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전남 여수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회 지방자치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전남 여수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회 지방자치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명실상부한 지방분권을 위해 지방분권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진=청와대)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최근 지방이양일괄법안이 마련되며 문재인 정부가 목표로 내건 지방분권 추진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에 따라, 한국에도 '분권화'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0일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를 통해 중앙행정권한과 사무 등을 지방에 이양할 수 있도록 하는 지방이양일괄법안이 마련되었다. 지방이양일괄법은 2004년부터 제정이 추진됐지만 각 부처의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아 제정이 미뤄져 오다, 지난 5월 여야가 지방이양일괄법을 운영위원회에 회부하는 데 합의하면서 입법 실현이 가능해졌다. 이후 자치분권위가 각 부처와 협의를 거쳐 이번에 법안이 마련됐다.

잘 알려져 있듯이, 분권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오랜 국정철학 중 하나이다.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청와대 주도 개헌안에 '대한민국은 분권형 국가를 지향한다'는 조항에서 그 바람이 잘 나타나 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분권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취임 초기인 지난해 6월 청와대에서 열린 17개 시·도지사 간담회에서도 "대한민국을 연방제에 준하는 분권형 국가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오늘날의 시도 행정구역에 연방제의 '주'에 상응하는 자치권을 부여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따라서 6월 지방선거의 여파가 잦아든 이 시점에서 개헌안과 분권화에 대한 논의는 다시금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분권화, 개념 규정부터 필요...포괄적 논의 뒤따라야

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한국의 미래를 "연방제에 준하는 분권화"로 구체화시킨 바 있다. 하지만 연방제와 분권화는 반드시 상응하지 않는 개념임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연방국임에도 불구하고 폭넓은 자치권을 부여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연방국이 아님에도 연방국에 상응하는 자치권을 허용하는 경우도 있다.

러시아 사하 자치공화국의 수도인 야쿠츠크 시의 모습. 명목상은 대통령을 선출하고 독립적인 국기를 사용하는 자치공화국이지만, 실질적으로 공화국의 운영에 필요한 자금과 권한은 모스크바 중앙정부에 의존하고 있다. (사진=박종호 기자)
러시아 사하 자치공화국의 수도인 야쿠츠크 시의 모습. 명목상은 대통령을 선출하고 독립적인 국기를 사용하는 자치공화국이지만, 실질적으로 공화국의 운영에 필요한 자금과 권한은 모스크바 중앙정부에 의존하고 있다. (사진=박종호 기자)

전자의 대표적인 예는 러시아다. 소련 붕괴 이후 신생 러시아는 한때 지방정부와 공화국에 재정자립도를 확보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했지만, 푸틴 시대 이래 현재 지방정부는 중앙정부로부터 부여되는 예산에 주 행정을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반면, 후자의 예는 중국을 들 수 있다. 세계은행과 IMF가 발표하는 분권화 통계를 보면 중국은 매년 예산적, 정치적, 행정적 분권화 정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의 상식과는 다소 다른 결과이지만, 중국의 여러 소수 민족들의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보존받고 있다는 것이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이렇듯 중앙집권 국가가 '분권화' 혹은 '연방화'한다는 것은 과거에는 지역균형발전이나 지역경제 성장과는 거리가 멀 때가 많았다. 특히, 제 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연방국의 경우, 서로 이질적인 국내의 민족 및 집단을 융화시키기 위해 명목상의 자치권을 부여하는 의미가 더 강했다. 

경제 측면의 분권화 논의는 민주주의 성숙 후 이뤄져  

그렇다면 순수하게 경제발전의 의미에서 분권화가 논의된 것은 언제일까?

제 3세계에서의 분권화는 민주주의의 성숙과 함께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분권화 연구의 거장인 팔레티(Falleti) 교수의 경우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의 국가들은 민주화가 지방정부의 권한 강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논했다. 중앙정부의 권한독점에 따른 비효율이 비판을 받고, 지방정부가 권한을 얻음에 따라 분권화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가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환경은 다소간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 등 유럽국가와 남아프리카 공화국 같은 제 3세계 국가의 분권화도 위와 비슷한 배경에서 추진되었다.

인도에서도 1993년 헌법 개정을 통해 민주화와 개혁개방, 예산 분할 같은 개념들이 동시에 논의되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도 90년대 말 아시아 금융위기와 군부독재가 종식됨에 따라 경제 발전의 수단으로 분권화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분권화의 경제발전 효과는 아직 물음표...좀더 지켜봐야

그렇다면 정말 분권화는 경제 발전에 효과가 있을까?

아직까지의 대답은 '글쎄'다. 언급된 나라들 모두에서 늘어난 예산과 정치적 권한을 효율적으로 사용한 예는 드문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지방정부의 부패가 경제발전의 장애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필리핀에서의 분권화 시도는 지난 2005년 남부의 무슬림 다수가 거주하는 지역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바 있다. (사진=연합뉴스)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필리핀에서의 분권화 시도는 지난 2005년 남부의 무슬림 다수가 거주하는 지역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바 있다. (사진=연합뉴스)

필리핀도 7월 들어 연방제 개헌에 착수하고 있다.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현지언론을 통해 "농촌 경제개혁을 위해 권력분산이 필요하다"고 설파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번 개헌을 두테르테 대통령의 정권 연장을 위한 '꼼수'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 경우, 지방정부가 안정적으로 세제 기반을 마련하기 힘들다는 보도도 잇달았다.

벨기에는 반대로 지방정부의 힘이 너무 강하다 보니, 지방정부간 알력다툼으로 인해 국가 산업발전이 저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권다툼으로 인해 의회가 구성되지 못하거나 해산되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연방제와 분권화 논의는 늘 각국의 정치적 환경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양당제와 다당제 사이에서 현재 갈 곳을 찾고 있는 현 한국의 정치 상황속에서 분권화는 과연 어떤 결말을 맺게 될까? 분권화가 자원의 효율적 배분으로 이어지기 위해 필요한 정치적 조건을 규명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학계의 해결되지 않는 숙제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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