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신정부, 최근 중국과의 인프라건설 사업 재검토 발표
-한 파키스탄 학자는 "일대일로 사업은 파키스탄의 국익에 아무런 도움되지 않아" 비판
-나와즈 샤리프 정부와의 부패 관련 의혹도 제기돼
-우리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자동차 부품기업에게는 호재일수도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 (사진=연합뉴스)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최근 파키스탄이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하에서 추진해온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사업을 재검토할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중국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사업이 위기에 봉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작에 마찰이 있었던 타국들과는 달리, 중국과 전통적인 우방 관계를 유지해 오던 파키스탄이 이렇게 나온 것은 뜻밖이라는 분석이다. 파키스탄에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일까?

영어로 BRI(Belt and Road Initiative) 또는 OBOR(One Belt, One Road)로 번역되는 일대일로는 2049년까지 중국을 중심으로 육상 및 해상에 신실크로드 경제권을 구축하려는 국가전략이다. 아시아인프라개발투자은행(AIIB) 설립과 더불어, 아시아·태평양 일대에 중국의 자본 투입을 원활히 하고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의 동향은 순탄치가 못하다. 미얀마는 중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90억 달러 규모의 심해 항구 건설 사업을 재검토 중이다. 네팔도 중국 싼샤(三峽)그룹에 건설을 맡겼던 수력발전소 사업을 회수해 자국이 직접 건설하기로 했다. 남태평양 도서국 통가는 중국에 체납 중인 1억1700만 달러(1310억 원)의 대출 채무를 탕감해 줄 것을 요구했다.

지난 3월 개발원조 전문 싱크탱크인 글로벌개발센터(CGD)는 일대일로 프로젝트 참여국 가운데 23국이 대(對)중국 부채로 재정상황이 취약해졌고, 이 가운데 파키스탄, 라오스, 몽골, 몰디브, 스리랑카,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유럽의 몬테네그로 등 8국은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 컨설팅업체 RWR은 지난 2013년 이후 진행된 일대일로 사업 가운데 32%에 이르는 4190억 달러(469조 원) 규모의 프로젝트가 사업 지연, 해당국의 여론 반발, 국가 안보 논란 등에 휘말린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 "결국 중국에만 유리한 사업" "채무상환 부담 커져"...높아지는 참여국들의 불만

이 중 가장 위험한 국가는 파키스탄이다. 파키스탄은 일대일로 핵심 프로젝트 중 하나인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사업에 참여하면서 자국 내 인프라 건설 자금의 80%(620억 달러)를 중국에서 조달했다. CGD는 “대출이자도 매우 높은 편이어서 파키스탄의 상환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국립대학의 한 교수는 "우리나라의 인프라 건설 사업이라지만, 결국 중국에 유리한 사업이다. 경제회랑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유리한 점은 많지 않다"고 내다봤다. 이어, "스리랑카를 봐라. 남부의 함반토타 항구는 중국의 자금 지원을 받아 지어졌다. 함반토타항의 이용률은 애초에 기대할 수가 없는 사업이었다. 스리랑카가 북쪽도 아니고 남쪽에 항구를 지어서 뭐 하겠나"고 일갈했다.

해당 교수는 이어, "결국 중국이 인도양 일대를 드나들기 쉽게 드나드려고 만든 것이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함반토타항의 이용률이 낮아 적자가 쌓이자 스리랑카항만공사는 2016년 지분 80%를 중국 국유 항만기업 자오상쥐에 매각하고 99년간 항구 운영권을 넘겼다. 결국 중국이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간 것이다.

패트릭 멘디스 미국 하버드대 중국연구센터 연구원은 “일대일로 영향권에 놓인 68개국 어디에서든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일대일로는 ‘하나의 길, 하나의 덫’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경고했다.

CGD는 다른 주요 채권국가와 달리 중국은 부채 문제가 발생할 때 이를 해결할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채권국 모임인 파리클럽에 가입하지 않고 임시 참가국으로만 등록돼 있다. 미국 일본 한국 등 파리클럽에 속한 22개국은 채무국이 공적 채무를 정상적으로 상환할 수 없으면 채무를 재조정해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 파키스탄과 말레이시아의 새 정부, 이전 정권부패 연루 가능성 제기

파키스탄에서는 지난 달 총선이 있었다. 정권 획득을 위한 여야 간 치열한 논쟁 속에서도 일대일로는 단연 중심에 섰다. 지금 총리에 오른 임란 칸 대표의 당시 나와즈 샤리프 정부에 대한 공격이 특히 화젯거리였다. 

당시 '테르히르 에 인사프(PTI)'의 임란 칸 대표는 지속적으로 CPEC의 일부인 라호르 경전철 사업을 비판해 왔다. "이러한 수익성 나쁜 거대 개발에는 항상 뇌물 문제가 뒤따른다"는 것이다. PTI는 3월 CPEC 사업이 중국 업체와 정부 간의 물밑 협상으로 진행된다고 보았고, 의회에서 해당 계획을 공개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파키스탄의 임란 칸 총리. 그는 한때 유명 크리켓 스타이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파키스탄의 임란 칸 총리. 그는 한때 유명 크리켓 스타이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실제로 임란 칸 총리는 25일 총선 이후, 총리에 오르자 현재 일대일로 사업에 본격 제동을 걸고 있다. 재무부 공무원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도대체 어떻게 이 빚을 다 갚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한 바 있다. 실질적으로 시행이 불가능한 사업이라는 것이다.

말레이시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5월 60여 년 만의 역사적인 정권교체를 이뤄 낸 마하티르 총리는 8월 방중 일정을 마치고 난 뒤 “일대일로를 지지하고 참여하기를 바란다”고는 했지만, 경제적 효과에 비해 너무 큰 빚을 지게 될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최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도 “중국은 가난한 국가에 큰돈을 빌려줄 때, 해당 프로젝트가 결국 그들의 것이 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시에 전 정권의 부패 스캔들에 중국 국영기업이 연계됐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그는 “중국과의 사업을 현지 업체와 계약했다면 그 비용은 나집 전 총리가 중국교통건설과 합의한 134억 달러의 절반 이하 수준에 그쳤을 것”이라며 “모든 돈이 철도 건설에 쓰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부 금액이 빼돌려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 검찰 역시 나집 전 총리의 측근이 국부펀드 말레이시아개발유한공사(1MDB)의 손실을 메우고 나집의 재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중국과의 철도 사업을 중개했을 가능성을 수사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마찬가지로, 파키스탄의 현지 언론들은 정권이 교체되자마자 파키스탄이 일대일로 사업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전 정부의 부패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 파키스탄의 일대일로 재검토, 우리 기업에 어떤 영향 미칠까?

파키스탄과 중국간의 인프라 건설 사업이 중단되면, 우리 기업들이 받는 영향은 어떨까? 한 재계 관계자는 "중국과 파키스탄 사이의 회랑이 건설되면 우리 기업들이 남아시아 시장 진출은 더욱 용이해질텐데, 무산된다면 우리에게는 아쉬운 부분"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물론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 프로젝트에 우리 기업이 직접적으로 참여하기는 애초부터 어려웠다. 그렇기에 몇몇 건설사들은 해당 프로젝트로 인해 나타날 파생수요에 집중한 것은 사실이다. 가령, 인프라 건설을 위한 관련 중장비 품목이 그러하다. 건설중장비는 이미 한국의 대 파키스탄 주요 수출품목이기 때문이다. 최근 3년간 500억 원 규모를 수출했다. 향후 경제회랑 건설이 보다 본격화될 경우 중장비 수요가 확대될 것은 자명했다.

하지만 최근 여러 남아시아 전문가들은 파키스탄이 중국 의존도에서 탈피한다면, 의외로 우리 기업들에게 도움이 될 여지가 많다고 주장한다. 특히나 자동차 부품 기업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국제문제 전문가는 "파키스탄 신정부가 중국발 투자예산을 줄인다면, 반드시 제조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원자재 및 중간재 수입 관세 인하를 통해 수출산업을 육성하려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파키스탄 경제의 경우 제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불과하다. 그 결과 경제성장이 고용, 투자, 저축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 내 위치한 한인기업들과 파키스탄의 교류 확대도 주목해야 할 사항 중 하다. 사진은 현대자동차 인도 첸나이 공장 속 모습. (사진=현대차)
인도 내 위치한 한인기업들과 파키스탄의 교류 확대도 주목해야 할 사항 중 하다. 사진은 현대자동차 인도 첸나이 공장 속 모습. (사진=현대차)

신정부 역시 이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다. 이슬라마바드 대학의 한 경제학 교수는 "자동차 산업 등 일자리 창출효과가 큰 제조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원자재 및 중간재 수입 관세 인하를 통해 수출산업을 육성하려 할 것"이라며, "실제로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 등 완성차 기업들도 내년 본격적인 양산을 목표로 현지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도에 위치한 우리 부품 기업들도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현대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한 업체는 "최근 파키스탄으로의 부품 납품을 고려 중이다. 신정부가 일대일로는 제쳐두고 이전부터 자동차 산업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재 규제 사항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기아차 역시 올해 2월 파키스탄에 대한 재투자를 결정했다. 약 3000억 원을 투자해 파키스탄에 반조립제품(CKD) 공장을 새로 짓는다는 복안이다. 지난 2004년 현지 시장에서 철수한 지 14년 만에 재진출이다.

파키스탄이 중국과 멀어진다면, 현재 인도 모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인도-파키스탄간 경제교역 규모도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실제로 모디 정부는 파키스탄의 경제 협력에 그 어느 때보다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경우 인도 첸나이 부근에 100여 개가 넘게 밀집해 있는 한국의 부품사들에게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경쟁 심화로 현대차의 인도 시장 내에서의 업황이 악화됨에 따라, 부품사의 고충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한 상황이다.

파키스탄의 한 업계 관계자는 "일대일로가 중단된다면, 이미 유입되어 있는 중국산 부품의 확산도 주춤할 가능성이 높지 않겠느냐. 중국과의 FTA도 따라서 엎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래저래 경쟁사인 한국산 부품에게는 유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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