 대기오염 정책에만 의존하기보다, 대기오염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한·중 또는 한·중·일 협력체제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유럽의 ‘월경성 장거리 이동 대기오염 물질에 관한 협약(CLRTAP)‘이나 ‘특정대기오염물질 배출한도 지침(NECD)’이 모범사례로 지목된다.

현재 유럽 각국과 미국 등 51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월경성 장거리 이동 대기오염 물질에 관한 협약(CLRTAP)’은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대기오염물질에 대처하기 위한 최초의 다자간 환경협약이다. 1960년대 북유럽에서 영국이나 독일로부터 넘어온 대기오염물질로 인한 산성비 문제를 국제적으로 제기한 이후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197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도로 관계국 11개국이 공동 모니터링 연구를 거쳐 협력 방안을 구체화했고, 1979년에 비로소 CLRTAP가 체결됐다. 

더 나아가 유럽연합(EU)는 2001년부터 ‘특정대기오염물질 배출한도 지침(NECD)’을 마련해 회원국에 오염물질 배출량 한도를 설정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EU 회원국은 국외에서 국내로 유입되는 미세먼지 문제뿐만이 아니라 국내에서 미세먼지가 발생했을 때 인근 국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함께 분석한다.

EU는 이를 통해 2020년까지 미세먼지 배출량을 2001년 대비 59%를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EU는 회원국들이 배출량을 점검해 발표하고, 배출한도를 준수하지 못한 회원국은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엄격한 관리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폴란드는 2016년에 미세먼지 농도 기준을 초과해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를 당했고, 지난 3월엔 독일이 주요 도시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기준치를 초과해 EU집행위에 대기질개선계획을 제출한 바 있다.

주요 유럽 도시들은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도심 내 차량 진입 제한하거나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하는 등 관련 정책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영국 런던의 도로 모습(사진=픽사베이)
유럽은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도심 내 차량 진입을 제한하거나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하는 등 관련 정책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영국 런던의 도로 모습(사진=픽사베이)

유럽 주요 도시들, 지자체별로 대책 추진

유럽은 산업이 발달한 여러 국가가 모여 있는 만큼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미세먼지도 많은 편이다. 하지만도시 안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미세먼지 배출량을 줄이는 정책에도 힘쓰고 있다 특히, 유럽 주요 도시의 지자체들이 나서서 지역 상황을 고려한 적절한 대기오염 정책을 추진 중이다.

독일의 경우, 베를린시는 도심 내 주요도로에서 자동차들의 주행속도를 시속 30㎞로 제한하고, 경유차 미세먼지 필터 장착, 오염물질 배출량이 많은 차량의 도심 진입 제한 등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공업이 발달한 뒤셀도르프시의 경우 중형 트럭 등 차량의 도심 진입을 제한하고, 도심 외곽에 주차한 후 짐을 싣고 내리도록 조치하고 있다. 

파리는 2016년부터 배출가스 수준에 따라 7개 등급으로 구분하는 ‘차량 등급제도’를 시행 중이다. 배출가스가 적은 전기차나 LPG(천연가스)차량은 무료 주차 등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대기오염상태가 심각한 날엔, 파리 내 대중교통을 할인해주는 정책을 실시하여 자가 차량 이용을 줄이도록 유도하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는 교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자동차 시내 진입을 제한하기 위해 '런던진입세'를 도입했다. 시민들의 자동차 이용을 억제하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진입세 제도를 실시한 이후 교외지역에서 런던 시내로 들어오는 자동차 수는 절반 이상 감소하고, 이를 통해 미세먼지 배출량을 줄이면서 동시에 도심의 교통혼잡 완화에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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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전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사진=연합뉴스)

과학적 대응 논의 시작...중국과 공조하고 자체적 노력도 필요

미세먼지 문제에 대해 한국과 중국이 유럽과 같이 공동으로 대응하는 체제를 마련하는 한편, 국내적으로도 오염물질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중국은 그동안 미세먼지 절감 노력을 지속해오면서 유의미한 효과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베이징의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당 89.5㎍이었으나, 지난해에는 58㎍까지 개선됐다. 중국 주요 도시들의 미세먼지 농도도 2013년 ㎥당 72㎍ 수준에서 지난해 ㎥당 48㎍까지 줄었다. 

중국이 국내 미세먼지 문제의 주요 원인인지 여부는 연구기관별로 분석이 다르다. 하지만, 중국 내에서 미세먼지 배출이 줄어드는 추세인 반면, 우리나라는 높은 인구 밀집도와 자동차 이용률, 그리고 탈원전 정책에 따른 화력발전 비중 증가 등으로 인해 국내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편, 범부처 미세먼지 연구개발 협의체는 지난 10일과 11일 2일 간 서울 중구 LW 컨벤션센터에서 ‘대한민국 미세먼지 R&D 전문가 대토론회’를 개최하고,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학적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토론회에선 동북아시아 에너지 소비 변화 등 한·중·일 사회 경제 환경 여건을 고려한 현상 규명 및 예측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밖에도 이동측정 차량을 활용하는 등 대기오염 공간 분포를 측정하고, 예보 개선을 위한 대기경계층 연구 제안들도 나왔다.

정병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개발정책실장은 “미세먼지 문제가 국민들의 삶의 질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미세먼지 문제 해결에 기여 할 수 있는 전문성 높은 다양한 대안들이 필요하며, 이번 토론회를 통해 미세먼지 분야 과학자들이 제안해 주신 다양한 과학적 대안들이 실제 미세먼지 문제 해결에 활용 될 수 있도록 범 부처와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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