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서평 /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물리학을 철학적으로 응용하면, 세상을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구나 싶은 책이 나왔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Reality is not what it seems)를 쓴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는 이탈리아 출신의 물리학자이다. 물리학 세계에 “나도 있다”고 소리치듯 그가 쓴 이 책은 감성과 철학과 역사가 골고루 녹아있다.

물리학자가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를 다루려다 보니 ‘원자’를 만물의 근원으로 생각한 데모크리토스(Democritus BC 460~ BC 380)를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 보다 더 훌륭한 철학자로 평가한다.

저자는 정말 눈여겨봐야 할 중요한 내용을 과감하게 서너 가지 넣었다. 그 중 하나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과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내용들이다. 제2의 스티븐 호킹이라는 별명을 얻은 로벨리는 복잡한 현대물리학의 세계를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는데, 이는 보통 사람들이 의문을 갖기 쉬운 의구심을 설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은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고정관념을 가지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시계와 책상 아래 올려놓은 시계가 재는 시간은 다르다. 쌍둥이 중 한 사람은 산 위에 살고, 한 사람은 바닷가에 살았다가 나중에 만났더니 나이든 정도가 달랐다.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 샘앤파커스 값 16,000원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 샘앤파커스 값 16,000원

생활 방식의 차이가 가져온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아주 적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시간의 흐름이 달랐기 때문이다. 지구의 중심에 가까울수록 중력이 더 강해져서 실제로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시간이 국지적인 중력장에 의해 결정되므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우주 전체에 통하는 커다란 우주적 시계는 없으며, 우주의 모든 대상은 자신만의 시간 흐름을 가지고 있다고.

시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으로 저자는 열시간(thermal time)을 주장하는데 그럴지 모른다는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가만히 보면 시간은 모두 다 열의 변화와 연관이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시간은 앞으로 가고 뒤로 돌아가지 않는다. 시간의 변화를 보여주는 현상이 벌어질 때 마다 언제나 열이 발생해서 흐른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돌이 땅에 떨어져 멈춘 것은 돌이 땅에 부딪쳐 열이 난 것이다. 달이 조수간만을 일으키는 것은 바닷물을 움직여서 아주 적으나마 열을 발생했다는 식이다. 태양이 수소를 태우면서 열을 내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시간의 흐름은 열의 흐름으로 봐야한다는 이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앞으로 시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응용을 불러올 것 같다.

무한에 대해서도 그의 주장은 매우 독창적이다. 양자적인 관점에서 보면 무한이란 없다고 단정한다. 다만 무한하게 적은 유한이 있을 뿐이다.

교황을 뜯어 말린 천문학자 르메트르 

빅뱅 이론을 실질적으로 처음 발견한 사람으로 그리 유명하지는 않지만 벨기에 사제인 조르주 르메트르(George Lemậitre 1894~1966)가 꼽힌다. 작고 압축되어있던 우주가 거대한 폭발로 팽창한다고 주장했을 때, 사람들이 조롱하듯 ‘우주가 뻥 터진다고?’ 라고 한 말이 지금 우리가 말하는 빅뱅(Big Bang) 이론이다.

르메트르는 정적인 우주를 생각했던 아인슈타인의 고정관념을 바꿔줬다. 우주가 빅뱅에서 생겨났다는 생각이 과학자들 사이에 받아들여지기 시작하자 교황 비오 12세는 1951년 11월 연설에서 빅뱅이론이 창세기 이야기를 뒷받침한다고 선언했다. 르메트르는 교황의 과학고문에게 연락해서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설득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이 부분에 대해 이탈리아인 과학자인 저자는 ‘만일 르메트르가 교황을 막지 못해 빅뱅이 천지창조라는 것이 공식 교리가 되었다면, 오늘날 가톨릭 교회는 얼마나 난처한 입장에 처했을지 상상해 보라’고 가슴을 쓸어 내린다.

왜냐하면 ‘오늘날 빅뱅이 진짜 시작이 아니라 그 전에 또 다른 우주가 존재했을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해 많이들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빅뱅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저자는 우주가 특이점으로 수축했다가 더 이상 수축할 수 없어서 다시 튀어나오는 ‘되튐’을 소개한다. 이것이 영어로는 빅뱅의 다음 단계라고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빅 바운스(Big Bounce)이다.

빅 바운스는 양자우주론에서 나았다. 빅뱅 너머로 조심스럽게 던지는 물리학 이론은 양자우주론 혹은 루프양자중력이론이다. 저자는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힉스 보손의 발견이나, 플랑크 인공위성의 관측, 중력파 검출이 루프양자중력이론의 신호로 해석한다.

정보이론을 해석하는 방법은 매우 독창적이다. 클로드 섀넌(Claude Shannon 1916~2001)이 정립한 정보이론은 오늘날과 같은 정보산업을 일으킨 중요한 이론이지만, 저자는 이를 물리학에 연결시키고 있다. 정보란 한 물리계가 다른 물리계와 소통하는 능력을 측정하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원자의 세계를 설명한다.

우리가 단순히 원자의 세계를 물질적으로만 따진다면, (사실 이 때문에 플라톤은 데모크리토스를 유물론자로 무시했다고 한다) 원자는 그저 원자일 뿐이다. 그러나 정보이론을 도입하면 원자는 원자 이상의 것이다. 원자들이 배열되는 방식 안에 정보가 들어있고, 원자들이 배치되는 방식이 다른 원자들이 배치되는 방식과 서로 관련되어 있을 수 있다. 원자들의 어떤 집합은 원자들의 다른 집합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원자에 어떤 정보가 숨어 있을까? 

비유하자면, 알파벳을 원자라고 한다면 알파벳의 배열은 그저 단순한 기호의 배열이 아니라 그 안에 기쁨과 슬픔과 비극과 희극과 돈과 명예가 들어간다.

저자가 글을 쓰는 것을 비유하자면, 저자는 알파벳이라는 원자를 나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저자의 뇌 속에서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다. 왜냐하면, 알파벳의 조합 안에 정보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저자가 쓴 글을 읽는 독자들의 뇌 속에서도 무엇인가 일어난다. ‘독자의 뇌 속의 원자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저자의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과 완전히 독립적일 수 없다’는 설명은 정보가 단순히 정보 이상을 넘어서 물리학과 연결되는 접점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그러므로 정보가 양자역학의 신비한 측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어떤 물리계는 다른 물리계와 상호작용함으로써만 나타나므로, 어떤 물리계의 기술은 언제나 상호작용하는 다른 물리계에 관계해서 주어진다. 물리학이란 결국 어떤 물리계가 다른 물리계에 대해 갖는 정보의 기술, 다시 말해 물리계들 사이의 상관관계의 기술이다.

바야흐로 물리학이 이제 경계를 크게 넓히고 있는데, 카를로 로벨리는 가장 설득을 잘하는 유능한 이야기꾼의 한 명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 기사는 사이언스타임즈(www.sciencetimes.co.kr)에도 실렸습니다. 데일리비즈온은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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