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2월, 노먼 디렌퍼스는 에베레스트 사우스콜과 서릉으로 동시에 등정하는 최초의 랑데부 등반.
- 휘태커는 미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ek.

■저자 토마스 혼바인ㅣ출판년도 1968년ㅣ쪽수 159쪽ㅣ출판사 발렌타인 북스
■저자 토마스 혼바인ㅣ출판년도 1968년ㅣ쪽수 159쪽ㅣ출판사 발렌타인 북스

[호경필 전문위원] 알파인 스타일이 히말라야등반에 적용되면서 드라마틱한 도전의 역사가 연출되기 시작했다. 1978년 라인홀트 메스너와 토니 하벨러가 에베레스트에서 무산소로 등정에 성공하자 사람들은 고소에서 인간의 체력적ㆍ정신적ㆍ생리적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졌다.

장비의 발달과 새로운 기술들이 개발되어 위험적인 요소들을 다소 완화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히말라야의 영웅들은 공포와 곤란함을 이겨내고 새로운 지평선을 열어 나갔다. 비상탈출로나 사전정보가 없는 미개척 루트에서 생소한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전진한 이들의 모험정신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성공 요인이었다. 1963년 2월, 노먼 디렌퍼스를 대장으로 하는 미국원정대는 에베레스트 사우스콜과 서릉으로 동시에 등정하는 최초의 랑데부 등반을 계획했다.

1960년 여름, 토마스 혼바인(저자)은 미국-파키스탄 합동원정대의 팀닥터로 마셔브룸 등반에 참가하고 팀의 성공에 기여한 바 있는데, 디렌퍼스 대장으로부터 등반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동안 잊혀졌던 에베레스트의 꿈을 되살렸다. 베이스캠프까지 30여 일간 캐러밴을 하면서 만난 원주민의 삶과 문화는 인상적이었다.

땅과 조화를 이루며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그들의 독특한 방식이 계속 이어졌고, 원정대는 이 평화로운 공생관계의 균형을 깨는 역할만 하는 듯했다. 원정대의 짐 수송을 위해 고용된 포터들은 자신들의 생활 근거지를 오랫동안 떠나게 되었고, 이방인들과의 교류로 인한 문화적 충격과 물질문명의 이입이 그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3월 21일, 쿰부빙하 초입의 5,400미터 지점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했다. 고소적응을 위해 아이스폴 정찰을 나갔던 존 브라이튼바하가 눈사태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갑작스런 그의 죽음으로 등반대의 분위기가 침울해졌고 어느 루트든지 빨리 등반을 마치고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사우스콜과 서릉 동시등반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었다.

등정 가능성으로 볼 때 사우스콜 루트가 확률이 높으니까 우선 사우스콜을 통해 최초의 미국인 에베레스트 등정자를 내자는 의견이 지배적인데, 서릉은 미개척 루트이기 때문에 선택의 대상이지 필수 사항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우선 사우스콜에 총력을 기울이고 동시에 서릉 정찰을 진행시킨다는 데에 합의했다. 4월 2일, 6,500미터 지점에 캠프2를 설치했다.

여기서부터 사우스콜과 서릉 루트가 갈라진다. 혼바인과 윌리 언소울드는 서릉 루트 7,300미터 지점 웨스트 쇼울더 바로 밑에 캠프3를 구축하는데 성공한다. 인간의 접근을 처음으로 허용한 웨스트 쇼울더에 오른 혼바인은 노스콜과 북벽, 북릉을 바라보면서 감회에 젖는다. 1920~30년대에 영국의 프랭크 스마이드와 에릭 십튼, 조지 말로리의 발자취를 보는 것 같다.

혼바인은 서릉 위로 철옹성같이 버티고 있는 ‘혼바인 쿨루와르’를 확인하면서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오히려 그 공포 때문에 대원들의 도전 의욕이 더 강해졌다. 사우스콜 등반이 진행되면서 혼바인은 서릉의 실현가능한 등반방식을 계속 연구했다. 고정로프와 피톤, 8,500미터 지점의 오버행 통과, 짐을 줄이기 위한 무산소 등반, 셀파의 지원 문제 등 서릉팀이 전체 등반에서 배제되지 않고 열기가 식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웠다.

4월 27일, 짐 휘태커와 디렌퍼스, 곰부, 앙 다와는 13명의 셀파와 함께 사우스콜 루트를 통해 1차 등정에 나섰다. 디렌퍼스는 서릉팀의 지원을 중단하고 모든 역량을 사우스콜에 집중시켰다. 서릉팀도 역시 날짜가 촉박해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서릉팀의 계획은 무산되는 분위기였고 언소울드의 침묵은 혼바인을 더 당황하게 만든다.

5월 1일, 휘태커는 미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고 이후 폭설과 눈사태로 등반이 지연되었다. 디렌퍼스는 철수를 위해 300명의 포터를 5월 21일까지 오도록 했다. 그 전에 모든 등반을 마쳐야 하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서 불가능할 것 같다. 5월 13일, 15명의 셀파 지원으로 서릉 캠프3에 모든 장비와 식량을 올렸다.

혼바인과 언소울드는 한 달 만에 다시 서릉에 올라 캠프4를 구축하고 8,020미터 지점까지 진출하면서 캠프5의 위치를 확인했다. 눈보라가 너무 심해 캠프4로 내려오고 밤새 강풍으로 텐트 두 동이 45미터 아래로 휩쓸려 간 사고가 발생했다. 계속되는 강풍으로 텐트 안에 고립된 혼바인은 이런 고소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대기만 해야 한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이 상황을 변경시킬 수 있는 어떠한 힘도 그들에게 없었다. 셀파들을 캠프3로 내려보내고 베이스캠프와 철수문제를 상의하고 있는데 텐트가 강풍에 날아갔다. 그들은 황급히 텐트 밖으로 간신히 빠져 나왔지만 텐트와 식량, 장비가 티벳 쪽으로 사라졌다. 혼비백산한 혼바인은 구사일생한 사실보다는 자신의 꿈을 이렇게 허무하게 포기해야 하는지 상심에 빠진다.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어떤 불가항력적인 힘의 존재에 두려움을 느끼면서 서릉 캠프3로 철수했다. 혼바인은 이런 적대적인 산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 오히려 반갑고 가족들이 그리워졌다. 하지만 아직 최종 결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언소울드는 무척 지쳐 있었고 다시 올라 가자고 하면 광신도라고 비난할 것이다.

고소캠프는 훼손되었고 장비와 식량, 산소통도 사라졌다. 1주일 이내에 베이스캠프는 철수해야 한다. 혼바인은 중간캠프 없이 한 번에 캠프4까지 오르는 계획을 세웠다. 이 방식은 대원들이 지쳐있고 장비도 부족하여 단 한 번의 시도로 아무도 가 보지 않은 루트를 돌파하기로 한 것이다. 8000미터 위에서의 정찰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혼바인은 새벽에 언소울드를 깨워 무릎 꿇고 부탁하면서 서릉으로의 마지막 시도에 동의를 얻었다.

5월 19일, 사우스콜팀이 2차 등정을 위해 출발했고 5월 20일, 알과 배리 코벳이 서릉 캠프4를 복구하고 8,290미터 지점의 옐로우밴드 초입에 캠프5 구축에 성공했다. 지원 대원과 셀파들이 내려가고 혼바인과 언소울드만이 벽에 겨우 고정된 텐트에서 다음 날의 등반준비를 한다. 21일 새벽, 옐로우밴드의 바위벽을 오르는데 언소울드의 산소가 새고 있다.

걸리 구간을 지그재그로 오르고 산소를 아끼기 위해 확보를 볼 때는 산소의 흡입을 중지해야 한다. 언소울드의 선등은 신중했지만 너무 어렵고 힘든 암벽 구간이라 고통스럽게 천천히 전진하고 있다. 8,500미터 지점에 있는 20미터의 오버행 구간을 넘어서면서 언소울드의 첫 번째 산소통이 소진되었다. 탈출로가 없다는 현실이 이들에게 전진만을 강요했다. 오직 정상 너머에 그들의 생존과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혼바인 쿨루와르’를 통과하자 정상으로 이어지는 설사면이 나타났고 오후 6시 15분, 휘태커가 3주 전 정상에 세워 놓은 성조기가 시야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포옹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황혼은 정상의 그림자를 동쪽으로 수백 킬로미터 그려 놓았다. 바람은 그들의 대화를 방해했고 그들의 환희와 고립을 고조시켰으며 어둡고 외로운 고요의 아름다움을 증폭시켰다. 그들의 꿈이었던 정상은 3차원 이상의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있었다.

3시간 전에 등정에 성공하고 하산한 사우스콜팀의 흔적을 찾으며 하산을 서둘렀다. 저녁 9시, 완전히 어두워진 8,500미터 지점에서 혼바인과 언소울드는 사우스콜팀의 배럴과 류트를 만났다. 그들은 심하게 탈진되었고 산소도 거의 소진되어 휴식 중이었다. 이제 서릉팀이 이들을 도와 하산한다. 류트가 넘어지고 뒹글면서 힘들게 내려간다.

혼바인은 자신의 산소통이 다 소진되었지만 산소통을 벗는 행위가 무척 고통스러워 그냥 매고 간다. 탈진으로 더 이상 하산을 못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변방의 초소가 된 채 비박을 감행했다. 여기서는 누구도 서로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고 팀도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 자신의 불편함과 고통, 살아 남으려는 의지의 포로가 될 뿐이다.

혼바인은 꿈결같은 영원 속으로 빠진다. 두려움도 후회도 없다. 죽음도 생존도 관심이 없어졌다. 오직 아침해가 뜨기만을 기다린다. 23일 새벽 4시가 되자 동쪽으로부터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들 모두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축하했고 기쁘게 바라보았다.

호경필(한국산서회 부회장 대한민국산악산 산악문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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