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미·중 간 무역마찰에서 촉발된 무역전쟁은 어느덧 EU 및 기타 경제블록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특히, 미국 행정부가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수입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경우, 무역전쟁은 더 확전될 것이 명료해 보인다. 

통상 전문가들도 우려를 나타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위해 무역 이슈를 지렛대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인 만큼, 그 이전에 자동차 관세 부과를 확정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미국 상무부는 워싱턴 D.C에서 현지시간으로 19일 관세 부과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공청회에 돌입했다. 이에 따라, 늦어도 이달 말에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우려가 현실화될 경우, 국내 자동차 업계는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 우리나라가 지난해 미국에 수출한 자동차는 약 84만5000대로, 전 세계에 수출한 자동차(253만 대)의 3분의 1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1.4%와 8.3%에 달한다. 85만 대에 육박하는 수출차에 관세 25%가 확정되면 사실상 현지에서 퇴출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트럼프 정부의 자동차 관세 부과 확정을 앞두고 현대·기아차, 르노삼성 등 국내의 완성차 업체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정부의 자동차 관세 부과 확정을 앞두고 현대·기아차, 르노삼성 등 국내의 완성차 업체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국내 자동차 업계 바짝 긴장...정부도 발빠른 대응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기아차, 르노삼성 등 국내의 완성차 업체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모두가 수출량의 상당수를 미국시장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자동차는 울산공장에서 투싼, 코나, 제네시스 등 연간 33만 대 가량을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관세가 25%로 오르면 투싼 현지 가격이 500만 원 정도 상승하는 등 가격 경쟁력이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부품 가격도 덩달아 상승하기 때문에 앨라배마 현지 공장에서 생산하는 차량도 가격상승 압박을 받게 된다. 자동차업계에서 현대차 수출이 절반 이상 줄어들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현대차 노조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전적으로 불리한 한미 FTA 재협상 결과를 무시하고 한국 자동차와 부품에 관세 25%를 추가 적용한다면 공정 무역에 치명적 손상을 줄 수 있다"는 논평을 낸 것은 이러한 위기감을 반영한다.

부산에 본사를 둔 르노삼성차는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아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타격이 불가피하다. 르노삼성은 지난해 부산공장에서 26만4037대를 생산해 17만6271대를 수출했다. 이 가운데 미국 수출물량은 전체 생산량 절반에 육박하는 12만3202대다. 전체 수출물량 69.9%가량이다. 완성차 업계 부진은 자동차부품업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지역 민심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기아차 광주공장은 지난해 생산차 49만2233대 가운데 37.3%인 18만3959대를 미국으로 수출했다. 쏘울(전기차 포함) 10만9625대, 스포티지 7만4334대 등이다. 이 중 쏘울은 광주공장 생산량 중 66.2%를 미국시장에 수출했다.

2016년 말 기준으로 기아차 광주공장은 광주 제조업 종사자 10%, 광주시 총생산액 32%, 광주시 총수출액 40%를 각각 차지했다. 수출물량 감소에 따른 매출 저하나 휴업은 기아차 광주공장에 부품을 납품하는 1∼4차 협력업체의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정부에서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2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참석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관세부과 대상에서 한국을 제외해 줄 것을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에게 강력히 요청했다.

김 부총리는 이날 대화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및 개정협상을 통해 양국 간 공정한 무역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에 대한 자동차 관세 부과는 부적절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부총리는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미국의 고용 및 투자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므누신 장관은 계속해서 협의하자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G20 재무장관회의 당시의 김동연 부총리와 므누시 장관. (사진=기획재정부)
G20 재무장관회의 당시의 김동연 부총리와 므누시 장관. (사진=기획재정부)

GM 등 미국 업체들도 우려 표명...트럼프, 지지기반도 고려해야

사실 김 부총리의 요청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무역전쟁의 수혜 기업으로 꼽히는 미 최대 자동차 회사 GM마저 2일 "자동차 수입 관세는 GM을 쪼그라들게 할 것"이라고 정면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오토바이 브랜드 할리데이비슨에 이어 '인디언 모터사이클'도 유럽연합(EU)의 보복관세를 견딜 수 없다며 공장 해외 이전을 선언했다. 

GM이 이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글로벌 시장 전체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자동차 산업의 공급 구조 때문이다. GM은 현재 미국보다 중국에 더 많은 차를 판매하고 있다. 다른 나라 공장에서 만든 차량 또한 연간 110만 대를 미국 시장에 공급한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9일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생산 과정에서 해외에서 들여오는 부품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가 자동차 업계의 공급체인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토바이 브랜드 '인디언 모터사이클' 역시 미국 아이오와주에 있는 생산 시설 일부를 EU 권역인 폴란드로 이전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인디언 모터사이클은 EU가 미국산 오토바이에 31%의 관세를 매기면서 올해 1500만 달러(약 167억 원)가량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회사 오토바이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650여 명 근로자도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따라서 미국 내 제조업 정서에 민감한 트럼프의 성향 상, '수입차 25% 관세'는 단순히 선거용 수사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시간이다. 디트로이트를 포함하여 미국 제조업의 중심으로 불리는 이 지역은 최근 몇 년간 중국이 수십 억 달러를 투자 해 온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되자 12일 미시간주의 자동차, 로봇공학, 인공지능 등 경쟁력 높은 산업들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고 뉴욕타임즈는 전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9일(현지시간) 공청회를 열어 '수입자동차 관세'에 대한 업계 의견을 수렴했다. 발언 첫 순서로 미국 자동차업계가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9일(현지시간) 공청회를 열어 '수입자동차 관세'에 대한 업계 의견을 수렴했다. 발언 첫 순서로 미국 자동차업계가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심지어 릭 스나이더 미시간 주지사는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공화당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 잠재적 중국인 투자자 150여 명을 환영하는 행사를 갖는 등 중앙 정부와 온도차를 보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현지에선 바로 미시간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쉽게 관세를 부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시간은 2016년 미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힐러리 클린턴 전 민주당 대선후보를 누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1등 공신'이기 때문이다. 미시간을 포함하여 이른바 '러스트 벨트(rust belt)'라고 불리는 공업지대에서의 지지가 없었다면, 트럼프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러스트 벨트는 한때 미국 제조업의 중심지로 호황을 누렸으나 제조업의 몰락하며 불황을 맞은 미국 북동부 5대호 주변의 공장지대를 가리킨다. 

따라서 '수입차 관세'가 현실화된다면, 미국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볼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지지층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러스트벨트에서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올해 이후로 꾸준히 하락세다. 얼마전 미 공청회에서도 그러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물론, 한국 자동차 업계도 이들과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

따라서, 다가올 공청회 결과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업계의 눈은 벌써부터 트럼프의 입에 쏠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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