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알라딘중고서적
사진출처: 알라딘중고서적

 

교육으로 사람의 일생을 보면 ‘건강한 생활과 즐거운 생활’에서 시작해서 그것들로 끝난다. 교과목으로 보면 ‘체육과 예술’로 시작하고 그것으로 끝난다. 우리는 젖먹이의 망각기 유망乳忘을 벗어나 기억을 자기관리하면서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다. 입학 후 처음으로 배우는 것이 ‘건강한 생활과 즐거운 생활’이다. 체육과 예술에서도 모든 하위 분야를 다 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기초 기본 상식으로 할 줄 아는 법을 배우면 그 다음 중등학교에서는 내게 알맞은 체육 종목과 예술 장르genre를 선택해서 익히면 족할 것이다. 소위 ‘1인1체1예’를 말한다.

그 다음에는 바른생활을 익힌다. 나무도 어릴 때 굽은 것은 펴고, 필요하면 곧은 것은 굽혀야 한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 어릴 때 좋은 버릇을 들이기 위해 조상님들은 바른생활로 소학이나 삼강행실도를 부지런히 가르쳤다. 어린 티를 벗어난 후에도 우리는 크고 작은 사건을 겪으며 경우에 맞는 바른 삶이 어떤 것인가를 배울 기회를 자주 만난다. 이에 비해 가장 나중에 많이 배우는 ‘슬기로운 생활’은 학교교육과 직업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이것은 일부러 배우지 않으면 잘못을 저지르고 손해를 끼치게 된다.

슬기로운 생활은 크게 사회생활에서 슬기로운 생활과 자연과 사물을 둘러싼 슬기로운 생활로 나뉜다. 먼저 사회생활에서 슬기로운 생활을 생각해보자. 이것은 바른생활과 밀접하다. 개인과 사회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대인관계에서 배려와 역지사지를, 공동체 생활에서도 협동과 경쟁의 균형을 적절히 맞추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학교 사회생활과 교육의 목표를 배심원jury키우기에 둔다. 건전한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언제든 배심원으로 추첨되어 법정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법정에서 피고와 원고, 변호사와 검사의 공방을 듣는다. 누가 거짓을 증언하는지 누가 참인지를 가릴 줄 아는 슬기를 키워가야 한다. 선정과 선동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다. 사실과 증거에 기초해 생각하고 말하며 글쓰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숙고할 줄 아는 성숙한 자유민주시민을 키우는 일이다. 사회생활의 규칙이 분명하고 이를 지키고 어김에 따라 이해득실이 분명하면 이 분야 슬기는 더 잘 길러진다. 이들은 주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복지 등에서 직업을 만들어내고 영위한다.

슬기로운 생활의 다른 한 쪽은 자연과 사물의 이치를 생활에 유익하게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을 키우는 것과 관련된다. 학교의 수학, 과학, 기술 같은 교과목이 이를 담당한다. 과학혁명과 산업혁명 이후 이들 교과목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증기기관, 전기, 컴퓨터와 인터넷, 지능정보화로 인해 근육을 쓸 일도, 심지어 간단히 머리 쓸 일도 기계가 대신해주기에 인간은 더 스마트smart해질 필요가 있다. 사물과 자연의 이면에 작용하는 이치를 제대로 이해해야 자연의 순리를 따라 그 혜택을 볼 수 있다.
 
물질과 에너지, 운동, 화학, 지구와 우주 등등에 작용하는 법칙과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일상적이지 않다. 거듭되는 관찰과 실험, 고도의 수식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공계 공부의 기초는 수학이나 컴퓨터 관련 논리적 추론algorithm이라고도 한다.

학교공부로서 슬기로운 생활에서는 무엇을 챙겨야할까? 실제로 우리 각 사람은 일생을 두고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또 그렇지도 않다. 직업을 여러 차례 바꾼다고 하고, 그 바꿀 준비나 적응이 더 필요하다고 조언을 듣는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하나의 직업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일생을 살아가는 편이다. 일생은 아니더라도 학교를 졸업하고 최소한 수년간 사회에서 생존survival하는 취업・창업・가업승계를 위해서라면, 그 수명이 길지 않더라도 하나의 전공직업기술을 익힐 필요는 충분하다. 또 이와 가장 밀접한 외국어도 필요하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외국인들과 교류하려면 그 분야의 전공외국어가 필요하다. ‘1인1직1외’라고 부를 수 있다.
문제는 이 전공직업기술이 오늘날 대부분 이공계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인문사회계는 법률, 경영, 교육, 복지, 상담 등 일부를 제외하고 점차 사무자동화로 일손이 많이 필요 없게 되었다.
 
건전한 상식을 체계화한 것들이 적지 않다. 인문사회계의 직업이 이공계보다 더 많이 없어지고 그 직무가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사라지고 있다. 시공간의 제약을 덜 받는 새로운 서비스업을 창출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이공계는 그렇지 않은 편이다. 제조, 건축, 수송, 통신, 생명 기술 등등 오늘날 직업의 대부분은 이런 분야에서 나온다.

학교를 통해서 배우는 것을 통틀어 말하면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쓸모 있는 그 무엇을 하나로 줄이면 ‘1인1직1외1체1외’이다. 즉 학생들이 일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공부는 한정된다. ‘건・즐・바・슬생’이고, 다른 말로 ‘1인1직1외1체1예’이다. 학교공부의 핵심은 이공계 공부를 중심으로 한 ‘슬생’이다. 더 이상은 배웠다가 잊어버려도 좋은 것이고, 심지어 교사가 있어 배워주는 것이며, 관행을 따라 시험 치려고 만든 것일 수도 있다. 이제 알았다면 자라나는 아이들을 너무 괴롭히지 말자.

필자 :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한국교육과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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