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검색 기록만으로 대출 제한되는 세상
-빅데이터의 일상적 활용이 개인의 소외 심화시켜
-정부 개입은 회의적...개인의 판단력과 연대가 요구돼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2002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미래예지 범죄예방 시스템이라는 참신한 소재로 전세계적인 흥행을 거두었다. 이 영화의 중점적인 메시지는 범죄를 둘러싼 윤리의 딜레마였다. 예비범죄자를 미리 포착할 수 있다 하더라도, 범죄 발생 시점 이전에 그를 체포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는 당시 많은 철학적 논쟁을 낳기도 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02년 개봉작 '마이너리티 리포트'. 범죄예방관리국(Pre-crime)이 예지시스템을 이용해 예비범죄자를 잡는 참신한 설정이 개봉 당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02년 개봉작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범죄예방관리국(Pre-crime)이 예지시스템을 이용해 예비범죄자를 잡는 참신한 설정이 개봉 당시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미지=영화 포스터)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미래예지'와 같은 시스템은 먼 미래에나 있을 법한 일로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개봉된 지 16년이 흐른 지금, 2018년의 현실은 '4차 산업혁명'의 물결속에서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그려냈던 세상에 더욱 가까워졌다. 개인을 속박하는 주체가 공권력에서 거대 기업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오늘날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빅데이터 수집 능력은 기업의 개인에 대한 통제를 한층 강화시켰다. 인터넷 검색기록, 카드 지출내역, 그리고 휴대폰 사용내역 등을 통해 우리는 24시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한다. 미셸 푸코가 일찍이 언급했던 '파놉티콘'(Panopticon.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는 뜻의 'opticon'의 합성어로 1791년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르미 벤담이 죄수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목적으로 고안한 원형 감옥을 가리킴)이 데이터 활용 능력의 발전을 바탕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영화에서 언급된 윤리적 딜레마를 재현한다.

프랭크 카프칼 매릴랜드대학 교수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5월호에 쓴 칼럼을 통해 캐서린 테일러의 사례를 소개한 바 있다. 개인정보 브로커가 실수로 그녀의 정보에 '필로폰 제조와 판매 시도'를 기재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캐서린 테일러의 자료에 대한 오류는 수정됐지만, 그녀의 자료를 구입한 다른 많은 회사들은 이를 방치했다. 그 결과 그녀는 4년 동안 직장을 구할 수 없었으며 신용카드로 식기세척기조차 사지 못하는 등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문제의 핵심은 왜 잘못된 정보가 작성되었나가 아닌, 잘못된 정보가 어떻게 퍼지게 되었나에 있다. 

카프칼 교수는 정보수집가들, 브로커들, 재판매업자들이 때로 성폭력 피해자 리스트나, 에이즈, 알츠하이머 환자 리스트를 만든다고 밝혔다. 이러한 리스트의 주요 구매자는 마케팅 종사자들이고, 사기를 피하고자 고객을 평가하거나, 채용하려는 직원의 프로필을 평가하려는 금융기관들의 구매도 늘고 있다. 하지만 브로커들은 정보의 기밀유지를 지키지 않고 있는 관계로, 상업 시장이 커질수록 사생활의 입지는 좁아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위의 모든 문제들은 빅데이터의 본질에서 비롯된다. 빅데이터의 활용능력은 즉 데이터를 수집한 후 분석하고 상호관계와 결론을 도출해내는 능력을 의미한다. 기업의 이윤 추구는 사생활 침투의 다층화를 불러일으키고, 사생활 침투의 다층화는 데이터 해석 능력의 불완전성을 확대한다.

예를 들어, 사회학자 메리 이블링은 임신 초기에 몇 개의 설문조사를 작성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유산을 했고 아직 유산의 충격에 빠져있는 그녀에게 마케팅 회사가 아기용품을 광고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사회학자 메리 이블링은 그녀의 책 'Heathcare and Big Data: Digital Specters and Phantom Objects'를 통해 기업들이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사진은 2014년 빅토리아 대학교의 방문교수로 재직했을 당시의 메리 이블링. (사진= Victoria University of Wellington 홈페이지)
사회학자 메리 이블링은 그녀의 책 'Heathcare and Big Data: Digital Specters and Phantom Objects'를 통해 기업들이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사진은 2014년 빅토리아 대학교의 방문교수로 재직했을 당시의 메리 이블링. (사진= Victoria University of Wellington 홈페이지)

이러한 사례는 기업이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자세한 수준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1970년대의 파놉티콘과 이데올로기는 오로지 개인의 통제를 위해 작동했다. 하지만 2010년대의 기업은 이윤 추구를 위해 기능하며, 이를 위해 목적과 수단을 전도시킨다. 하지만 개인이 이 문제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기에는 여러 어려움이 뒤따른다. 애초에 우리들은 자신들의 삶을 파괴할 수 있는 수천 개의 데이터를 탐색할 시간이 없다.

따라서 국가가 나서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의 좀 더 건전한 활용을 위해 기업들의 데이터 해석 알고리즘을 공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기업들이 알고리즘이 너무 복잡해서 밝힐 수 없다고 하면, 정부는 정보사용을 금지시키는 방안까지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보사용에 대해 가장 핵심적인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가령, 상담치료를 받는 부부는 그렇지 않은 부부보다 통계적으로 이혼할 가능성이 높다. 이혼 후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편부모 가정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여, 실제로 금융기업은 상담치료를 받는 부부들의 신용도를 낮추곤 한다. 이는 정부에게 있어 딜레마를 안겨준다. 만일 입법자들이 개인정보 보호에 중점을 둔다면, 신용카드 사용자의 상환능력과 관련된 중요한 단서를 숨기는 게 된다. 그렇다고 개인정보 활용을 허용한다면, 커플들은 패널티가 두려워 관계 개선을 위한 치료 자체를 거부할 수 있다.

심지어, 미국을 비롯하여 몇몇 EU 국가들의 정부는 때때로 국가안보를 이유로 기업들의 무분별한 개인 정보 활용을 묵인하기도 한다. 테러리스트와 관련된 정보 수집은 그들에게 있어 최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에서 개인에 대한 국가, 기업의 통제는 더욱 직접적인 형태로 실현된다. 개인에 대한 존중은 이들 국가에서 언제나 후순위로 밀려난다.

한국에서는 어떨까? 종종 개인정보유출 사건이 발생하긴 하지만, 다행히도 아직 한국에서는 최근 아마존이나 페이스북 같은 수군의 대규모 고객 정보 유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해커로부터의 대규모 공격도 잠잠한 편이다. 하지만 개인에 대한 기업의 예속은 그 어느 국가에서보다 심각하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스피커 등 사물인터넷(IoT) 서비스는 개인의 생활패턴 뿐만 아니라 음성정보까지 수집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보이지 않는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현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윤리적으로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개인정보의 보호는 결국 개인자산의 보호를 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탐 크루즈가 인공지능 시스템에 대항했던 이유도 결국 부당한 현실에 맞서 그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미셸 푸코와 함께 70년대를 풍미했던 유명한 프랑스의 탈구조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개인들간의 연대를 강조한 바 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개인들 스스로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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