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가장 사소한 듯하지만 매일, 그것도 여러 번 해결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 집에 있든 밖에 있든 가장 자주 들락거려야 하는 곳. 바쁜 세상에 뭘 그런 문제를 다 갖고…, 라고 툴툴댈 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동서고금의 논쟁적인 이슈. 하지만 남자에 한정된 문제. 바로 “앉느냐, 서느냐”다.

나에게도 그랬다.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숙제 같은 것이었다. 그 이전에 사실 아내의 오랜 민원사항 중 하나이기도 했지만. 문제 해결의 기회는 의외로 갑자기 찾아왔다. 40대 시절의 어느 겨울날 나는 회식을 마치고 술에 취해 귀가했다. 맹렬한 요의(尿意)가 엄습했다. 화장실 문을 열었다. 서서 일을 보려니 다리가 휘청했다. 앉았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니 더 편했다고나 할까. 시트는 따스했고 소변은 시원하게 잘 나왔다. 숙제는 그렇게 풀렸다.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충격의 순간이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만 같았다. 너무나 당연해서 아무런 의문이나 의심을 품지 않았던 주변의 것들에 대한 갑작스런 깨달음. 나는 지금까지 왜 서서 그 일을 했던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던가? 나는 평생 직립 방뇨 자세를 유지한 것에 대해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이유를 하나도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때가 되면 밥을 먹는 것처럼 무의식 속의 고정관념이었던 것이다. 

앉거나, 서거나, 무릎을 꿇고 쪼그리거나 인류의 방뇨 자세는 성경에도 법전에도 정해져 있지 않다. 생식기가 생긴 대로, 남자는 서서 여자는 앉아서로 자연스럽게 굳어졌다. 그러나 화장실 도구와 욕실 문화가 발전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지금 세계의 남성들은 앉아서 오줌을 누는 쪽으로 가고 있다. 독일과 북유럽은 오래전부터 그 자세가 보편적이고 에티켓이다. 어릴 적부터 유치원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정부나 시민단체도 권장한다. 엄격한 곳은 공공장소에서 아예 남성용 소변기를 없애기도 한다. 변기 뚜껑을 열면 “서서 일을 보면 벌금을 내야 한다”는 경고가 나오는 곳도 있다.

오죽했으면 2년 전 독일에서 이런 판결이 뉴스가 된 적이 있었다. 세입자가 서서 소변을 보는 바람에 화장실 대리석이 손상을 입었다며 집주인이 소송을 냈다. 판사는 “남성은 서서 소변을 볼 권리가 있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판사는 “소변 속의 요산 성분이 화장실 바닥을 손상시킬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남성이 서서 소변을 보는 것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관습”이라며 “그러나 남성들도 문화적 규범을 준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결문에서 말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는 얼마 전에 도둑이 그 집 화장실에서 서서 소변을 보고 나오는 실수를 한 탓에 잡힌 적이 있다. 바닥에 떨어진 오줌 방울에는 DNA가 있다.

유럽에서는 오래된 건물 때문에 생기는 층간 소음과 카펫을 까는 건식 화장실이 남자의 자세를 바꾸게 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영국 가디언지는 ‘진정한 신사라면 앉아서 소변을 봐야 한다’는 제목의 2015년 3월 기사에서 “본디 앉아서 싸게끔 설계된 변기에 서서 오줌을 누는 것은 일종의 정신질환”이라고까지 썼다. 

미국 여성단체 ‘서서 소변보기에 반대하는 어머니들의 모임’(MAPSU)에 실린 홍보 포스터.유명한 모병 포스터였던 엉클 샘의 ‘I WANT YOU’를 패러디했다.
미국 여성단체 ‘서서 소변보기에 반대하는 어머니들의 모임’(MAPSU)에 실린 홍보 포스터.유명한 모병 포스터였던 엉클 샘의 ‘I WANT YOU’를 패러디했다.

다른 나라들도 따라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0년에 ‘서서 소변보기에 반대하는 어머니들의 모임’(MAPSU, Mothers Against Peeing Standing Up)이라는 단체가 결성돼 캠페인을 벌였다. 이 단체는 “당신이 남긴 소변은 대체 누가 청소하나요? 앉아서 소변보기를 거부하는 당신 때문에 왜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라고 항변하며 “Take A Seat!”(앉으세요!)을 외쳤다.

문화나 종교적 관습 차이에서 비롯된 것도 있다. 이슬람권에서는 신체의 특정 부위 노출을 금하는 율법 상 오래전부터 남성들이 앉아서 소변을 보는 관습이 있다. 미얀마에서는 남성들이 ‘롱지’라고 불리는 전통의상 치마를 입기 때문에 길에서 앉아서 오줌 누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트렌드는 유럽과 미국을 거쳐 동아시아까지 왔다. 일본과 대만은 이런 문화가 많이 정착했다. 정부와 민간이 주도해 캠페인을 펼쳐왔다. 대만의 천스홍 환경부장관은 2012년 자신도 앉아서 일을 본다며 커밍아웃을 하고 남성들이 따라줄 것을 호소했다. 일본에서는 남성의 55%가 집 화장실에서 앉아서 소변을 본다는 조사 결과가 최근 보도된 적이 있다. 몽골, 네팔, 방글라데시, 인도 등에서도 흔한 일이다. 

한국은? 여러 차례 민간의 조사가 있었는데 대체로 15~20%에 머물고 있다. 그래도 열 명에 한 명꼴은 넘었으니 나 같은 ‘앉소남’이 이제 완전 희귀종은 아니게 됐다. 여러 자료를 뒤져봤는데 가장 최근의 것은 잡지 한겨레21이 2012년에 20대 이상 성인남자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응답자의 14%가 ‘앉아서 소변을 본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가족 구성원을 배려해서’가 66%로 가장 많았다. 25%는 ‘서는 것보다 앉는 것이 더 편해서’라고 답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설문에는 ‘각자 취향이라고 생각한다’는 긍정적 답변이 62%, ‘남자답지 못해 보인다’는 대답이 27%였다. 국내에서도 여러 시민단체들이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고 그렇게 가르치는 유치원도 많아졌다고 한다. 

남자도 앉아서 소변을 보자는 캠페인에 쓰인 스티커들
남자도 앉아서 소변을 보자는 캠페인에 쓰인 스티커들

 앉아서 소변을 보자는 주장은 위생과 배려에서다. 서서 일을 보면 당연히 소변 방울이 주변에 튀어서 화장실이 불결해지고 시간이 지나며 세균에 분해돼 암모니아 냄새가 난다. 시트에 소변이 묻을 수도 있어서 다음에 사용하는 사람이 불쾌해진다. 일본의 생활용품 업체인 라이온이 2005년에 실험한 결과가 자주 인용된다. 남성이 하루 7번 선 채로 소변을 보면 2300개 미세한 오줌 방울이 변기 주변 직경 40㎝ 바닥에 퍼진다는 것이다. 큰일을 보고 변기 뚜껑을 내리지 않았을 때처럼 욕실 내 칫솔 비누 수건에도 튄다. 

앉아서 소변을 볼 때의 장점은 의외로 많다. 화장실 청소도 수월해지지만, 무엇보다 앉은 자세는 심리적으로 안정감 편안함 안도감을 준다. 큰 것과 작은것을 동시에 해결할 수도 있고, 물에 떨어지는 오줌발 소리가 안 들려 민망하지 않고, 욕실을 물기 없는 건식으로 꾸밀 수도 있고, 층간 소음 시비의 소지도 없다. 다만 소변을 다 본 후에 남자들이 보통 하는 사후처리에 조금 문제가 있어 속옷이 더러워질 수도 있다. 각도의 문제도 있고 변기에 닿을 수도 있다.

앉아서 소변을 보는 습관은 남성 건강에도 좋다는 의견이 다수다. 특히 나이 든 남자들에게는 의사들이 권장한다. 앉으면 복압이 높아져서 요도괄약근이 잘 열린다. 그러면 방광을 완전히 비울 수 있어서 전립선질환이나 비뇨기계 염증, 결석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나이 든 남성은 보통 전립선이 비대해져 소변 줄기가 갈라지고 잔뇨감이 남는데 ‘앉아 쏴’ 자세로 바꾸면 배뇨에 유리하다고 한다. 그러나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공중화장실에서는 물론 앉아서 소변보기가 쉽지 않다. 소변기 앞에서 바지를 내리면 늘 마주치는 문구, 남자라면 다 안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등등. 흘깃흘깃 옆 사람을 쳐다보는 사람도 있다. 남성 공중화장실의 분위기는 대체로 음습하고 냄새가 난다. 국내에선 아직 공중화장실에서 소변기를 치운 사례는 없지만 독일 같은 데서는 있다고 한다. 오줌이 튀는 걸 최소화하도록 고안된 새로운 형태의 소변기도 등장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조준’이다. 남성은 보통 목표물에 정조준을 하려는 심리가 있다.

파리 한 마리가 노벨경제학상을 안겨준 사례는 널리 알려졌다.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리처드 탈러 시카고대 교수가 쓴 책 ‘너지(Nudge)’에 나오는 대표적 사례다. 네덜란드 스키폴 국제공항의 남성 화장실 변기 가운데에 파리 그림의 스티커를 하나 붙여놓았더니 소변이 튀는 걸 80%나 줄였다는 것이다. ‘너지’는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는 말인데 행동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란 의미다. 

앉아서 소변보기에 거부감을 보이는 남자들은 무슨 생각에서일까. ‘나는 남자이니까’ ‘남자답지 않다’는 것이 대다수다. 가장의 권위도 있다. 옛날 분들은 여자를 “앉아서 오줌 누는 사람”이라고 비하했다. 우리는 기실 별 생각 없이 할아버지 아버지의 자세를 따라 했을 뿐이다. 터프가이 최민수도 아내를 위해 앉아서 오줌 눈다고 털어놓았고, 라이오넬 메시도 그랬다. 

앉아서 오줌을 누면 사나이의 자존심에 상처가 날까. 그런 사람은 십중팔구 화장실 청소를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일 터다. 서서 일 보는 것과 수컷의 자존감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단지 습관의 문제일 뿐이다. 아내를, 가족을 진정 아낀다면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이 문제 하나부터 결단해볼 일이다. 앉는 자세로 바꾸시든지, 그게 싫다면 화장실 청소를 전담하든지. ‘진짜 남자’는 앉아서 소변을 본다.

한기봉 칼럼니스트
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문화체육관광부 홍보기획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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