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혁명 이전 유럽에서 탄생해 신사들의 정서적 만족감을 채워주는 역할 수행...오늘날의 클럽과 카페로 이어져
-영국 지배를 오래 받은 영연방 국가에서는 아직도 그 특징 남아 있어
-스타벅스의 역할도 현대인을 위로하고 달래준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아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최근 지인을 통해 만난 한 일본인에 의하면, 요즘 일본의 직장인들 사이에선 퇴근 후 패스트푸드점에서 하루를 정리하는 것이 유행이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파는 맥주를 마시며, 이 곳에서 친해진 상대를 기다리고 비슷한 처지인 친구들과 이런저런 잡담을 하다가 밤 11시 정도에 귀가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프레시니스 버거’의 경우 오후 4시 이후 햄버거에 곁들여 마실 수 있는 맥주를 한 잔에 190엔(약 1900원)에 판매하고 있다. 얼마전에도 한 유명 외식사업가가 외국 현지의 맛집을 르포하는 TV프로그램에서 퇴근 후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조명하기도 했다

최근 한국에서도 퇴근 후 맥주를 2018년의 직장인 트랜드로 꼽은 바 있다. (사진=JTBC)
최근 한국에서도 퇴근 후 맥주를 2018년의 직장인 트랜드로 꼽은 바 있다. (사진=JTBC)

실제로 요즘 일본 패스트푸드 업체들의 타깃은 ‘후라리만(フラリ―マン)’이다. 후라리만은 ‘후라후라(갈팡질팡)’와 ‘샐러리맨’의 합성어로 퇴근 후에도 집에 가지 않으려는 직장인을 뜻한다. 지금은 ‘퇴근 후 혼자 밤문화를 즐기는 사람’으로 뜻이 바뀐 모양이다. 퇴근 후 집에 바로 가지 않으려는 이유는 제각각 다양하겠지만, 어쨌든 일본에서는 요즘 패스트푸드 점이 그러한 사람들을 위한 사교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클럽, 모임 장소이자 토론과 대화의 장...전성기는 19세기 유럽

사실 요즘 '클럽'이라고 하면, 홍대나 이태원에 있는 좁고 어두운 춤추는 곳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유럽에서의 클럽은 다른 의미다. 마음에 맞는 친구들끼리의 모임, 특히 식사 모임을 뜻하곤 했다. 지금 예시로 든 일본의 패스트푸드의 공간적인 성격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오늘날과 같이 즐길 만한 오락거리가 많지 않았다. TV나 라디오도 없었고, 신문이나 책도 요즘처럼 다양하지 않았다. 그럴 때는 맘에 맞는 친구들의 존재가 매우 소중했을 것이다. 통신 수단도 변변찮을 시기였지만 친구들을 항상 만날 수 있는 장소는 필요했다. 클럽의 탄생은 그러한 욕구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커피하우스', 오늘날에는 카페라고 불리는 공간이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커피하우스는 1650년대부터 1700년 사이에 유럽 여기저기에 생기기 시작했다. 유럽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1650년 영국에서 생겼는데, 커피하우스는 나라 전역에 전파되어 없어서는 안될 만남의 장소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1700년에는 런던에만 2000개가 넘은 커피하우스가 영업을 했다.

1페니만 내고 커피 한잔을 사서 하루 종일 커피하우스에 앉아 남들이 나누는 이와 같은 토론과 대화를 모두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1페니 대학교(One penny university)로 불리기도 했다. 커피하우스가 정치 문제에 대한 ‘불온한’ 토론이 일어나는 공론의 장이 되자 1675년 말 당시 국왕이던 찰스 2세는 커피하우스 전면 폐쇄를 명령하기도 했다.

클럽은 친구들끼리 먹고 마시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니만큼, 식사도 매우 중요했다. 초창기의 클럽하우스와 카페는 주로 여관을 개조한 것이 많았으므로, '집과는 떨어져 있지만 집과는 비슷한'이 모토였다. 이에 여러 클럽하우스에서는 영국 신사들이 일반 가정에서 먹는 것과 같은 가정식을 제공했다. 

오늘날의 영국 가정식. 카페에서 브런치를 파는 문화도 사실상 나폴레옹 전쟁 시대 이전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의견이 많다. (사진=SAINSBURY)
오늘날의 영국 가정식. 카페에서 브런치를 파는 문화도 사실상 나폴레옹 전쟁 시대 이전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의견이 많다. (사진=SAINSBURY)

지나치게 가정식같다는 점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30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Brook's 클럽같은 곳에서는 나폴레옹 전쟁 당시 주방장이 항상 똑같은 가정식 백반(?)만을 내놓았던 것이다. 1806년에는 신사들의 불만이 폭발하여 결국 Watier's 라는 다른 클럽하우스를 창건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카페로서의 기능만 남아 있는 두 클럽하우스는 오늘날까지 영국에 남아있다.

19세기는 클럽하우스의 전성기였다. 이에 대해 일부에선 중산층의 성장과 함께, 특히 1832년, 1867년, 1885년의 선거권 개혁에 의해 선거권을 가진 유권자의 수가 대폭 늘어난 것과 상관이 깊다고 파악한다. 원래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선거권이 중산층까지 내려오게 되자, 기존 클럽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전통있는 클럽에서는 '한 10년 기다리면 공석이 생깁니다'라는 은유적인 표현에서부터 온갖 노골적인 거부로 도시 중산층의 가입 신청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이에 '신흥 신사'들이 자신들만의 클럽을 새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19세기 후반에는 런던에 이러한 신규 클럽하우스만 해도 400곳에 달했다.

과거 영국 식민지들에 클럽 유산 잘 보존돼...현지 교민들도 애용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의 인도는 그러한 유럽의 문화적 전통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 중 하나다. 같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스리랑카의 콜롬보나 말레이시아의 페낭같은 도시에서도 그러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인도 첸나이의 잉글리시 티룸. (사진=박종호 기자)
인도 첸나이의 잉글리시 티룸. (사진=박종호 기자)

한 전문가는 이에 대해 “사회 계급적, 계층적 통합이 아직까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이를 메워줄 문화적 인프라도 부족하고, 외부 요소의 개입을 유도하는 도시화의 정도가 늦은 지역에서 이러한 문화적 전통이 보존되기 쉽다고 설명했다. 유독 커피하우스나 티 룸(Tea Room) 문화가 발달한 영국의 지배를 오래 받은 곳이라는 공통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인도의 첸나이는 특히 그러한 곳이다. 남편을 현지 기업의 주재원으로 두고 있으며, 8살과 5살 난 아들을 키우는 한 주부는 최근“인도는 심심한 나라다. 놀 거리가 무엇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녀는 이어, “아침에 남편 배웅해주고, 운전기사가 아이들 학교 데려다 주고나면 할 일이 없다”며 “한국인 주부들끼리 카페에 모여 브런치 먹으면서 남편 이야기, 아이들 교육 이야기, 한국 돌아가서 살 이야기하는 것이 일상”이라고 밝혔다.

Chamiers 카페. 첸나이의 Chamiers 카페의 경우 이 곳에서 상대적으로 소수인 서양인들의 클럽하우스 역할을 한다. (사진= 박종호 기자)
Chamiers 카페. 첸나이의 Chamiers 카페의 경우 이 곳에서 상대적으로 소수인 서양인들의 클럽하우스 역할을 한다. (사진= 박종호 기자)

이 곳의 카페는, 한국에서 흔한 돼지고기나 소고기 없이, 맵고 짠 커리와 난 등 현지 음식에서 벗어날 좋은 기회도 된다. 당시의 클럽하우스나, 오늘날 유럽의 노천카페들이 그러하듯 파스타에서부터 소고기로 만든 스테이크까지, 인도의 유럽식 카페가 자랑하는 양식 메뉴들은 현지 음식에 질린 교민들과 관광객들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멀리 떨어진 인도에서 사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무료하고 답답한 삶의 공간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현지 분위기와 이질적인 공간을 찾고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모아 정서적 편안함을 추구하는 광경은 과거 영국신사들이, 오늘날 한국과 일본의 외로운 직장인들이 퇴근 후 마음의 안식처를 찾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스타벅스를 비롯한 카페가 갖는 주요 기능 역시 시대의 흐름과 관계없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첸나이에 사는 다른 지인 역시 “결국 한국에서부터 인도까지 각자의 카페문화는 소비층의 심리적 욕구를 반영한 것”이라며“ 유명한 Chamiers 카페에서는 최근 점심특선으로 아프리칸 브렉퍼스트(African Breakfast)에서부터 비빔밥까지 다양하게 팔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특이하거나 이상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스타벅스, 단순한 소비 공간 아닌 '현대인의 안식처' 역할

과거 스타벅스가 한국에 처음 매장을 냈을 때, 한국의 각계각층에서는 스타벅스의 비싼 커피 값을 두고 뜨거운 설전을 벌인 바 있다. 스타벅스에 비판적인 측은 “밥값보다 비싼 커피값이 말이 되느냐”를 이유로 내세웠고, 이에 반대하는 쪽은 “내 돈 주고 내가 먹겠다는데”에서부터 “결국은 자릿세 아니겠느냐”로 대응한다.

미국에서는 사실, 스타벅스 초창기에는 비싼 가격보다도 “왜 카페에서 도넛을 팔지 않느냐”가 더 이슈였다. 미국인들의 정서 상 커피는 직장인들의 흔한 아침인 도넛에 따라오는 보완재로서의 성격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다수는 오늘날의 스타벅스의 성공을 놓고 “스타벅스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트렌드에 맞는 감각을 소비자에게 주입한 것이 인기 비결’이라는 점에 공감한다.

스타벅스 카페. (사진=스타벅스)
스타벅스 카페. (사진=스타벅스)

하지만 미학을 전공한 한 교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스타벅스를 시작으로, 오늘날의 카페 문화는 예나 지금이나 정서적으로 괴리되어 있는 소외 계층의 욕구를 공략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뜻 들어서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는 “스타벅스의 가격이 비싼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라며 “스타벅스의 전통적인 마케팅 전략은 소비자에게 몇 시간 동안의 안정감과 안도감, 자존감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만족감과 우월감과는 거리가 먼 감정이다. 목 좋은 중심 상권가의 테이블에서 사과가 그려진 노트북을 두들기면서 남들보다 큰 사이즈의 커피 컵을 옆에 두고 있으면 실제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스타벅스는 얼마간의 비용을 더 요구함으로써, 몇 시간 동안의 그러한 ‘감정’을 판매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도피처를 제공한다고도 볼 수 있다. 미국에서도 코워킹(Co-Working) 공간에서 심리적 박탈감을 느낀 스타트업 개발자들이, 백악관에 출입하지 못하고 취재 경쟁에서도 밀리기 일쑤인 군소 기자들이, 지도교수로부터 잠깐의 해방을 원하는 대학원생들이 노트북을 들고 삼삼오오 스타벅스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에 스타벅스는 그들에게 커피와 함께 원활한 인터넷 환경, 친절하지만 그들이 몇 시간 동안 무엇을 하든 신경쓰지 않는 듯한 직원 서비스로 보답했다. 

오늘날 한국의 스타벅스도 결국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의 스타벅스도 결국 돈 없는 젊은이들을 위한 클럽하우스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좁고 초라한 집이 지긋지긋한 가난한 자취생도, 비싼 회비 없이 그냥 한 시간 정도의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돈만 내면, 부모님 잔소리에서 벗어나 분위기 좋은 좌석 하나를 2~3시간 차지하고 마치 고급 응접실에 앉아있는 것 같은 기분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해당 교수는 결국, “한국의 젊은이들이 왜 스타벅스의 커피 값을 비싸게 생각하지 않는지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공감과 위로가 필요한 청년들에게 스타벅스는 그들이 원하는 바를 가장 필요한 방법으로 제공해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영국의 오래된 커피하우스와 클럽이 현재까지 살아남은 이유도, 오늘날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카페 열풍이 사그러들지 않는 이유도 누군가에게는 현실에서 벗어날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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