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급보장 명문화, “국민 불안감 해소 위해 지급보장 명문화” vs. “국민연금이 회계상 부채로 잡혀 재정건전성 악화되면, 국가신용도 하락 우려”
-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을 통합하거나 국민연금 폐지하자는 목소리도 제기돼
- 보험연구원, 국민연금의 재정안정화 및 노후소득 보장 위한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과 사적연금 강화 제안

(사진=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지난 8월 29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국민연금 급여인상 사회적 논의 촉구 기자회견(사진=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데일리비즈온 권순호 기자] 국민연금제도 개선을 두고 논란이 쉽게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의 ‘지급보장 명문화’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운 감자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등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국민연금의 지급보장을 명문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정부에서 검토해보겠다고 하자, 이번엔 야당에서 대중영합주의라며 비판하는 등 관련 논쟁이 지속되는 모양새다.

한편, 국민연금 개선 방안을 두고 여러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공무원 연금 등 직역연금과 통합해야한다“거나 “국민연금제도 자체를 폐지하자“고 청원하는 글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이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반박하는 댓글이 달리는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발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연금제도 개선방안과 관련해, 보험연구원은 지난 2일 발표한 '국민연금 지속가능성과 제도발전 방향' 보고서를 통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선 국민연금과 사적연금의 역할을 분담하고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을 통합 관리하는 컨트롤타워를 설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민연금 지급보장 명문화 놓고 찬반 논란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ㆍ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국민연금 제도개혁 및 운영 방안과 관련해 "국가의 지급보장을 분명히 해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달라"라고 지시했다. (사진=연합뉴스)

현행 국민연금법은 국민연금 사업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관장하도록 하고 실제 사업은 국민연금공단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민연금에 대한 책임이 궁극적으로 국가에 있다고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급여 지급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반면,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특수직역연금은 급여부족분 발생 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도록 '적자보전조항'을 명시하고 있다.

기금 고갈에 따른 국민 불안감 해소, 다른 공적연금과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지난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장복심·유시민 의원이 국민연금 지급을 법적으로 명문화하자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후에도 국회에서 여러 차례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정부 반대, 여야합의 불발 등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최근 국민연금기금이 고갈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면서, 국민연금의 지급보장 명문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국민연금 제도개혁 및 운영 방안과 관련해 "국가의 지급보장을 분명히 해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달라"라고 지시했다.

덧붙여, 문 대통령은 "국민연금은 국가가 운영하는 공적 노후 보장제도"라며 "보험료를 납부한 국민이 연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것은 국가가 존재하는 한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이번 달 수립될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에서 국가의 ‘국민연금 지급보장 명문화’ 방안이 검토될 예정이다.

지급보장 명문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누가 국민연금 지급비용을 부담해야 하는지’를 놓고 세대 간 갈등이 야기되고, 모든 것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인식으로 인해 연금개혁이 진척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관련 전문가들은 지급보증을 명문화하면 국민연금이 회계상 국가부채로 잡히면 재정건전성이 하락해 국가 신용도가 낮아질 수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한편,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연금의 '국가지급보장 명문화'에 대해 "내 임기를 마치면 그만이라는 임기 이기주의"라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법적인 보장 이전에 미래세대의 부담능력을 키울 것인가, 연금의 지급능력을 키울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한다"면서 "지급보장만 약속하는 것은 일종의 대중영합주의 발언"이라고 비난했다.

"4대 연금 통합하자" "국민연금 폐지해야"...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폐지 불가능"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국민연금을 포함한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 4대 연금을 통합하자는 주장도 올라왔다. 국민연금 개혁을 위해선 직역연금부터 바꾸거나 형평성 차원에서 아예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국민연금과 공무원 연금의 수령액은 차이가 있다. 2017년 기준 국민연금 수급자가 1인당 받는 돈은 월평균 36만8570원이지만, 2016년 기준 퇴직공무원 1인당 월평균 퇴직연금 지급액은 241만9000원이다. 공무원연금 수급자가 국민연금 수급자보다 6.56배 많은 연금액을 받는다.

하지만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공무원연금은 국민연금보다 가입기간이 훨씬 길고, 퇴직금 명목으로 보험료를 더 많이 지불하기 때문이다. 2017년 기준 공무원의 평균가입기간은 33년이지만, 국민연금 신규수급자의 평균가입기간은 약 17년에 불과하다.

또한,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을 통합할 경우 오히려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불리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635조 원에 달하는 규모의 기금을 쌓아놓고 있지만, 공무원연금은 올해만 3조 원 가량의 국고보조금이 들어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경우 재정이 넉넉한 국민연금에서 공무원연금을 지원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며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손해를 볼 수 있다.

일각에선 국민연금을 폐지하자는 의견도 제기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내 노후는 내가 책임질 테니 국민연금을 폐지해달라"는 주장을 담은 청원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절차적으로 국민연금 폐지는 국민합의를 거쳐 국회에서 국민연금제도의 법적 근거가 되는 국민연금법을 폐지함으로써 실현 가능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국민연금 폐지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순수하게 경제성만 따져도 청산비용이 유지비용보다 훨씬 많이 들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최소가입기간 10년을 채우면 노후 연금을 탈 시기에 연금수급권이 주어진다. 국민연금제도를 폐지하더라도 어떻게든 이들이 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지급해야하며, 만약 기금이 부족하면 세금을 조달해서라도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국민연금 적립기금 규모는 635조원에 이르지만 연금 지급액을 충당하기 버겁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납세자연맹 추산 결과에 따르면, 2017년 말 수급자와 가입자에게 지급해야 할 국민연금 충당부채(책임준비금)는 1242조 원으로 적립기금의 2배 수준이다. 국민연금 폐지를 위해선 다음 세대가 나머지 금액을 세금 등을 통해 부담해야 한다.

또한, 국민연금을 폐지하고 기존 수급자와 가입자에게 돈을 돌려주려면 현재 금융시장에 투자하고 있는 수백 조 원을 회수해야한다.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9.67%, 현대자동차 8.44%, SK 9.20% 지분을 보유하는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의 대주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만약 국민연금이 금융자산을 한꺼번에 매각할 경우 국내외 주식과 채권, 대체투자시장은 붕괴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일각에서 국민연금을 폐지하고 각자 알아서 노후를 준비토록 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사회적으로도 그렇고 국민 개인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사진=국민연금관리공단)
지난 3일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제도의 개선방향에 대한 국민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전했다.(사진=국민연금관리공단)

보험연구원, “국민연금·사적연금 역할 분담과 연금 관리 컨트롤 타워 필요”

지난 2일 보험연구원이 발표한 '국민연금 지속가능성과 제도발전 방향' 보고서는 국민연금 재정이 악화된 원인은 저부담·고급여의 제도적 측면과 저출산‧고령화 현상, 경제 저성장 등 인구, 경제 환경이 부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재정안정을 추구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우리나라 공적연금제도의 구조적인 문제가 연금기금 고갈 시점을 앞당겼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 국민연금 보험료(9.0%)는 OECD 평균인 18.4%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반면, 소득대체율(39.3%)은 OECD 평균인 40.6%와 비슷하다.

저출산·고령화 현상도 재정안정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3차 재정계산에서는 2040년의 합계출산율을 1.42명으로 가정했으나 4차에서는 1.38명으로 0.04명 낮아졌다. 반대로 기대수명은 2040년 남성 84.7세, 여성 89.1세로 3차에 비해 각각 1.3세, 0.9세 높아졌다.

경제 환경도 악화됐다. 낮은 경제성장률과 더불어 높은 임금상승률, 낮은 금리 등 경제변수는 국민연금 재정 불안정을 심화시켰다. 낮은 기금투자수익률도 영향을 미쳤다.

다만, 보고서는 국민연금 재정상태가 선진국보다는 상대적으로 양호하다고 분석했다. 주요국들중 GDP 대비 공적연금기금 적립비율은 우리나라가 32.8%로 가장 높은 국가군에 속한다. OECD 평균인 11.7%보다 2.5배 이상 높다. 다른 선진국들의 적립비율은 일본 25.8%, 미국 15.4% 등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재정안정화와 노후소득보장이 적절하게 조화되는 정책을 추진할 것을 제시했다. 먼저, 재정안정화를 위한 보험료율 인상, 급여액 감액 등 국민연금제도 변경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장기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와 함께 국민연금만으로는 노후소득 보장을 책임지기 어려우므로 사적연금의 역할을 강화해 공사가 협력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보고서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을 다층 체계로 관리하는 컨트롤타워 설립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국민연금 기금고갈 문제는 단순히 현재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부담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다양한 연령층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 지난 3일 보건복지부에서 국민연금 개선과 관련해 ‘국민과의 현장 토론’, ‘온라인 의견수렴’, ‘설문조사’ 등을 다각도로 시행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한 만큼, 국민연금제도 개선을 위해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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