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암호화폐 규제로 시끌...지방정부는 반발, 학계도 갑론 을박
- 해외 지방정부는 블록체인 기술 적극 수용...'자치권 확대하려는 시도'로 이해해야
- 블록체인 기술 규제 여부, 분권화 체제의 새로운 갈등 요소로 부각

(사진=픽사베이)
분산화 기술에 기반한 블록체인 개념도. (사진=픽사베이)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요즘 분권화를 연구하는 학계에서는 고민이 많다. 바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존재 때문이다. 블록체인 등의 개념이 어렵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이들이 분권화에 미치는 영향이 기존과는 다른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분권화라는 개념이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니다. 90년대에 중앙집중화되어 있던 동구권 국가들이 몰락하고, 탈식민 국가들에서는 민주화가 진행되며 자연스럽게 논의되기 시작되었다. 한국 같이 기존의 경제성장 모델에서 한계를 느낀 국가들은 그 대안으로써 분권화에 주목하기도 했다.


권력 분할이라는 개념이 워낙 애매하기도 하고, 연구가 이루어지는 공간적 맥락이 다양하다보니 통일된 개념이 부족한 것이다. 정치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예산적, 정치적, 행정적 분권화를 나누어 설명한다. 상대적으로 연구가 많이 진행된 예산적 분권화와는 달리, 정치적이나 행정적 분권화를 어떻게 수치화하고 예산과 연계시킬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거기에다 최근에는 블록체인이라는 개념이 추가된 것이다.

블록체인은 워낙 모든 경제주체가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인데다가, 최근에는 암호화폐가 기존의 화폐 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다는 논의까지 제기되면서 기존의 예산 분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던 정치, 경제학자들이 당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해외 지방정부에서는 블록체인 기술 적극 도입


하지만 몇몇 전문가는 단순하게 접근할 필요도 있다고 역설한다.

연방국가에서 블록체인 기술은 암호화폐를 통해 지역 경제 생태계를 활성시키거나, 추가 예산을 확보함으로써 주정부의 운신의 폭을 넓혀줄 수 있다는 것이다. 중앙 정부 차원에서의 법제가 마련되지 않았을 때를 기회로 삼아 발빠르게 움직이는 주체들도 있다.

가령, 6일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인도의 텔랑가나 주 정부는 주도(州都) 하이데라바드(Hyderabad)에 블록체인 지구를 형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해당 지구에는 인도 정부의 기술 혁신을 목표로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이 사용할 건물이 건설될 예정이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텔랑가나 주정부는 직접 나서 해당 지구 인프라 건설을 지원하며, 블록체인 스타트업을 위한 다양한 정책적규제적 지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호주의 한 주정부는 블록체인 기술을 관광업에 접목했다.

최근 현지의 한 언론은, 호주 퀸즈랜드 주정부가 암호화폐 스타트업에 830만 호주달러(약 69억 원) 보조금을 지원한다고 보도했다.

퀸즈랜드 주정부의 각료인 케이트 존스(Kate Jones)은 암호화폐 활용에 특히 긍정적이다. 그녀는 이달 초 “지역 기업이 암호 화폐를 활용하면 관광객들이 손쉽게 결제를 할 수 있어 관광업 진흥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암호화폐를 활용해 관광객들이 숙소예약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노력중이며, 번더버그와 같은 지역을 겨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호주 퀀즈랜드 주정부의 교육부 장관인 케이트 존스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의 지지자로 유명하다. (사진=케이트 존스 페이스북)
호주 퀀즈랜드 주정부의 교육부 장관인 케이트 존스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의 지지자로 유명하다. (사진=케이트 존스 페이스북)

해당 분야의 선진국인 미국의 경우에도, 주 정부가 잇따라 블록체인 기술에 우호적인 법안을 통과시키고 있다콜로라도 주는 5월 정부 기록 보관을 위해 블록체인 기술 사용에 합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3월에는 테네시 주가 전자 거래를 위해 블록체인 기술과 스마트 컨트랙트 사용을 공식 승인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같은 기간 애리조나 주는 암호화폐로 세금을 낼 수 있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한국에서는 규제 눈치...지방 정부의 반발 움직임도

반면, 한국은 암호화폐공개(ICO, 암호화폐공개)를 금지한 전 세계 2개 국가 중 하나다. 다른 한 곳은 중국이다. 

최근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유럽 블록체인 엑스포 2018’에는 ‘한국인과 중국인은 우리 프로젝트 ICO에 참가하지 마라. 불법이다’라는 안내문을 내건 부스까지 있었다고 한다. 반(反) 암호화폐 정책 경쟁에서는 한국 정부가 전 세계에서 남부럽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한국의 지방정부들이 이 같은 방침을 달가워 할리 없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지난 6·13 지방선거 유세 과정에서 “부산에도 스위스 추크(Zug)와 같은 크립토 밸리를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크립토 밸리는 암호화폐를 뜻하는 ‘cryptocurrency’와 마을을 의미하는 ‘valley’의 합성어다.

스위스의 중소도시 추크에는 최근 ICO를 하려는 250개의 블록체인 기반 기업이 몰려 들어 디지털 금융 허브로 거듭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텔랑가나 주정부가 꾀하는 구상도 여기에 바탕한 것이다. 실제 추크에는 11만 명에 달하는 새 일자리도 생겼다.

취리히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이 걸리는 거리에 위치한 평화로운 중소도시 추크는, 최근 블록체인 관련 기업들과 전문가들로 최근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도시 중 하나로 떠올랐다. (사진=스위스관광청)
취리히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이 걸리는 거리에 위치한 평화로운 중소도시 추크는, 최근 블록체인 관련 기업들과 전문가들로 최근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도시 중 하나로 떠올랐다. (사진=스위스관광청)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제주코인’ 발행을 꿈꾸고 있다. 원 지사는 지난 6.11 지방선거에서 “제주미래투자를 설립해 제주코인을 발행하고 이를 교통, 행정, 공항, 항만, 물류 등 공익 목적으로 상용화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크립토 밸리 아이디어는 이철우 경북 도지사,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도 언급한 바 있다.

ICO 불허, 암호화폐 거래소 폐지 엄포 등 조치에 대해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셈이다.

지방정부들이 저마다 크립토 밸리를 조성하거나 코인을 발행하려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재원 마련이다. 블록체인 기업을 유치해 세수를 확보할 수도 있고 자체 코인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다. 둘째는 거주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해 도시 거주 만족도를 높이는 데 코인이 유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술규제가 새로운 형태의 정부 간 갈등 유발할 수 있어

앞서 언급했던 인도나, 호주, 미국과 스위스 같은 경우는 중앙정부가 블록체인에 우호적이고, 애초에 지방정부의 권한이 강한 편에 속하기 때문에 지방 차원에서의 기술 발전이 도모될 수 있었다. 이 같은 경우 추후 더 높은 수준의 분권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사례를 든 네 국가 모두가 공통적으로 연방국인 점도 흥미롭다.

반면 한국은 분권화 정도가 매우 낮은편에 속하는 단일국가이며, 지자체간 재정격차에 기인해 분권화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블록체인 기술은 재정격차를 해소하고, 지방정부에 자연스레 정치적, 행정적 자치권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라고 인식하는 시각도 있다.

한 전문가는 “분권화는 기본적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제로섬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며, “지방정부의 권한확대는 흔히 중앙정부의 권한축소로 이어진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 적용은 다르다. 중앙정부가 차지하고 있는 세수 영역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자체적으로 투자와 세수 확보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는다해도, 규제 철폐는 필요하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다른 전문가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활동영역을 좁히는 쪽으로 법제를 마련하다보면, 정부 간 갈등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진정으로 분권화를 고려하고 있다면, 최소한 ICO 규제만이라도 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원희룡 지사가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해외에서라도 ICO를 추진해 제주 토큰을 발행하고 지역 발전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말하자, 관계자들은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유관기관의 한 엔지니어는 “국내 도지사가 코인을 발행한다는데, ICO는 정작 외국에서 한다고요?”라며 “다른 나라에서 어떻게 볼 지 모르겠네요. 솔직히 잘 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분권화 추진과 관련해 새로운 갈등 요소로 부각되고 있는 블록체인 이슈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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