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충격은 문명사적 충격이다.
-필자는 결국 ‘역량’을 길러주어야 한다고 잠정 결론에 이르렀다

사진=Ⓒpixbay 이미지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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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후조 논설위원] 우리는 어디서 온 누구이고 또 어디로 가고 있는가? 최근 발전한 거시사들은 이를 어느 정도 알려준다. 우주는 영겁을 두고 숨을 내쉬었다 들이쉬는 듯하다. 한 번 내신 것을 빅뱅이라 하고 그 내신 숨의 길이는 138억광년으로 멀리까지 뻗어가고 있다.

이웃 안드로메다 은하계만큼 우리 은하계도 오래되었고, 태양계만 해도 46억년이 되었고 지구 나이도 35억년이란다. 생명 탄생 이후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난 것은 기껏 수백만년에 불과하단다. 더구나 우리 현생인류homo sapience는 뒤늦게 나타나 이제 만물의 영장으로서 지구를 장악했다. 현세를 인류세라고 할 정도로 인류는 지구를 책임지는 위치에 놓였다.

수렵채집을 지나 농업혁명을 거치면서 인류는 식물을 작물화하고, 동물을 가축화했다. 우리는 동식물 중에서 키워서 잡아먹을 것들만 편애했다. 그 결과 야생의 늑대, 물소, 펭귄은 수만 마리에 불과하지만 개, 소, 닭은 수 억 마리를 길러 잡아먹는다. 잉여농산물로 인해 육체노동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여러 계층이 차례로 나타났고, 그들은 종교, 정치, 군사, 교육 등의 온갖 제도를 만들었으며 그 문화를 키워왔다.

농업혁명은 1만 2천년되었고, ‘유사 이래’라고 하는 문자의 발명과 그에 의한 기록은 6천년을 넘지 못한다. 문자발명이후 지식의 반감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동양의 최고지식인들은 공자학당에서 경전을 읊조리며 지배층의 논리와 윤리를 되새길 때 서양의 최고지식인들은 수학과 과학을 배우고 발전시켜왔다.

그 결과 서양인들은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을 일으켰고, 인류를 먹여살려온 획기적 기술로 우리는 기아와 전염병 등을 상당히 극복했다. 자유민주정과 시장경제로 교육문화수준도 높아져 지금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신상이 출시되어 물질적 풍요를 누린다.

이제 문명은 물리적 세계화와 가상적 지능정보화의 시대에 이르렀다. 정치적 결단으로 세계화는 일시적으로 위축되기도 하지만 누구나 지구촌, 세계시민임을 의식한다. 다른 한편 지능정보화는 방화벽을 뚫고 무한대로 나아가고 있다.

어느 누구도 그 세계를 알지 못할 정도로 광범하고 통제 불능의 상태이다. 필자 세대는 소년시절은 농업사회, 청소년시절은 산업사회, 성인기시절은 정보화를 맞았고 이제 지능정보화를 맞다보니, ‘문명의 변화를 읽고, 이에 적응하고 나아가 이를 주도하는 것’을 엄두도 못 낼 지경이 되었다. 선생으로서 문명의 변화를 읽어주고, 그 적응과 변화주도력은 아무래도 차세대에게 바통을 넘겨주어야 할 것 같다.

교육은 본래 ‘전대의 가르침이 후대의 삶의 개척에 도움이 된다.’였는데, 오히려 방해하는 면이 있지 않나 우려가 된다. 교육의 영원한 명제인 ‘지식의 체계적 전수와 습득을 통한 지력의 개발’도 점차 빛을 잃어가고 있다.

알파고의 충격은 문명사적 충격이다. AI를 장착한 로봇이 인간의 육체적․감정적․정신적 능력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도 이로 인해 1년 이상 교육적 아노미를 극심하게 겪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이제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까?

고민 끝에 필자는 결국 지식의 체계적 전수를 줄이고, 상황과 문제를 맞아 창의적․협동적․인격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능력 즉 ‘역량’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잠정 결론에 이르렀다. 누구든 할 줄 알려면 해보아야 한다.

연습이 습관을 만든다(practice makes practice). 실제로 해보게 함으로써 할 줄 알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교육자가 집어넣어주는 것보다 학생의 잠재력을 들깨워 끄집어내어 실행하는 것으로 교육은 바뀌어야 한다. 한 학기 동안 어떤 강좌를 가르쳤다면 그 강좌를 생활, 공부, 일 속에 녹여낼 수 있는 길을 찾아주어야 한다.

필자는 학부생들에게 ‘교육과정’을 가르친다. ‘현행 교육과정에 대한 비판적 이해와 보다 나은 교육과정에 대한 창의적 개발’이라는 모토moto에 맞게 학생들이 이를 경험할 기회를 주고자 한다. 학기 후반부에는 ‘국가교육과정기준’ 문서의 총론을 개발하라는 과제를 낸다. 5-6명이 한 팀을 이루어 머리를 싸맨다.

교육과정은 학문 구조주의, 학습자 구성주의, 사회 실용주의의 요구의 종합과 절충이다. 이론으로는 배워서 안다. 실제로 해보면 정말 어렵다. 가치판단도 어렵고 실제구현가능성도 가늠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해낸다. 학기말에 교육과정이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알았다고 수강 소감을 듣는다.

필자는 이를 핵심역량을 기르는 ‘핵심프로젝트’라고 부른다. 핵심프로젝트를 해봄으로써 강좌의 정수를 맛보고 실무적인 능력을 익히게 된다. 사람을 길러내고 훈련하는 데에는 어디나 교육계획으로서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우리 학생들이 가장 거창한 것을 해보았으니 나아가 학교, 기업, 사회교육기관, 가상공간 어디서도 크고 작은 교육과정 개발 프로젝트를 너끈히 해낼 것이다.

전국의 모든 교육자들은 한 학기 동안 해당 과목과 강좌를 가르치면서 핵심프로젝트를 발굴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구술을 꿰는 경험을 줄 필요가 있다. 필자는 학기를 거듭하면서 핵심역량을 길러주는 핵심프로젝트의 실행이 21세기 교육이 나아갈 길이라는 확신이 점점 확고해진다.

필자 :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한국교육과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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