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관계 개선으로 통일 기대감 높아져...신남방정책 영향으로 통일 이후 연방제 관심도 상승
- 통일의 경제적 효과 분명히 있으나 무작정 호재로만 받아들여선 안돼
- 파키스탄은 민족갈등 극복 못해 방글라데시와 재분리...연방제, 원점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필요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이 이전에 한 나라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독립 후에 종교 분쟁을 이유로 두 국가로 갈라졌고,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다시 떨어져 나왔으니 세 국가가 식민 시절에는 한 나라였다는 주장도 어느 정도는 설득력이 있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가 최근 동남아시아·남아시아 국가들의 관계개선을 도모하는 '신남방정책'에 힘을 싣고 있다. 동시에 최근 남북관계가 호전됨에 따라 학계에서는 인도와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 국가들의 경험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 모두는 독립 이후 연방제를 채택하였고, 통일 이후 한국의 모습을 그려내는 데 있어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일 한국과 방글라데시 독립 이전 파키스탄은 공통점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방글라데시 독립 이전의 파키스탄(1947~1971). (이미지=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연구소)
방글라데시 독립 이전의 파키스탄(1947~1971). (이미지=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연구소)

◆ 1971년 이전 파키스탄과 닮은 통일 한국...연방제는 현실적인 대안일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지리적으로 분단되어 있었던 동·서 파키스탄이 상호 간 물리적인 접촉이 차단된 남북 관계와 비슷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한 연구원은 "통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당분간은 서울로 대거 몰려올 북쪽 주민들 때문에라도 통행과 거주 왕복이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라며 "과거 동서 파키스탄 형태의 연방제와 외형적으로 비슷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상대적으로 부유했던 서파키스탄이, 만성적인 빈곤과 저개발 후유증에 시달리던 동파키스탄(오늘날의 방글라데시 지역)의 주민들과의 소통을 차단하고, 권력 분할을 저해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당시 파키스탄은 외형적으로는 양당제 정당정치와 민주주의를 채택했었고, 이 경우 전체인구의 과반을 차지하는 동파키스탄의 뱅골 족이 상하원 모두에서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회경제적 자원을 독점하고 있었던 서파키스탄의 지도자들이 이를 반길 리 없었고, 분리독립의 씨앗은 사실상 여기에서부터 탄생했다.

한국이 통일 이후 연방제를 채택한다면, 필연적으로 양당제로 정당정치가 개편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이 경우 파키스탄이 겪었던 갈등을 재현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북한은 상원의원 수를 남북한 대표자가 반씩 가져가는 안을 제안할 것이고, 남한 입장에서는 인구 비례를 원칙으로 하는 하원에서도, 주 간의 형평성을 고려하는 상원에서도 각각 과반을 차지하고 싶을 것이다.

만약 남한이 양보해서 상원의원 수를 남북한이 반씩 쿼터를 둔다면, 북한에게 상원을 넘기는 행위라는 지적이 나올 것이 분명하다. 한 남북문제 전문가는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정당이 상원의 50%를 차지할텐데, 더불어민주당이나 자유한국당이 이를 무슨 수로 당해내겠느냐"는 논리이다. 

같은 상황에서, 파키스탄이 택한 길은 단원제였다. 1970년 군부 지도자들은 단원제로의 헌정 질서 복귀를 선언했으나, 이해관계가 여럿 나뉘어져 있었던 서파키스탄의 정당들이 동파키스탄의 생활환경 개선과 빈곤 타파를 위해 한데 뭉쳤던 아와미 연맹(Awami League)을 이겨낼 수 없었다. 아와미 연맹은 당시 동파키스탄에 배석된 의석을 싹쓸이하며 일약 다수당으로 떠올랐다. 이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서파키스탄의 지도자들은 전쟁을 선언했고, 방글라데시 독립 운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과연 통일 한국은 어떨까? 혹자는 남북간의 다양성과 잠재적인 갈등을 조율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연방제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연방제와 분권화라는 개념 모두 북측의 권한과 목소리를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은 제도임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과연 북측의 단일정당이 남측의 물적, 인적 자원을 활용해서 북쪽의 개발을 촉진하는 법안을 잇따라 의회에 제출하고, 남측이 이를 효과적으로 저지하지 못하는 상황을 우리 일반 시민들이 쉽게 납득할 수 있을까?

최근 연이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등으로 통일에 대한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사진=청와대)
최근 연이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등으로 통일에 대한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사진=청와대)

◆ 기업들도 섣부른 '통일 특수' 기대는 금물

최근 기업들 역시 남북 경협 확대가 가져다주는 내수 '특수'에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제 2, 3의 개성공단이 들어설 것이란 말도 정계 안팎에서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하지만 과연 통일과, 통일 연방제가 기업들에게 더 좋은 사업 환경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는 다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 같다. 파키스탄의 예를 보았을 때, 물론 서파키스탄의 군부와 정권 차원에서의 방해도 있었지만, 서파키스탄의 기업가들이 동파키스탄의 각종 인프라 건설 사업에 참여한 예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 말한 동파키스탄의 아와미 연맹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정치가들은 거의 경공업 분야에 종사하는 토착 기업인들인 경우가 많았다. 북한 역시 군부가 몰락하고 정당 정치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기존 제조업이나 제조업 국영기업의 유력 관계자들이 정치로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분권화는 북한 내 지역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토착 기업들의 성장을 촉진할 수는 있을망정, 기존 국내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제한적일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중국 다롄에서 2016년 열린 '제1회 중국 다롄 전자상거래 산업·상품 박람회'에서  북한 참가기업 관계자가 전시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국 다롄에서 2016년 열린 '제1회 중국 다롄 전자상거래 산업·상품 박람회'에서 북한 참가기업 관계자가 전시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통일연구원 출신의 한 연구자는 "북한은 분단 이후 약 60년 동안 큰 정치적 격변 없이 토착 기업들과 주민, 군부의 연결 고리가 단단히 유지된 곳"이라며, "북한의 도로를 남한의 70% 수준까지 올리는 데 들어가는 시설비가 1052조 원이 든다고 해서 그 기회가 왜 전부 남한 기업들에게 갈 것이라고 생각하나"고 분석했다. 

이어, "연방제로 지방정부의 자치권이 강화되었는데, 만약 이들이 토착 기득권층과 결탁해 부패한다면 남한 기업들의 진출 통로는 더욱 좁아질 것"이라며, "사회 개혁이 동반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쪽 지방 정부를 강화시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최소한 자원과 개발에 대한 부분에서의 집중화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한국의 몇몇 건설사들은 통일을 맞아 각자 서너 개 쯤의 광산 개발권 쯤은 받을 수 있을까 기대하는 눈치다. 포스코 역시 최근 북한에 대규모 제철 공장을 짓는 데 관심이 크다. 포스코의 한 관계자는 "현재 우리는 호주나 칠레에서 철광석을 가지고 온다"며, "통일이 되면 북한에 공장을 현대화시켜주고 대신에 철을 가져오면 된다. 북한에는 어마어마한 자원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연방제로 인해 투자결정 등에서 자치권을 지닌 북측의 지방정부가 포스코에 특별히 호의적일 수 있을까? 한 관계자는 "포스코가 제철 생산 등에서 중국에 경쟁력을 뺏긴 지 오래인데, 양강도나 자강도의 지방정부가 어마어마한 보조금을 받는 중국의 값싼 제철사들을 놔두고 굳이 왜 포스코에 투자하겠나?"며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기도 했다.

 ◆ 외부 세력의 개입 여지도 남아 있어

혹자들은, 그래도 통일이 남한 기업들에게 기회는 틀림없는 기회로 작용하지는 않겠냐고 맞받아친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남측과 북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의원들이 중앙 정치에서 자치권을 두고 다툼을 벌일 경우 기업들에게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동서 파키스탄의 갈등이 더욱 격화되자 서파키스탄의 지도자들은 동파키스탄에 대한 인프라 투자를 공공연히 방해했다. 1970년 동파키스탄 지역에 초대형 태풍 볼라 호가 동파키스탄 지역을 강타해 최대 50만 명이 사망했을 때는 서파키스탄 정부가 구호에 아예 무성의하게 일관한 적도 있을 정도다. 

그 자리는 재빠르게 인도의 기업들이 메웠다. 인도의 캘커타를 중심으로 성장한 로컬 기업들은 동파키스탄에서 생산된 모직물과 기타 경공업 제품들의 구입에 관심이 있었다. 인도의 자본이 동파키스탄의 항만을 시작으로 60년대에 도로와 유통 등에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경제인들의 지분이 상당했던 아와미 연맹의 지도자들과도 차츰 관계를 맺어나간 인도의 기업인들은, 동서 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하자 아예 인도 정부에 인도 군의 파키스탄 내부 개입을 적극 요청했다. 

인도 상하원에 걸친 전방위 로비는 효과가 있었고, 인도 정부는 신속하게 군을 파견해 동파키스탄에 진격했다. 서파키스탄의 군대는 인도 군을 당해낼 수 없었고, 그렇게 방글라데시의 독립이 이루어졌다.

파키스탄의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파키스탄과 인도의 작전사령관. (왼쪽부터)
파키스탄의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작전사령관. (왼쪽부터)

이는 연방제가 처한 문제이기도 하다. 북측 정부에 중국 자본 등의 입김이 강해진다면 자치권을 얻은 지방정부는 통일정부의 통제권을 벗어날 수도 있다. 이는 우리 기업에게 있어서도 좋은 소식은 아니다. 이에 최근 한국외국어대학교의 한 교수는 "연방제는 딜레마다"며 소신을 밝혔다. 

그는 "자치권을 주자니 북한 지방정부가 늘어난 협상력을 무기로 우리 기업들의 진출을 방해할 요소가 크고, 자치권을 주지 않자니 지방정부가 아예 반발하여 중앙정부의 통제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는 이어, "자치권을 주지 않는다면 중국 및 러시아의 노동력과 자본 유입이 남한 기업의 진출보다 자유로워 질 것"이라며 통일연방제 구상에 경고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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