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생산성 높이기 위한 습도 및 온도조절 장치가 출발
-여름철 낮은 온도에 내성 생기며 '에어컨 없이는 못 사는 세상'
-노동 생산성과 산업발전에 직결...이제 국가도 규제 못할 대상돼

윌리엄 캐리어. (사진=캐리어社 공식 웹사이트)
윌리엄 캐리어. (사진=캐리어社 공식 웹사이트)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올해 한국의 여름은 연일 폭염이 이어지며 한낮 기온은 여태껏 경험한 적 없었던 40도에 육박하고 있다. 요즘같이 에어컨이 가져다주는 시원함이 고마울 때가 있을까. 

그 근거 중 하나로 최근들어 많은 사람들이 에어컨을 발명했다는 '윌리엄 캐리어'의 이름에 익숙해진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최근 윌리엄 캐리어의 존재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윌리엄 캐리어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 '앞으로 캐리어의 기일을 챙겨야겠다' 등의 유행어를 낳는 풍경도 펼쳐지고 있다.

에어컨, 노동 생산성 높이기 위해 발명돼

하지만, 잘 알려져 있듯이 윌리엄 캐리어는 세계 시민의 쾌적함을 위해 에어컨을 발명한 것은 아니었다.

20세기의 에어컨은 상품보존을 위한 것이었다. 강한 열기 때문에 인쇄기 및 종이가 상하는 것에 화가 난 뉴욕의 어느 인쇄소 사장은, 엔지니어인 윌리스 캐리어에게 주변 습도와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기계를 주문했다. 이에 1902년, 냉각제가 든 관으로 공기를 통과시키는 기계가 만들어졌고, 출시 직후 대성공을 거뒀다. 

거기에 더해 부가적인 효과로 노동자들이 이 시원함을 선호하게 된 것이었다. 우리가 오늘날 느끼는 그 시원함이다. 

기업에서 앞다투어 에어컨을 갖추어 놓는 것은 생산성과 직결된 문제였다. 폭염이 발생하면 노동자들의 생산성과 생산속도가 떨어지고 결근율이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추가 휴식시간을 제공하거나 작업시간을 앞당기곤 했지만, 생산을 아예 중단하기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에어컨은 영화관에도 발빠르게 배치되었다. 19세기 말의 관객들이 영화관을 자주 찾았던 계절은 겨울이었다. 누가 덥고 어두운 공간에 몇 시간씩 갇히고 싶겠는가. 따라서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날이면 영화관은 텅텅 비거나 문을 닫곤 했다. 하지만, 1940년이 지날 무렵, 더 이상 여름은 극장가의 불황기가 아니게 됐고, ‘여름철 블록버스터’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영화관 점령 이후, 에어컨은 비슷한 공식에 따라 기차, 식당, 상점, 호텔을 정복했다. 1937년 한 전문가는 “에어컨은 대형 프랜차이즈부터 시작해 지역 프랜차이즈 건물로 퍼져 나갔고, 그 다음은 개인상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규모 동네상점까지 입성했다”고 밝혔다.

에어컨이 없는 곳은, 에어컨이 있는 곳을 이길 수 없었다. 당시 에어컨은 현대성을 상징했고, 그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 '에어컨 자본주의'의 등장

미국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에어컨 바람을 원한다. 알래스카에서는 전체 호텔 중 1/4이 에어컨을 상시 가동하고 있다. 열기에 대한 미국의 내성이 한없이 떨어진 탓에, 이제는 대부분 여행자들이 ‘너무 춥다’고 느낄 정도의 실내온도를 미국 국민들은 선호하게 됐다.

에어컨이 초호화호텔이나 열차의 일등칸에만 있었던 시절처럼, 인공적 냉기는 곧 고급서비스이자 또 세련됨이 되었다. 2005년의 <뉴욕타임스> 부록 ‘유행과 스타일’에 따르면 뉴욕의 패션스토어들은 취급제품이 고급일수록 매장온도를 낮춘다고 한다. 저가형 매장 올드 네이비의 온도는 약 26.8도인데, 이는 고가의 메이시스몰보다 4℃ 높으며 명품 부티크 버그도르프 굿먼에 비하면 7℃ 가까이 높다.

경제개방으로 인해 경제력을 쌓았고, 영어를 사용하며, 카스트, 종교 등 기존의 인습에 구애받지 않게 된 인도의 신흥 중산층은 더 이상 'NON-AC'(에어컨이 없다는 뜻)마크가 붙은 식당에서는 밥을 먹지 않고, 최신 에어컨 설비가 장착된 택시만을 골라탄다. 

인도에서 가장 흔한 NON-AC 택시. 아예 창문을 뗀 택시가 흔하다. 하지만 한때 인도의 대도시 공항이나 기차역 주변에 상주했던 이 택시들도, 에어컨이 달린 택시들에 밀려 점차 역이나 공항 외부로 자리를 옮겨가고 있다. (사진=인도 뭄바이 관광청)
인도에서 가장 흔한 NON-AC 택시. 아예 창문을 뗀 택시가 흔하다. 하지만 한때 인도의 대도시 공항이나 기차역 주변에 상주했던 이 택시들도, 에어컨이 달린 택시들에 밀려 점차 역이나 공항 외부로 자리를 옮겨가고 있다. (사진=인도 뭄바이 관광청)

인도 남부의 해안도시인 첸나이의 에그모어 역 인근의 한 식당 주인은 최근 "에어컨이 없으면 장사가 되지 않아요. 에어컨이 달린 방을 더 늘리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 이 식당은 여느 현지 식당과 같이 1층은 에어컨 없이, 2층은 에어컨을 구비해 운영하고 있다. 2층을 이용하는 손님에게는 별도의 서비스 요금을 청구하는 식이다. 하지만, 요즘 이 식당은 2층에 자리를 잡기 위해 1층 계단 밑까지 길게 줄을 늘어선 손님들로 북적인다.

인도의 최근 경제발전을 상징하듯, 이 식당의 주인은 올해 초 에어컨 좌석을 1층에도 확대하기로 결심했다. 에그모어 역 주변을 둘러싼 다른 식당들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상지타'라고 불리는 한 유명한 프렌차이즈 식당은 에어컨을 1층에 배치하고, 동시에 아예 현관문도 떼었다. 더위를 못 이긴 손님들을 자연스레 끌어들이려는 전략이다.

세계에서 가장 더운 나라 중 하나인 싱가포르를 가도, 덥다는 느낌이 적은 것은 이유도 이와 같다. 건물 주변의 모든 상가가 줄지어 문을 열어놓고, 길가의 관광객의 땀을 식혀주는 동시에 그들의 발길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싱가포르의 한 환경장관은 2000년대 초 기업인과의 모임에서 "에어컨은 싱가프로 경제의 핵심이다"고 밝힌 바 있다. "에어컨이 없었다면 대다수 시민들은 최첨단 공장에서 일하는 대신 코코넛 나무 그늘에 앉아 더위와 습기를 피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전력난' '자연환경 파괴' vs '위생 개선' '산업환경 개선'...명암 엇갈려

물론 모든 사람이 에어컨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를 우려하는 사람에서부터, 한국에서는 전력난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에어컨의 냉매제로 쓰이는 프레온가스가 오존층 파괴의 주범이라거나 에어컨 실외기로 인한 도시 열섬 문제 등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과학자들은 오늘날 비만이 증가하는 원인의 하나로 에어컨을 꼽는다. 사람은 시원할 때 더 많이 먹는 경향이 있으며, 에어컨 때문에 집 안에 틀어박혀 운동을 하지 않게 된다. 또한,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 더 이상 열량을 소모할 필요가 없다.

한편 미국의 여성주의자들은 에어컨이 성차별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비난한다. 사무실의 에어컨 온도가 바지, 넥타이, 셔츠 차림인 남성들에게 맞춰져 있으므로, 여름에는 대부분 원피스에 샌들 차림인 여성들에게는 춥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래드히카 상가니는 2016년 사무실의 에어컨 온도는 성차별적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사진=래드히카 상가니 트위터)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래드히카 상가니는 2016년 사무실의 에어컨 온도는 성차별적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사진=래드히카 상가니 개인 트위터)

하지만 에어컨은 인권·환경운동가에게 딜레마를 안겨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에어컨은 지구 남반구의 위생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도의 첸나이나 싱가포르에서는 과거 말라리아 같은 열대병이 만연했는데, 사람들이 모기에 노출되는 비율이 줄어 여름철의 사망률이 감소했던 것이다. 미국 남부에서는 1979년부터 1992년 사이에 폭염으로만 5000명 이상이 사망하기도 했었다.

또한, 병원과 수술실에 필수품인 에어컨은 통제된 온도를 요하는 의약품 생산에도 필수적이다. 인터넷 작동에 필요한 데이터센터들의 열을 식히는 데에도, 에어컨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에어컨 사용, 국가적 관심사로 자리잡아

그렇기에 전 세계의 어느 정부도 에어컨 사용제한을 고려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가령, 2008년에 UN은 뉴욕본부의 온도를 3도 올림으로써 모범을 보이려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솔선수범은 별 효과를 얻지 못했고, 일부 도시들만이 소극적인 정책을 도입했다. 기껏해야 2015년에 뉴욕 시가 상점들이 에어컨을 켜놓은 채 문을 열어두는 것, 이른바 '개문냉방'을 금지했다. 개문냉방을 둘러싼 논란은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문제다.   

반면, 전력사용량을 강제로 감축해야 했던 나라도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인들은 전력사용량을 대폭 감소시켜야만 했으며, 따라서 에어컨 사용량을 줄여야만 했다. 이에 도쿄에서는 와세다 대학의 어느 교수가 사무직 노동자들의 생산성 감소를 계산했는데, 이는 1일 노동량 중 30분 손실에 해당했다.

최근 일본에서도 기온이 40도를 넘나들며 온열 질환자 발생을 우려한 정부가 에어컨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원전사고 이후 일본인들 사이에 절전 습관이 배어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 한국 정부가 "폭염을 국가재난 수준의 재해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국민들의 에어컨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조치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국민의 안녕만을 고려한 조치라고 볼 수 있을까? 에어컨은 이미 국가 경영에 있어서도 필수적인 동반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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