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 보다 명사 앞에서 잘 나타나

사람들은 말을 할 때 단어가 막히면 ‘음’ ‘어’ ‘그러니까’라고 뜸을 들인다. 그런데 이렇게 말을 늦추는 시점은 어떤 때일까. 국제공동연구팀이 다양한 언어를 조사해봤다. 사람들이 말을 늦추는 시점은 바로 명사를 말할 때였다.

동사를 말할 때 헷갈리는 것은 명사보다 훨씬 적었다.

암스테르담대학(University of Amsterdam)의 프랭크 사이파트(Frank Seifart)교수와 취리히대학(UZH) 비켈(Balthasar Bickel) 교수는 다양한 언어를 대상으로 수 천 개의 즉석 연설을 분석했다. 이들은 언어적으로 문화적으로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이므로 연관성을 가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조사대상 언어는 영어나 네덜란드어는 물론이고 아마존, 시베리아, 히말라야 사막 등에 사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포함한다.

9개 언어 28만 단어 분석 

과학자들은 연설을 기록한 다양한 자료에서 말을 늦추는 현상이 명사 앞에서 나타나는지 동사 앞에서 나타나는지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말 소리의 초당 속도를 측정하면서 말하는 사람이 언제 잠깐 뜸을 들이는지 기록했다.

그랬더니 눈에 띄게 동사를 말할 때 보다 명사를 말할 때 속도가 늦어지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연구 대상으로 삼은 언어는 전세계에 흩어져있다. 아마존 우림지역(Bora and Baure)에서는 2개 언어를 골랐다. 멕시코 (Texistepec), 북미 중서부지역 (North American Midwest, Hoocąk), 시베리아 (Even), 히말라야 (Chintang), 그리고 아프리카 칼리할리 사막 (Nǁng) 등 7개의 소수언어를 포함시켰다. 여기에 영어와 네덜란드 등 9개 언어가 조사 대상에 들어갔다.

 

9개 조사대상 언어 ⓒ Frank Seifart et al. PNAS
9개 조사대상 언어 ⓒ Frank Seifart et al. PNAS

9개 언어에서 분석대상에 오른 단어는 모두 28만8천 단어에 이른다.

이중 7개 언어는 지난 25년 사이에 현장에서 취합한 것으로 현지인 언어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번역되고 기록되고 주석을 달아 기록된 것들이다. 이 기록들은 다양한 종류의 자연적인 연설을 비롯해서 대화, 문서 등을 포함한다.

그랬더니 7개의 소수언어는 물론이고 네덜란드어와 영어를 포함한 9개 언어에서 모두 다 동사에 비해서 명사를 말할 때 심각한 속도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9개 언어에서 모두 다 명사 앞에서 속도가 크게 줄어드는 것은 매우 놀랍다. 왜냐하면 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 9개 언어는 매우 다양하고 다르기 때문이다. 9개 언어에서 명사 앞에서 뜸 들이는 가능성이 동사 앞에서 뜸들이는 가능성보다 약 60%가 높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명사를 말할 때 더 뜸을 들이는 것일까. 명사는 보통 새로운 정보를 표현할 때 사용하므로 미리 생각하지 않으면 명사를 말하는 것은 좀 더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그 명사 대신 ‘그녀’ 같은 대명사로 대체해서 사용하거나, 명사를 빼먹고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내 친구는 돌아왔다. 그녀(내 친구)는 자리를 잡았다”같은 경우이다. 혹은 “내 친구는 들아와서 자리를 잡았다”와 같이 말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동사에서는 이같은 대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 같은 발견은 인간의 두뇌가 어떻게 언어를 처리하는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앞으로 뇌과학 연구를 할 때 대화 중에 사용하는 단어의 정보가치를 좀 더 체계적으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서 어떻게 두뇌가 다양하게 반응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인공언어 소통에 도움 줄 듯 

이번 연구는 동시에 언어학에서 오래된 퍼즐을 푸는데 중요한 빛을 던져준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문법이 장기적으로 변화하는 지에 대한 일반적인 영향력을 암시한다.

명사 앞에서 뜸 들이는 경우가 많은 것은 아마도 명사 앞에 접두사가 붙는 경우가 적은 것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동사앞에 접두어가 붙는 경우가 명사앞에 접두어가 붙는 것 보다 좀 더 일반적이다.(ent-kommen, ver-kommen, be-kommen, vor-kommen)

 

동사 보다 명사가 어려운가? ⓒ Pixabay
동사 보다 명사가 어려운가? ⓒ Pixabay

좀 더 일반적인 수준에서 이번 연구는 언어가 자연환경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좀 더 깊이 이해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디지털 시대의 언어소통이 부딪치는 도전을 생각할 때 더욱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디지털 시대의 언어소통은 갈수록 인공적인 시스템을 통해서 이뤄진다. 그런데 이 인공적인 언어 시스템은 자연적인 사람과는 달리 명사 앞에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말 할 때 명사앞에서 더 더듬는 현상은 인간의 인지과정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연구는 좀 더 다양한 데이터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연구대상 언어를 확대하고, 사라질 위험에 빠진 언어나 사용자가 많지 않은 희귀언어등도 포함해야 한다.

이번 연구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됐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타임즈(www.sciencetimes.co.kr)에도 실렸습니다. 데일리비즈온은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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