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서평 / 크리스퍼가 온다

수 년 전 그녀는 악몽을 꾼다. 동료 과학자가 ‘누군가에게 유전자 편집기술 사용법을 가르치겠냐’고 묻는다. 학생을 만나보니 아돌프 히틀러였다. 돼지 얼굴을 한 히틀러는 펜과 종이를 들고 기록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당신이 개발한 이 놀라운 기술의 사용법과 영향력을 완벽하게 알고 싶다”고 말한다.

2014년 봄에 꾼 꿈은 악몽은 아니었지만, 두렵기는 비슷하다. 그녀의 고향 하와이의 바닷가로 쓰나미가 몰려온다. 온 땅을 뒤엎을 것 같은 쓰나미를 피해 도망가는 대신, 그녀는 엄청난 파고를 뚫고 바다로 들어가 돌진하는데 성공한다.

크리스퍼 카스9를 개발한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Doudna 1964~ )는 2012년 사이언스(Science)에 논문을 발표할 때 까지만 해도 과학자로서 엄청난 족적을 남긴 것에 흥분한 과학자였다.

그렇지만, 크리스퍼 카스9의 영향력과 잠재적인 가능성이 알려지면서,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녀가 새뮤얼 스탠버그(Samuel Sternberg)와 같이 쓴 ‘크리스퍼가 온다’(A CRACK IN CREATION : GENE EDITING AND THE UNTHINKABLE POWER TO CONTROL EVOLUTION)는 유전자 편집기술인 크리스퍼가 가져올 희망적인 그러나 두려운 미래를 생각하며 쓴 책이다.

그녀가 히틀러 꿈을 꾼 것은 크리스퍼가 세계적으로 급속히 퍼짐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희망적인 미래와 끔직한 디스토피아의 가능성에 대한 잠재의식의 발현이었다. 순식간에 수 만 개의 크리스퍼 기술이 퍼져나갔다.

제니퍼 다우드나, 새뮤얼 스턴버그 지음, 김보은 옮김 / 프시케의 숲 값 22,000원
제니퍼 다우드나, 새뮤얼 스턴버그 지음, 김보은 옮김 / 프시케의 숲 값 22,000원

 

11만원 짜리 DIY 크리스퍼 세트는 세균이나 효모 유전자를 변형하는 도구이지만, 기술 자체는 매우 단순하다. 학계에서도 동물 게놈을 대상으로 일상적으로 하는 실험이라 바이오해커가 이 세트로 복잡한 유전자 체계를 변형시키는 일이 어렵지 않다.

히틀러도 탐 낼 만한 유전자 편집

그러니 다우드나가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걸까?” 고민할 수 밖에. 얼마나 빨리 잘못 될 수 있는지 생각하면 자신이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된 것은 아닌지, 괴물을 창조한 것은 아닌지 우려한 것이 단순한 기우로 생각되지 않는다.

물리학자들이 핵무기를 개발해서 수 십 만 명을 몰살시킨 전례와 유사하다.

다우드나는 크리스퍼 카스9을 발표한 지 불과 2년 만에 세계와 산업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더 이상 친숙한 과학계 안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동료 과학자들과 매우 역사적인 모임을 조직했다. 2015년 1월 캘리포니아 버클리 북쪽 나파밸리에서 전문가들이 모여 공개강연과 유전자 편집의 미래에 대한 공개토론회를 가졌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유전자 편집을 인간의 생식세포에 적용하는 문제를 다루는 백서를 발간하는 것이었다. 생식세포에 대한 유전자 편집이 가져올 사회적 윤리적 철학적 영향력을 적절하고 충분히 논의할 때까지 과학계가 중지버튼을 누르기를 원했다.

이 논의를 정리해서 2015년 3월 19일 사이언스 저널에 실린 원고는 ‘유전공학과 생식세포 유전자 변형을 향한 신중한 방향’이라는 제목이었다. 국제회의를 조직해서 과학자 생명윤리학자 종교지도자 환자권리단체 사회과학자 규제기관 정부기관 등이 모여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하자고 제의했다.

과학자에게는 인간게놈에 유전될 수 있는 변형을 가하는 실험을 중단해달라는 요청을 던졌다. 금지나 모라토리엄이라는 단어는 뺐지만, 잠시 동안 임상 응용시험은 접근금지를 요청한 것이다.

유전자 편집기술이 가져올 희망찬 미래의 모습은 완전히 공상과학과 같다. 이미 90kg의 거대한 돼지를 13kg의 마이크로 돼지로 만들어낸다. 썩지 않고 몇 달에 걸쳐 식료품 창고에 보관하는 토마토, 기후변화에 잘 견디는 식물, 말라리아를 옮기지 않는 모기, 무시무시한 근육질의 개, 뿔이 자라지 않는 소는 이미 존재한다. 앞으로 몇 십 년 안에 털이 복술복술한 매머드, 날개달린 도마뱀도 만들 수 있다. 다우드나는 “농담이 아니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이제 진화는 다윈의 자연선택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스스로 진화를 조절하고 선택할 수 있다. 크리스퍼가 인간의 의지아래 자연을 무릎 꿇릴 날도 멀지않은 것이다.

실험실에서 나와 대중에게 알리다

이중 특히 접근금지를 요청한 분야는 살아있는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거나 수정되지도 않은 아이가 앓을지 모르는 ‘예상질병’을 제거하는 연구이다. 체외수정을 할 때 개인맞춤형 DNA돌연변이를 크리스퍼로 집어넣어 유전 질병의 가능성을 제거한 ‘크리스퍼 아이’를 만드는 일인데, 현재 기술로 충분히 시도할 수 있는 방안이다.

예비부모의 난자와 정자를 채취해서 시험관에서 배아를 발생시키고 미리 프로그래밍 된 크리스퍼 분자를 배아에 넣어 게놈을 편집한 뒤 예비 어머니의 자궁에 편집한 착상하면 그 다음에는 저절로 굴러간다.

실제로 이 책의 공동저자인 샘 스턴버그는 한 여성으로부터 ‘크리스퍼 아기’ 사업을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아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렇다면 이 여성만 이런 사업구상을 할까? 사악한 욕망을 실현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의 불순한 동기가 과연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크리스퍼가 온다’는 유전자 편집에 이르는 과학적 탐구의 과정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도 심도있게 다뤘다. 전공자들에게도 매우 훌륭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싯다르타 무케르지는 ‘곧바로 고전의 반열에 오를 책’으로 추켜세웠다.

제니퍼 다우드나는 현재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캠퍼스에서 화학및분자세포생물학과 교수이며, 다우드나와 함께 크리스퍼 카스9을 연구한 공저자 샘 스턴버그는 컬럼비아대학 생물화학및분자생물물리학과 조교수이다.

< 이 기사는 사이언스타임즈(www.sciencetimes.co.kr)에도 실렸습니다. 데일리비즈온은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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