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서평 / 피싱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한반도에 갇혀 발전하지 못한 이유를 분석할 때 자주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바다를 멀리했다는 점이다.

북쪽으로는 중국에 막혀있고 사방이 바다인데 바다로 진출하는 것이 봉쇄됐다. 이에 따라 나라가 활력을 잃고 국민들은 독선에 빠졌으며 마음마저 좁아졌다는 것이다.

또한 바다는 두려운 곳, 외세가 괴롭히기 위해 들어오는 통로로 여겨졌다. 그래서 왕은 바다 진출을 금지하는 망국의 정책을 펼쳤다.

역사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바다를 멀리한 이유에는 명나라가 해양 진출을 봉쇄한 영향이 크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해양인물로 꼽는 장보고는 통일신라 시대 사람이다. 이는 통일신라 시대 이후 그에 필적할 만한 인물이 많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장보고 만한 인물이 안 나온 것은 장보고에게 필적할 만한 해양인물이 배출될 배경이 매우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정미나 옮김 / 을유문화사 값 18,900원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정미나 옮김 / 을유문화사 값 1만8900원

 

바다는 문인들에게도 공포와 기피의 대상이었기에 변변한 ‘해양문학’도 나오지 않았다.

1908년 최남선이 ‘소년’ 창간호에 실은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바다(海)가 젊은 소년에게 다가온다는, 알고 보면 단지 바다를 노래했다는 이유로 새 사회건설과 세계진출의 열망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바다를 멀리한 국가는 침체하기 마련

‘피싱 – 인간과 바다 그리고 물고기’(FISHING How The Sea Fed Civilization)는 한국 독자들에게는 다소 익숙하지 않은 주제가 될 지 모른다.

그러나 물고기와 어업과 어부가 인류문명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를 생각하면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정독할 이유는 충분하다.

저자인 브라이언 페이건(Brian Fagan)이 지적했듯이 물고기, 어부만큼 인류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면서도 무시된 존재도 많지 않다.

페이건이 생각하기에 고기잡이는 지금껏 인간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는데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어부들은 무명의 존재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이들의 역사를 쓰려면 비밀로 내려오는 전승이나 한정된 출처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고고학적 관점이나 역사적 관점에서 어업에 관한 책이 드문 이유일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수많은 어부들은 눈에 띄지 않는 변두리에서 무명의 존재로 고달프게 일하면서 살았지만, 역사에 공헌한 바는 매우 크다.

인류 문명은 대부분 강어귀나 호수 아니면 바닷가에서 꽃을 피웠다. 고대에는 어부들이 그물로 물고기를 잡아 공공 공사에 동원된 수 많은 노역자를 먹여 살렸다.

어부와 어부가 잡은 물고기가 없었다면 파라오는 피라미드를 건설하지 못했을 것이고, 캄보디아의 웅장한 앙코르와트 사원도 세워지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과 귀족과 관리와 상인 전문가로 이어지는 전체 사회적 피라미드에서 어부는 가장 무명의 존재였다.

고기잡이 역사에서 어업의 위기가 여러 번 나타났지만, 최근에 우리가 보는 어업의 위기는 19세기에 출현한 저인망 기술에서 시작됐다. 해저까지 훑어 버리는 저인망 기술과 디젤 동력선이 등장하면서 지역별로 고기의 씨가 마르는 위기가 닥치기도 한다.

550쪽에 달하는 얇지 않은 책에서 한국에 대한 이야기는 몇 줄 밖에 나오지 않는다. 1970년대 한국과 일본의 어업이 국제적 사업으로 확장되면서 규모가 너무 커지자 수많은 국가들이 자국 연안에서 200해리(370km)까지 배타적 경제수역을 선언했다는 내용이 전부이다.

중국은 기원전 3500년이라는 이른 시기부터 흑룡강에서 잉어를 키웠지만, 그 이후 뚜렷하게 어업에 대한 기록이 이 책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저자가 보기에 고기잡이에 사용된 인공도구는 놀라울 정도로 달라지지 않았다. 전용 낚시바늘이나 대형 그물이 등장했지만 근본적인 변화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양식 어업 비율 절반 넘어서

하지만 어업의 형태는 새롭게 개편됐다. 그 중심에 양식이 있다. 총 어업생산량 중 양식 어업의 비율은 2000년 25.7%에서 매년 늘어 2012년에는 42.5%를 차지했다. 특히 아시아는 2008년 이후 양식비율이 자연식보다 높아지면서 2012년에는 54%를 기록하고 있다.

그렇지만 유럽의 양식 비율은 18%에 머물러 있고, 미국 일본 프랑스 등지에서는 양식 생산량이 하락하는 추세이다. 왜냐하면 이들 나라에서는 양식 보다 해외에서 고기를 잡는 비용이 더 낮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은 페이건이 우려하는 내용이다. ‘물이 땅보다 생산력이 더 풍부하다’는 말도 있지만 어업의 산업화, 인구증가, 기술혁신이 맞물리면서 바다는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파괴적 어획에 밀려나 풍요로웠던 바다가 사막화될 우려가 생겼다. 여기에 기후변화의 잠재적 위험성도 등장했다.

8살 때부터 배를 타고 영국 해협과 북해에서 유람항해술을 익힌 브라이언 페이건은 어부와 고기잡이를 통해서 인류역사의 가장 바탕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고기잡이는 ‘지속 가능하면서도 예술적인 어업’이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타임즈(www.sciencetimes.co.kr)에도 실렸습니다. 데일리비즈온은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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