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서평 / 기원의 탐구

과학을 탐구하다가 혹은 과학책을 읽다가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지식, 혹은 지금 내가 읽는 내용이 과연 어디까지 객관적이며, 언제까지 참이냐 하는 의문이다.

과학이 근본적으로 재현이 가능한 내용만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원래부터 과학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본 것이 코끼리 다리에 해당하는 ‘왜곡’일 수 있고,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아니다’라고 시간이 지나면 진짜 모습이 드러날 수 있다.

특히 ‘원조’에 대한 설명은 더욱 그렇다. 손님을 끌기 위해 ‘원조 해장국’을 주장하면, 그 옆에 ‘진짜 원조’ 간판이 나오고, ‘순 원조’도 나타난다.

과학의 여러 분야 중 ‘원조’를 다루는 ‘기원’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런 면에서 짐 배것(Jim Baggott)은 비교적 숨통이 트이는 과학자이다. 원조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렇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친절한 설명을 한다.

‘기원의 탐구’(ORIGINS : THE SCIENTIFIC STORY OF CREATION)는 매우 친절한 원조 탐구서이다. 최신 과학이론을 바탕으로 삼아 우주와 생명의 역사를 연대순으로 정리했다. 빅뱅에서 시작해 원자, 별, 은하, 태양계를 거쳐 지구와 달의 형성과 생명체의 진화와 인간 의식(意識)의 탄생까지를 담았다.

기원의 역사를 비교적 ‘과학적인 중립’을 지키면서 설명해왔다. 과학적 중립을 지키려다 보니 어떤 이론에 대해서 반대되는 의견이나, 부족한 부분도 설명하기 때문에 균형을 잡도록 해 준다.

‘빅뱅에서 인간까지’ 균형있게 이야기로 풀어 

이는 짐 배것이 화학물리학 박사를 거쳐 전문 과학저술가로 언론 등에 많은 글을 기고했으며 학계 뿐 아니라, 한때 종신교수직을 포기하고 쉘(Shell)로 옮겨 컨설턴트와 교육전문가로 활동한 배경 때문인 것 같다.

배것은 천체물리학에서 인류학에 이르는 최신과학이론을 동원해서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과학이론을 주로 소개하면서도 대담한 가설을 폭넒게 검토함으로써, 138억 년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왔는지에 비교적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설명하는 내용의 한계가 어디인지를 미리 설명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넉넉한 마음을 갖게 하는 친절한 책이다.

이 책이 친절한 또다른 이유는 역자의 능력이다. 옮긴이 박병철 박사는 단어의 오류를 피하기 위해 그 단어의 영어 표현을 꽤 많이 옮겨 놓았다. 판구조론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중앙해령’이라고만 하면 거의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해서 괄호 안에 ‘Mid-Atlantic Ridge’라고 친절하게 덧붙였다.

 

짐 배것 지금, 박병철 옮김 / 반니 값 28,000원
짐 배것 지금, 박병철 옮김 / 반니 값 28,000원

번역자의 마음씀씀이와 친절함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동태평양 해팽’이라는 알쏭달쏭한 단어에 대해서는 East Pacific Rise 라는 영어단어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측면경사가 해령보다 완만한 해저 융기지형을 뜻한다-옮긴이’라고 추가로 괄호안에 넣었다.

친절한 짐 배것은 오만한 다른 과학자들의 확신을 떠올리게 한다. 유전자는 이기적이라든지, 인류를 발전시켜온 근본 힘을 한 두 가지로 압축해서 설명하는 유명 저자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물론 한쪽에 치우쳐 설명하면 ‘선명성’은 더욱 부각돼서 더 인기를 끌지 모르지만, 그만큼 진실과는 멀어질 가능성 역시 높아진다.

짐 배것은 빅뱅에서 인간의 의식에 이르는 긴 창조의 과정을 논리적 타당성과 현대과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풀어낸다. 그러면서도 비교적 읽기 쉬운 것은 ‘히스토리’로 생각하지 않고 어깨에 힘을 뺀 ‘스토리’로 삼았기 때문이다.

사실 신화나 창조설화는 시작과 끝이 간단하고 분명하며 확실하다. 그러나 현대과학이 설명하는 우주창조이론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다. 우주의 기원에 독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인류와 나의 기원이기도 하며 동시에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기본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작은 확률을 극복하고 태어났다 

위키피디아를 보면 짐 배것이 2015년 퍼블리셔스 위클리(Publishers Weekly)와 인터뷰한 내용이 조금 실려 있다. 배것은 “혹시 우리가 모든 달걀을 끈이론/다중우주/우주의 풍경이라는 바구니에 모두 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끈이론이나 다중우주는 모두 미국 물리학자인 레너드 서스킨드(Leonard Susskind)의 핵심주장이며 ‘우주의 풍경’은 서스킨드가 쓴 대표적인 저서이다. 서스킨드는 우주가 인간이 잘 살 수 있게 미세조정되어 있다는 사실에 큰 흥미를 표현했다. 서스킨드의 이같은 주장은 우주가 인간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인간중심 우주론을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짐 배것은 에필로그에서 ‘우리가 지금과 같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한 때 지구를 점령했던 공룡이 사라져야 했다. 소행성이 지구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거나 화산이 폭발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썼다.

인간은 그토록 작은 확률을 극복하고 지구에 등장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려면서도 인간이 우연히 태어났을 리 없다는 독자들의 반박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는 어느 쪽이 옳다고 판결을 내릴 수 없다’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런 주장에 맞서 계속 탐구하는 것이 과학의 본연이므로 “이런 일로 재판장에 선다면 과학은 피고석에 앉아야 한다”고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과학적 지식’과 ‘존재의 의미와 목적’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틈이 존재한다.

이것이 엄밀한 과학에 대한 짐 배것의 기본 생각의 출발점이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타임즈(www.sciencetimes.co.kr)에도 실렸습니다. 데일리비즈온은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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