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통화가치 급락·자본유출에 연쇄 디폴트 우려
-중국 포함 증시는 일제히 '베어마켓'에 진입
-유가하락, 무역분쟁 등이 사태를 키우고 있다는 분석
-국내 경제 '제한적 영향'...금리 격차와 신흥국 위기 확산되면 타격 불가피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하 연준)가 올해 두 번째 금리 인상을 단행한 가운데 신흥국에 대한 우려가 끊이질 않고 있다. 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의 금리가 오르면, 일반적으로 펀더멘탈이 약한 신흥국은 투자 매력이 떨어지면서 외국인 투자금이 빠져나가는 혼란을 겪게 된다.

특히 연준은 견고한 경기회복세를 바탕으로 올해 금리 인상 횟수를 기존보다 1차례 늘어난 총 4차례로 예상하는 등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낼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이에, 현지시간으로 13일 올해 두 번째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이 날 연방기금 금리는 1.75∼2.00%로 0.25%p 상승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지난 6월 13일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지난 6월 1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연준이 금리 인상을 결정할 만큼 미국의 경제가 호조를 보이는 데 반해 신흥국은 그 회복세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달 카르멘 라인하트 하버드대 교수는 신흥시장이 처한 여건이 2008년 위기나 2013년 긴축발작 때보다 좋지 못하다고 진단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역시 신흥국 통화 위기가 1997년 아시아를 덮친 외환위기를 연상케 한다고 밝혔다.

◆통화가치 하락은 피할 수 없어...아르헨티나 터키 등 심각

외국인 투자금이 빠져나가면서 겪게되는 가장 큰 문제는 통화가치 하락이다. 보통 투자자들은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신흥국에 넣어둔 돈을 빼서 미국으로 돌리는데, 이러한 수요가 많을수록 달러화 가치는 오르고, 신흥국 통화가치는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가장 심각한 곳이 아르헨티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현지 시간으로 지난 4일 아르헨티나 페소화 환율은 달러당 21.86페소로 일주일 만에 6.5% 급등했다. 자금 이탈과 통화가치 폭락을 막기 위해,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지난달 27일부터 4일까지 금리를 세 차례나 올렸다. 현재 아르헨티나의 기준금리는 무려 40%에 달한다. 일주일 새 12.75%포인트나 상승했다. 정부는 금리 인상에 앞서 약 43억 달러를 풀어 페소화를 사들이며 환율 방어에 나섰으나 효과는 거의 없었다.

터키 리라화도 큰 시련을 겪고 있다. 4일 달러당 리라 환율은 4.23리라로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 달 사이 환율이 5.8%나 오른 것이다. 터키 중앙은행도 통화가치 급락을 막기 위해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12.75%에서 13.5%로 올렸다. 하지만 리라화 가치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역시 이번 달 초 아르헨티나와 터키를 비롯해 러시아, 브라질, 중국, 우크라이나 등이 미국의 강(强)달러로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주요 신흥국이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러시아 루블화와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최근 한 달간 9%, 6% 정도씩 하락했다.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도 환율 방어를 위해 정책금리를 전격 인상했다.

◆ 회사채 금리 상승은 '세계 경제위기의 뇌관'

이 뿐만이 아니다. 신흥국 기업들의 회사채 금리 상승이 세계경제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맥킨지는 18일 "신흥국을 대표하는 브라질·중국·인도 등 3개국 기업 회사채의 25%가량은 이미 높은 디폴트 위험에 놓여 있다"며 "향후 금리가 2%포인트 더 오를 경우, 브라질·중국·인도의 디폴트 위험 회사채가 최대 40%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2008년의 금융 위기 이후, 기업들은 자금 조달을 위해 채권 발행을 크게 늘려왔다. 맥킨지에 따르면, 전 세계 비금융 부문 회사채 발행액은 2007년 8000억 달러에서 작년 2조 달러로 10년 사이 2.5배 증가했다. 회사채를 포함한 기업 부채는 대부분 신흥국에서 늘었다. 신흥국 부실 기업 증가로 고금리 회사채 규모가 지난 10년간 4배 가까이 늘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금리 인상은 신흥국 기업들의 연쇄 부도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상존한다.

맥킨지에 따르면 2007년 이후 세계 기업 부채 증가액의 34%(9조9000억 달러)는 선진국, 나머지 66%(19조2000억 달러)는 신흥국이 차지한다. 국제금융연구소(IIF) 역시 "브라질, 인도, 터키에서 20퍼센트가 넘는 회사가 빚을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있고 그 비율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경제가 매우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지표다.

◆ 신흥국 증시는 속속 '약세장' 진입

이 와중에 신흥국 증시는 연일 하락세다. 도날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촉발한 무역전쟁의 후폭풍까지 겹쳐, 신흥국을 중심으로 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모양새다.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 증시마저 전 고점 대비 20% 하락하는 '베어마켓'에 진입했다.

증권가에서는 주가의 고점 대비 하락률이 20%를 넘어서면 본격적인 약세장을 뜻하는 '베어마켓'에 진입하는 단계로 간주한다. 상하이종합지수가 2년 전인 2016년 여름 수준으로 밀려나면서 지난 1월 이후 상하이 증시에서만 1조6000억 달러(약 1790조 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한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에 앞서 터키와 파키스탄이 이미 '베어마켓'에 진입한 가운데 동유럽의 헝가리와 폴란드도 고점 대비 주가가 나란히 15% 이상 하락해 베어마켓에 근접하고 있다

또한, 13일 시장조사업체 이머징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EPFR)에 따르면 이달 들어 신흥국 주식형펀드에서 자금이 순유출되기 시작했다. 지난 2월 이후 처음이다. 최근 1주일(5월2~9일) 동안 신흥국 주식형펀드에서 빠져나간 돈만 16억 달러(약 1조7000억 원)로 지난해 8월 이후 최대치다.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여, 세계 22개 신흥국의 주요 기업 주가를 바탕으로 산출하는 MSCI 신흥시장지수는 26일 1,067.75로 작년 8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21일 뉴욕증권거래소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21일 뉴욕증권거래소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 불안감 확산 가운데 위기 확산 가능성은?

관심은 신흥국 외환시장 불안이 얼마나 더 확대될지에 쏠리고 있다. 아직까지는 1980년대 초반의 남미 외채 위기나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위기 상황은 곧잘 전염되고 예기치 않게 확대된다는 점에서 낙관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변동환율제 도입에다 충분한 외환보유액, 줄어든 경상수지 적자 폭 등을 고려할 때 대다수 신흥국은 과거보다 금리 인상 충격을 잘 버틸 수 있다”고 밝혔지만, 국제 유가 상승이나 무역 분쟁 등 신흥국 경제에 부담을 주는 요인들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다는 점은 큰 부담이다. 최근 각국의 증시가 약세장에 들어서는 것도 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외환보유액만으로 자금 유출 사태를 막을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절대적인 외환보유액이 아무리 많아도 시장 개입 등으로 규모가 줄어드는 추세가 확인되면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만 키우고 시장 안정 효과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시장에서 달러 매수 심리가 강할 때는 외환시장 개입이 별다른 효과 없이 외환보유액만 축내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전문가 "장기화되면 부담될 것"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신흥국 경제 위기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분석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국내 기준 금리는 올해 1차례 정도 인상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대세를 이룬다. 올해 3%의 경제성장 전망은 유지했지만, 물가상승세가 목표치에 미달하면서 당장 기준금리를 올리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다.

정부는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이 국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제한적”이라고 평가하는 한편 차주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추가 대응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4일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보고 있다"며 “한두 번 금리인상으로 자본유출이 촉발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한미간 금리차 확대가 장기간 이어질 경우엔 한국경제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7일 '6월 미국 금리인상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행의 금리인상이 쉽지 않은 가운데 올해 미국이 금리를 4회 인상할 경우 한·미간 금리차는 0.75∼1.00%포인트까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외국인 투자자금이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연구원은 "과거 두 차례 미국 정책 금리가 한국 기준 금리를 상회할 때 사례를 보면 금리 격차가 확대될 때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이 가장 많았다"며 "다만 과거에 비해 우리나라의 외환 건전성이 개선됐고 타 신흥국에 비해 경제 기초 체력이 양호해 외국인 자금 유출이 제한적일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했다.

또한 신흥국들의 위기가 확산될 경우, 한국 경제도 타격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구원은 "일단 위기 가능성이 높은 국가들의 세계 국내총생산(GDP) 비중 및 한국 수출 비중이 높지 않은 점을 감안한다면 세계 경제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또 이들 국가의 국내 은행의 대외 자산 보유 비중도 낮은 수준이라 국내 은행이 취약해질 가능성도 낮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신흥국 위기가 일부 국가에서 시작되어 경제 규모가 큰 신흥국으로 전이될 경우 국내 및 세계 경제에 위협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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