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철강제품 대상 세이프가드 도입 결정
-쿼터 물량 배정은 선착순... '서둘러 수출해야'
-"수출 영향 제한적" "주력시장 확산 가능성"...전망 엇갈려

베스트게르 유럽연합(EU) 경쟁담당 집행위원. (사진=연합뉴스)
베스트게르 유럽연합(EU) 경쟁담당 집행위원.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됨에 따라 유럽연합(EU) 역시 EU로 수입되는 철강제품에 대해 '세이프가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세이프가드란 특정 품목의 수입이 급증해 자국 업체들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거나 그럴 우려가 있을 때, 쿼터와 관세 인상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을 가리킨다.

앞서, EU 집행위원회는 미국이 지난 3월 철강·알루미늄에 대해 각각 25%와 10%씩의 관세를 부과하자 아시아 철강이 유럽시장에 몰려들 것을 우려해 지난 3월 말 세이프가드 발동을 위한 조사에 돌입했다. 이에 EU 집행위는 최근 몇 년 간 수입량을 반영해 쿼터를 지정하며, 이를 넘어서는 양에 대해선 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18일 잠정 결정했다.

국내 철강업체 긴장...정부도 발빠르게 대응 나서 

미국에서 시작된 철강 무역전쟁이 유럽시장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국내 철강산업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이 EU로 수출한 철강은 약 23억9000만 유로(약 3조1300억 원)로 인도와 중국, 터키에 이어 네 번째이다. 특히 관계자들은 포스코나 현대제철 같은 업계 1·2위 기업에 피해가 집중될 것으로 전망한다.

정부에서도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산업혁신성장실장은 19일 민관 대책회의에서 "최근 물량의 100%까지는 무관세라고 해도 초과 물량에 대한 관세 부과가 향후 수출이 줄 수밖에 없다”며 “민관 협력으로 최종 조치 전까지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9일 한국철강협회에서 포스코, 현대제철 등 14개 철강사, 철강협회와 EU의 철강 세이프가드 잠정조치 관련 대책회의를 개최했다. 사진은 문승욱 산업부 산업혁신성장실장 (사진=철강협회)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9일 한국철강협회에서 포스코, 현대제철 등 14개 철강사, 철강협회와 EU의 철강 세이프가드 잠정조치 관련 대책회의를 개최했다. 사진은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산업혁신성장실장이 발언하는 모습. (사진=철강협회)

물론, 이번 조치로 한국산 철강의 수출길이 아주 막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쿼터를 넘어서는 수출에 대해서는 이익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EU 집행위는 “쿼터 물량 배정은 선착순이며 국가별로는 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따라서 수출을 서둘러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산업부 관계자 역시 19일 "정부와 업계는 세이프가드 최종결정 전까지 피해 최소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EU시장 비중 높지 않아" "중국 제품 가격 오르면 반사이익"..."심각한 수준 아냐"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 상황이 그렇게 부정적이지는 않다고 평가한다. 

EU에 국산 철강제품을 주로 수출하는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EU 수출 비중이 전체 판매량의 4% 정도에 불과하고, 세아제강, 넥스틸, 휴스틸 등 강관 전문 중견 철강업체들의 주요 시장도 북미와 남미, 러시아 등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최문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12일 보고서를 통해 "철강 제품은 무게에 비해 가격이 낮아 운송비 부담이 높다"며 "운송비 부담으로 미국과 유럽 수출 비중이 낮다"고 밝혔다. 특히 2017년 기준 한국 철강 출하량 중 미국 수출 비중은 1.5%에 불과했다. 유럽도 5.5% 정도이다.

최문순 연구원은 이어, "EU의 세이프가드는 원천적으로 철강 수입을 차단하려는 것이 아니라 유럽으로 추가 유입되는 물량을 막겠다는 것"이라고 보았다. 말인즉슨, 한국이 유럽에 수출하는 물량이 크게 감소할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다. 

최 연구원은 "한국의 경우 고부가가치 강종인 도금강판, 냉연강판 등 판재류의 유럽 수출 비중이 높다"며, "도금강판과 냉연강판은 주로 자동차와 가전업체에 공급되는데, 모델이 변경되지 않는 한 철강 공급사를 중간에 바꾸기 쉽지 않다"며 상황을 낙관했다. 방민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20일 보고서에서 "국내 철강사들의 EU향 수출은 대부분 실수요향이기 때문에 출하량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이라 보았다. 

세아제강 포항공장에서 생산한 제품들. (사진=세아제강)
세아제강 포항공장에서 생산한 제품들. (사진=세아제강)

또한 증시전문가들은 국내 철강산업은 EU보다 중국시장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오히려 중국 철강 가격의 상승으로 하반기 반등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현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앞서 5일 보고서에서 "중국 정부는 7월 들어 강력한 환경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이 중 하나가 철강산업의 생산량 감소다"라며 "중국 내 생산량 감소가 이뤄지면, 철강 가격은 상승하게 돼 국내 철강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홍균 DB금융투자 연구원 역시 12일 보고서에서 "(국내 철강업체들의 주력 제품인) 후판가격이 인상 추세"라며 "철강시장에서 영향력이 큰 중국과 아시아 신흥시장의 성장이 미국 시장의 감소를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력 수출 지역 확산 가능성"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부담"..."변수 고려해야"

하지만 변수는 남아 있다. 방민진 연구원은 "보호무역주의가 한국 철강재의 주력 수출 지역인 동남아와 일본 등으로 확산할 가능성은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오히려 변수는 내부에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일찍이 연내 산업용 심야 전기요금을 인상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철강 생산에 전력을 많이 쓰는 기업에는 직격탄이다.

현대제철은 한해 전기요금으로 1조1000억 원 가량을 쓰고 있는데 이는 지난해 영업이익 약 1조3000억 원과 맞먹는 수치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산업정책팀장은 12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수출활로가 막힌 가운데 경부하(심야시간) 전기요금 인상은 가격경쟁력 확보를 어렵게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대제철 인천공장. (사진=현대제철)
현대제철 인천공장. (사진=현대제철)

이에,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안에 경부하 전기요금을 조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치며 '업계 다독이기'에 나섰다.

하지만 철강 업계는 아직까지 안심하지 못하고 있다.

철강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업계 불황으로 하반기 흑자전환을 노리기도 힘든 상황인데, 이래저래 신경쓸 요소가 더욱 많아졌다"며 "일단 무역전쟁으로 인한 피해 없이 하반기를 보내는 것이 목표"라고 근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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