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서평 / 춤추는 식물

어떤 사람에게 꽃은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춤을 춘다.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식물은 동물 같이 의인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인삼 같은 식물은 남성의 피로 회복에 매우 좋은 효과를 내는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도 인삼이 워낙 큰 인기를 끌어 싹쓸이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물론 한국 인삼이 아니라 미국인삼이다.

쉽게 이해가 안 되지만, 고사리는 유럽에서 한 때 상류층 인사들이 애지중지하는 애완식물의 자리에서 큰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강털소나무(Bristlecone Pines)는 가장 오래된 나무로 알려져있다. 1957년 발견한 표본의 나이테를 세어보니 4846세였다. 애리조나 대학의 에드먼드 슐먼 박사는 이 강철소나무에 ‘므두셀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춤추는 식물’(The Cabaret of Plants)는 30여 가지 식물에 대한 책이다. 나무와 꽃과 곡식 등에 대한 특징과 이들 식물을 둘러싸고 벌어진 역사적인 소동 등을 담았다. 저자의 관심에 들어온 식물은 세콰이어, 바오바브, 샘파이어, 파리지옥, 빅토리아 아마조니카 같이 특이한 종류도 있지만 참나무, 개암나무, 목화, 옥수수, 물망초, 올리브 등 친숙한 이름도 있다.

‘만병통치약’의 영예를 안은 인삼 

제목을 훓어 보다가 우리나라의 특산품인 ‘인삼’에 대해 눈길이 먼저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인 리처드 메이비(Richard Mabey)에게 인삼은 그저 ‘파낙스’일 뿐이다. 한국 인삼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만명통치약 인삼’이라는 소제목에서 보듯이, 서양인에게도 인삼의 효능은 엄청나게 큰 것으로 알려진 것 같다.

리처드 메이비 지음, 김윤경 옮김 / 글항아리 값 28,000원
리처드 메이비 지음, 김윤경 옮김 / 글항아리 값 28,000원

 

‘춤추는 식물’에 따르면 중국과 아메리카 대륙에서 자라는 보잘것없는 약초에게 파낙스(Panax)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1753년 칼 폰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이다.

파낙스는 만능약을 뜻하는 파나세아(panacea)에서 나온 말로서 의약품에만 사용하다가 지금은 경제위기 등 모든 영역에서 만병통치약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파나세아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딸로서 만능약을 뜻한다.

중세 연금술이 발달한 이유 중 하나는 만병통치약을 찾는 것이었다. 만병통치약의 후보로 오른 것은 파낙스 헤라클레움(panax heracleum) 같은 시리아의 미나리과 식물을 비롯해서, ‘피에라브라스의 발삼나무’(Balsam of Fierabras) 아흐메드 왕자의 사과, 서양톱풀 아킬레아(Achillea)등이 후보로 올랐다.

이중 서양톱풀이 작은 상처부위의 지혈제로 나쁘지 않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메이비는 ‘이 중 어떤 것도 명약이라고 하기에는 효과가 없었다’고 썼다.

가장 존경받는 식물학자 중 한 명인 칼 린네는 18세기 중반 식물의 분류와 이름 붙이기에 큰 변화가 일어났을 때 담쟁이덩굴과 연관된 상당히 특이한 식물집단에 파낙스, 만병통치약이라는 속명을 붙이기로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파낙스 진셍(panax ginseng) 바로 인삼이다.

인삼이라는 이름이 붙은 과정을 설명해준 것 까지는 고맙지만, 메이비는 ‘인삼은 최소 2000년간 중국 의약품 중 하나였다가 17세기에 유럽에 전해졌다’고 썼다. 주로 예수회 신부들에 의해 유럽에 소개됐는데, 진짜 인삼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대신 미국인삼에 대한 이야기는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미국 인삼은 캐나다 퀘벡과 매니토바에서 미국 앨라배마와 아칸소까지 서식한다. 미국 인삼은 파낙스 퀸퀘폴리우스(panax quinquefolius)라고 하는데, 생육기간이 8년이고 체로키 인디언들은 다양한 질환과 신체적 결함에 이 약초를 이용했다.

동양의 만병통치약 소식이 유럽에 전해지면서 거래시장이 생겼다. 정력신장 효과가 특히 주목을 받았다. 형태가 완벽하게 잘 여문 뿌리는 똑같은 무게의 금보다 10배나 비쌀 정도로 유럽에서 인기가 높았다.

프랑스 상인은 북미 원주민이 채취한 미국 삼을 중국으로 수출할 정도였다. 많은 소농이 파산한 1857~1858년 불황기에 미국 삼은 아주 좋은 환금작물로서 일부 지역에서는 전체가 미국 삼 캐는 일에 매달렸을 정도이다. 켄터키 주 라루(LaRue) 카운티의 ‘진셍(Ginseng)마을’은 미국 삼의 이름을 딴 것이다.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면 진셍마을은 미국 삼 수확을 따서 지은 이름으로 이 지역에서 채취한 미국 삼은 켄터키 주 엘리자베스타운(Elizabethtown)에서 거래된다.

미국에서는 아직도 인삼을 채취해서 중국으로 수출하는 무역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서 인삼채취가 허가된 곳은 켄터키 주를 비롯해서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등 3개주이다.

2000년 미국 삼 300톤이 홍콩으로 수출됐다. 1990년대 중반 켄터키 웨스트버지니아 테네시주에서만 매년 약 4,500㎏이 채취됐는데 1파운드(450그램)당 평균 500달러로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가치있는 식물로 꼽힌다.

열매 보다 꽃이 식물의 목적인가

저자가 책의 제목에 ‘춤추는~’ 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수선화의 영향인 것 같다. 수선화는 관광안내책자에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봄꽃으로 소개되면서 워즈워스는 수선화를 ‘한 조각 구름처럼 외로이 떠돌다가’ ‘호숫가 나무 아래에서 산들바람에 한들한들 춤추는 것’으로 시를 지었다.

실제로 수선화가 춤을 추는지 그저 바람에 맹목적으로 흔들리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나뭇잎이 그렇게 만들어진 이유는 광합성을 더 잘 하기 위해서, 꽃이 아름다운 것은 곤충에게 기쁨을 주고 식물번식을 돕기 위해서라는 견해가 널리 퍼졌다. 19세기 낭만주의의 마지막 세대인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은 잎을 ‘가스저장소’로 지위를 격하시키는데 대해 불쾌감을 느꼈다.

그에게 아름다움은 자연에 담긴 도덕적 목적과 계획을 내다보는 신성한 능력을 부여받은 인간만이 내린 가치 판단이었다. 다시 말해 식물이 추구하는 최종 목적은 열매가 아니라 꽃이다.

‘꽃은 열매가 아닌 스스로를 위해 존재한다.
열매는 추가로 얻는 영광, 꽃의 죽음을 대신해서 우리에게 허락되는 위안일 뿐이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타임즈(www.sciencetimes.co.kr)에도 실렸습니다. 데일리비즈온은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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