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서평 / 늙지 않는 비밀

세계적인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인간의 가장 큰 관심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것인가에 모아진다.

인간의 수명과 관계깊은 것으로 텔로미어(telomere)가 있다. 수명시계로 알려진 텔로미어는 마치 운동화 끝이 풀리지 않게 끈 끝에 달린 작은 애글릿(aglet)과 같다. 애글릿이 계속 같은 길이를 유지하면, 운동화끈은 풀리지 않고 오래간다. 마찬가지로 세포의 끝에 달린 텔로미어는 세포의 재생을 도와주는데, 이것이 조금씩 줄어들다가 없어지면 세포 재생도 한계에 부딪치면서 결국 세포노화에 이은 죽음에 이른다.

‘늙지않는 비밀’(The Telomere Effect)는 텔로미어를 둘러싼 연구와 그의 효과를 다루는 책이다. 정상적인 사람의 세포는 유한한 횟수만큼 분열한 다음에 죽는다. 1961년 생물학자 레너드 헤이플릭(Leonard Hayflick)은 얇고 투명한 배지가 깔린 플라스크에 사람의 세포를 넣었다.

그랬더니 세포들은 급속히 복제되면서 불어났다. 불어나는 세포를 담기 위해 더 많은 플라스크를 가져왔지만, 너무나 빨리 불어났기 때문에 모든 세포를 담기가 불가능했다.

스트레스가 텔로미어 줄인다

그런데, 얼마 후 연구실에서 증식하던 세포들이 증식하던 일을 멈췄다. 마치 지쳤다는 긋이 가장 오래 존속한 세포는 세포분열을 50번쯤 하다가 중단됐다. 대부분의 세포는 분열횟수가 거기에 훨씬 못 미쳤다. 이렇게 지친 세포들은 노화라는 단계에 이르는데 이것을 헤이플릭 한계라고 한다.

‘늙지 않는 비밀’을 쓴 엘리자베스 블랙번(Elizabeth Blackburn 1948~)은 호주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노벨상(200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맹렬 과학자이다. 의사를 부모로 둔 블랙번은 어렸을 적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해파리를 놓고 노래를 불러줄 정도였다.

영국에서 장학생으로 공부를 마치고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으로 옮겨 1978년에 연구실을 차렸을 때 그녀는 ‘테트라히메나’라는 털인형같은 연못 더껑이를 기르고 있었다. 이 테트라히메나의 텔로미어는 어떤 상황에서는 길어지곤 했다. 수명시계인 텔로미어가 길어진다는 것은 영원히 세포가 재생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1984년 텔로미어의 재생을 도와주는 ‘텔로머라아제’의 발견은 후에 그녀가 노벨상을 타는 바탕이 되었다.

엘리자베스 블랙번, 엘리사 에펠 지음,  이한음 옮김 / RHK 값 17,000원 ⓒ ScienceTimes

엘리자베스 블랙번, 엘리사 에펠 지음, 이한음 옮김 / RHK 값 17,000원

그러나 ‘늙지 않는 비밀’은 텔로미어나 텔로머라아제 혹은 어떻게 하면 인위적으로 텔로머라아제를 늘려서 장수하느냐에 대한 책이 아니다. (텔로머라아제를 늘리면 세포 수명이 늘어나지만, 암발생 위험도 높아지는 양날의 검이다.)

오히려 이 책은 건강심리학 박사후 연구원과정을 시작한 엘리사 에펠(Elissa Epel)과 만나 시작한 연구내용이 초점이 맞춰져있다. 이 책을 같이 쓴 에펠은 블랙번에게 ‘스트레스가 텔로미어를 줄이고, 조기 세포 노화를 가져오는지’ 조사하는 연구가 가치가 있을지 물어봤다.

분자생물학자인 블랙번에게 이 질문은 새로운 세계를 여는 문고리와 같았다.

장애아동을 돌보느라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엄마들을 대상으로 스트레스가 텔로미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예상대로, 장애아들을 돌보는 시간이 길어진 것에 반비례해서 텔로미어 길이는 짧았다. 스트레스가 수명을 갉아먹는다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여기에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얼마나 슬플까. 이런 스트레스와 압력을 견디면서 텔로미어의 길이를 유지하는 엄마들도 있었다.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로 보지 않고, 당연히 대응해야 할 유쾌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었다.

이 책은 사람의 생각과 태도와 마음가짐이 사람의 세포수준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놀라운 사례를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수록했다. 약200조 개에 달하는 인간의 그 모든 세포가 사실은 사람이 마음먹기에 따라 건강해질수도 더 피폐해질 수도 있다는 놀라운 발견이다. 이런 모든 방법은 결국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건강비법으로 연결된다.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비법을 발겨하는 단서 중에 ‘역설적 오류’(ironic error)가 잇다. ‘북극곰을 생각하지 않겠다고 해 보라. 그러면 북극곰이 지긋지긋하게 매순간 머릿속에 떠오른다’는 토스토예프스키의 구절에서 힌트를 얻은 대니얼 웨그너(Daniel Wegner)교수가 주장한 내용이다. 어떤 생각을 내쫓으려 애를 쓸수록, 그 생각이 더욱더 주의를 사로잡아 역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생각이분자에 영향을 미친다. / Pexels
생각이분자에 영향을 미친다. / Pexels

 

나쁜 생각을 몰아내면 그 생각은 더 강해져서 돌아오고 그러면 기분이 더 나빠지고, 기분이 나쁘다는 생각에 더욱 기분이 안 좋아지는 악순환에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사람들은 속으로 피폐해진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텔로미어를 줄여주는, 다시 말해 훨씬 빨리 늙게 해서 수명을 단축시킨다.

장애아동을 돌보느라(혹은 치매 부모를 돌보느라) 피폐해진 엄마들의 처지에 깊은 동정심을 가지면서 시작한 연구인 만큼, 이 책은 곳곳에서 어떻게 하면 텔로미어를 유지할 수 있는지, 건강을 잃지 않고 장수할 수 있는지 하는 실제적인 지침을 곳곳에 배치했다.

고령화 시대에 어울리는 ‘텔로미어 과학’

블랙번은 임신했을 때 하루에 몇 개비 정도 피우던 담배도 완전히 끊었으며, 의사가 권하는 철분과 비타민 보충제를 섭취하고 음식에 주의를 기울였다. 분자생물학자 답게 블랙번은 임신부가 먹는 영양소와 스트레스의 수준이 태아의 텔로미어 길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노화는 자궁에서 시작한다.’

반발하는 십대에게 과잉반응하지 말라거나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라는 충고를 비롯한 수십가지 생활의 지혜는 결국 ‘텔로미어 과학’이라는 말로 정리된다. 사회적 스트레스 요인들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때, 이에 대응하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나’가 아니라 ‘우리’를 생각하는 태도는 사회적인 건강을 증진시키는 토대가 된다. 사람들과 유대를 맺고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포함된다.

텔로미어 과학은 ‘분자 수준에서’ 개인의 웰빙에 사회적 건강이 중요하다는 ‘과학적 증거‘를 제공한다. 그것도 비용을 지출하지 않고 달성하는 아주 좋은 지름길을.

< 이 기사는 사이언스타임즈(www.sciencetimes.co.kr)에도 실렸습니다. 데일리비즈온은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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